신앙상담 신앙상담 게시판은 비공개 게시판으로 닉네임을 사용실 수 있습니다. 댓글의 경우는 실명이 표기됩니다.

q Re:구원 받을 방법이 있을까요?

인쇄

사랑과영혼 [61.106.105.*]

2006-07-16 ㅣ No.4306

 

   † 찬미예수

 

   멘델스죤의 한 여름밤의 꿈이라는 결혼 행진곡이 생각나지요?

   주일을 앞둔 토요일 밤 장마비가 종일 내리고 있습니다.

   아마도 우리들의 죄로 비탄속에 눈물 흘리시는 성모님의 눈물이라 사료됩니다.

 

   들꽃처럼 아름다운 삶을 지향하실 자매님께서

   폭력과 질시에 시달리셔야 한다는 것은 신앙인의 한사람으로써

   저도 과거에 그런 부족함에 자유로울 수 없는 한 남편이었기에

   죄송하다는 마음이 앞서기도 합니다.

 

   자매님께 일기를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저같은 경우는 제가 아무리 잘나보이려 노력해도

   도무지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애꿎은 하느님 탓으로 돌리며 그렇게 하루 하루를 지내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과 일대일로 낙서를 해 보았습니다.

   저의 하루동안 사건 사고등을 엮어서 말이지요.

 

   그랬더니 놀라운 나의 부끄러운 점등이 보였습니다.

   한마디로 이런 내가 이곳에서 수년동안 글을 쓰면서 잘난척을 해왔다니...등등 말씀이지요.

 

   그리고 다시는 이곳에 발을 들여놓치 못하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자존심등으로 범벅이 된 나는

   일전에 사적 계시(공적 계시인 믿을교리로 지향되는 것이 원칙)로 들은 말씀일 수도 있겠으나

   하느님과는 절대로 약속을 하는것이 아니라면서

   그렇게 무기력한 시간의 흐름을 보내야 했습니다.

 

   아무튼 미사여구로 드려서 죄송하구요.

 

   자매님 경우는 교회법상 조당일 확률이 높습니다.

   그러나 성사생활권의 제한을 두는 조당이란

   성사생활을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작은 노력으로도 생활생활을 보완할 수 있는 좋은 은총이라 사료됩니다.

 

   따라서 피정, 고해성사(고해도 성사생활의 일부이지만)를 위한 보완등도 좋은 준비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우리들의 고해를 위한 사전의 성찰, 정개라는게

   이조차 내 의지로 되지 않은 경우를 많이 보아왔을 것이라 사료됩니다.

 

   제가 죄가 많아 콜롬버스의 발견을 자주 합니다.

   하여 고통은 그 사람을 더욱 수련시키기에

   보다 의연희 대처하려는 자매님의 성모님의 눈물을 닮는 그 의지로

   일기를 쓰거나 편지의 형식등으로

   하느님과의 일대일 면담형 고해 준비등을 가볍게 연습하시라는 것입니다.

 

   저처럼 하느님을 지나치게 찬미하려하면 자칫 피해의식이 더 커질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하루의 있는 그대로 나의 잘잘못등을 기록해 나가면

   나의 거울이 조금은 더 비추어지지 않을까 사료됩니다.

 

   사실 죄송한 말씀이지만

   저는 아주 작은 언어의 그것들도 폭력에 해당된다는 결벽증세를 갖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그것이 또한 성령발의 은총이라 감히 치부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분명, '내가 어두운 데에서 말하는 것을 너희는 밝은 곳에서 선포하여라'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오히려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킬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하시는 그분의 계시와도 같은 것이라 사료됩니다.

 

   따라서 자매님의 그 편지등의 성화 방법을 통하여 형제님도 주님의 품으로 돌아와 진정한 남중 내편과 안의 해가 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죄중에도 그것을 고해함에 있어 타인의 죄를 고해하는 어처구니 없는 답습에서도 자유롭기 위하여 다만 의탁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고해소내의 풍경을 예견하자면 이 밖에도 여러 유형이 많을 것입니다.

 

숨만 쉬어도 죄지요, 하시는 간략형이라던가, 신부님조차 알아들을 수 없는 무마, 안개형등 다양한 풍속도가 연출될 것입니다. 그래도 주님은 늘 우리를 사랑과 평화로 인도하시고자 위로해 주십니다.

 

고해성사라는 것이 그 죄의 내용을 발설하면 사제복도 벗기워질 정도의 비밀이 보장되기에, 또한 평신자인 우리 또한 그 고백 내용을 세상속에 발설하지 않는 절재력을 우리 스스로 호소하는 가운데, 현재의 자매님의 호소력은 세상의 가장 커다란 평화의 배인 고해소내에서도 사제께도 커다란 영혼의 메아리로 도착될 것입니다.

 

우선 그 모든 것이 잘되어야 할 것이라는 강박관념에서 자유로워지시길 기도드립니다.

 

사실, 자매님의 글을 처음 본 순간, 제가 별로 마음의 컨디션이 좋치 않아서

 

절두산 순교성지에서 감히 미사곡을 봉송하고 있는 가운데 워낙 노래를 좋아하기에,

 

그것을 기도로 메운다며 김종찬씨의 '산다는 것이'라는 곡을 어느곳에서 불러보았습니다.

아무튼 저도 자매님처럼, 뭇 사람들처럼 정이 많습니다.

그리고 자매님의 글을 보며 수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침묵의 기도를 보내 주시리라 믿습니다.

 

서울(합정동/지하철 2호선)의 절두산 성지 일일 피정(매월 셋째주 월요일/T.3142-4434)도 무료로 월 1회 개최하고 있습니다.

 

다만 사전 예약제이고, 피정시 지각등을 조심하는 것은 기본적인 예의이니 염두에 두시기 바랍니다.

 

부연으로 말씀드리건데

 

폭력성은 일종의 자신의 영육의 상처에 대한 반항심의 표출일 것입니다.

 

따라서 자매님도 한 가정의 왕비로서 가족의 건강을 책임져야 할 것입니다.

 

혹여 자매님께서 성체조배중에

 

얘야, 폭력성 자체와 대응하지 말고 나를 바라봐 다오...하시는 응답을 들으실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저같은 경우는 성체조배가 심심타며

 

하여 멀어저간 기억을 도로 불러오기도 하는 손바닥 뒤집기의 명수이기도 하답니다. 좋은게 아니지요.

 

아무튼 저의 내면도 시끄러운게 이만 저만이 아닌듯 합니다.

 

성체조배는 분심조차 내려놓은게 좋고, 주님 품에서 잠자는 것도 좋다고 배웠습니다.

 

이에 고통은 분명 하느님이 주시는 최고의 은총입니다. 이를 지상에서 경험한다는 것은 천상에 오를 때 연옥의 보속을 크게 면제해 주실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순교자들 또한 그 감옥의 고통에서 얼마나 큰 공포을 만나야 했겠습니까?

 

장애우들은 장애우란 말을 싫어하고 장애자, 장애여성, 장애남성으로 불려지길 원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그만큼 작심 삼일형으로 장애자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기 때문이라 사료됩니다.

 

장애우들이야말로 한 여자이길 원하고 한 남자이길 원하기도 합니다.

 

마찬가지로 폭력성의 동거남편측에게도 그것을 피하기 이전에

 

함께 성모님께는 꼬치꼬치 상담하되, 상처중일 때는 너무 세세히 기억하면 충격받으니 다만 받아들이도록 기도하는 것이 우리의 십자가인듯 합니다.

 

성모님은 성부께로부터의 그 영원불멸의 전구능력도 있으시리라 믿습니다.

 

예를 들어 지상에서 택시운전을 하시는 아저씨가 '요즘 여성들 치마가 너무 짧은데, 남자들만 사건 사고의 책임이 있는게 아니다'라고 지적하면 이를 들은 여성이 '귀하의 아내와 딸이 다만 아름다움 추구를 위하여 그럴 경우 어떻게 대처하고 계신가요?'라고 응답 함으로서 뭇 사람들을 공처가조차 초월하여 경처가로 이끄시는 이치와도 같다 봅니다.

 

이에 일기등은 좋은 성찰의 재료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언제 기회되시면

 

절두산 주일 미사(매일 오전 열시, 오후 세시/월요일도 있습니다)에 순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주일 오전 열시(첫주는 첫토요일 성모신심 관계인지 자매님이 봉송하시고) 성가를 담당하니 참고하시고

미사후 담소 및 간단한 식사를 나눌 의향이 있음을 밝혀두겠습니다.

 

참고로 절두산은 보편 성당과는 달리 15처, 예수님의 부활을 묵상합시다의 순례코스가 함께 하기도 합니다.

 

어렵겠지만, 고통스럽겠지만 잘 대처하시어 이겨내시기 바랍니다.

 

엊그제 성모성심 주보의 옛 친정 본당을 지나다 들리니,

 

일당백의 대 침묵을 병행해야 하는 사무장님이 얼굴이 수척해 지셨더군요.

 

그리고 80 할머니 한분과 차 한잔을 나누며 데이트를 했는데

 

틀니, 관절염등 온 몸 구석 구석 성한데가 없다시며

 

죽음의 유혹까지 밀려온다지만 젊어서부터 청상과부가 되어 30년간 한번도 미사를 궐하지 않은 그분의 신심으로 하느님을 찬미하고 있었습니다.

 

저도 최근 방치하였던 치아의 고통으로 그것을 조금은 느끼기에

 

도무지 돈을 받지 않으시는 대부님께 고마움을 느끼며 그 치유후 할머니와 담소중에

건강하던 대부님의 어머니께서 호상으로 지난 화요일 장례미사를 치루었다는 소식을 접하였습니다.

 

남 모르게 어렵고 가난한 분들을 도우셨던 고인의 장례때에 신부님이 일곱분이나 오셨다더군요.

 

우리도 비온 뒤에 무지개라는 평화의 다리를 밟을 능력이 있습니다.

 

하느님은 당신이 선택하신 걸작품에게 그러한 신원과 사명을 주십니다.

 

우리가 사명(성사생활등)을 준수하기 위하여 신원(좋은 낙서등의)을 보다 올바로 지향하도록 이끌어 주시기에 이에 조금이나마 감히 응답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일 것입니다.

 

모쪼록 좋은 결과 이어지길 기도드리겠습니다.

 

자매님의 죽음보다 더 커보인다는 고통을

 

내일 절두산 미사곡을 봉송할 때에 함께 주님의 제단위에 의탁하도록 하겠습니다.

 

전임 주임신부님이셨던 김용화 바오로 신부님(피정 지도중 뇌출혈로 현재 의식불명중)의 침묵중의 건강과

 

2004년 6월 대장암 4기의 선고를 받고도 현재까지 몸소 화장실로 거동하는 큰 형수 조카타리나와

 

지난주 봉헌예절 때에도 계속 서서 대각선으로 마주친, 제일 뒷자리에서 돗자리를 깔고 주보도 열심히 살피던

어느 암치료중인지 머리가 벗겨진 청년도 함께 기억하면서 말씀이지요.

 

힘 내시구요. 많은 분들이 하늘의 다시 보일 별들처럼 구원송을 바쳐 주실 것입니다.

 

 

피정이란 피세정념의 준말입니다. 세상을 피하여 주님과 화해 일치의 대화를 한다는 뜻이기도 하지요.

 

모쪼록 하느님이 빌려주신 세상의 가장 귀한 생명에서 도피하려 하지 마시고

내 자신의 그것을 피할 힘을 길러야 할 것입니다.

먼저 나를 비워야 틀림없이 남편도 회심하여 성가정을 이룰수 있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모든 폭력에도 스스로의 자유로운 편지등으로 원인제공을 성찰하시는 게 좋을듯 합니다.

여성들은 남편에 대한 불만으로 말을 아끼는 경향이 있습니다.

부부는 침묵보다 대화인점을 유념하시고 보다 슬기롭게 대화로 이끌수 있도록 간구하십시오.

 

역시 침묵의 대화도 포함해서 개선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 자매님은 매우 좋은 피정 준비중에 계시기도 합니다. 피정의 준비도 저의 시행착오처럼 너무 거창하게 하진 마시고 크리스천의 기본 회복 운동처럼 단순하고 가까운 것부터 쇄신하면 좋을듯 합니다.

 

그리하여

 

참고사항이지만 비록 현재 자매님이 조당일 확률이 있겠으나

 

주님이 허락하시는 성사생활을 보필하려는 생활속의 준성사자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1. 입문성사 : 세례, 견진, 성체성사

 

2. 봉사성사 : 혼인, 성품(신품)성사

 

3. 치유성사 : 고해(고백), 병자(종부)성사

 

 

예)

 

1. 입문 준성사 : 자연스러운 세수, 양치 및 종에서 친구, 식사등의 건강관리

 

2. 봉사 준성사 : 현재의 동거생활에서의 진화를 위한 낙서등

 

3. 치유성사 : 성찰, 피정, 미사등

 

 

건투를 빕니다. 완전한 기도인 미사는 언제나 세상 누구에게도 문호가 개방되어 있으니 안심하시구요.

 

이왕지사, 앞으로 죽을 위기에 처했던 세사람 회심시킬 수 있는 힘도 주실지 몰라요.

 

실제로 우리동네의 소년의 집에서는 무지로 낙태를 행한 여성들이 그 아픔의 보속으로

 

그 무지한 어미가 보호를 포기한 태중에서 나쁜 의사의 메스를 피하며 구석진 곳까지 몰리다가 무고한 영혼으로 승천하는 아픔속에 버림받았던 영아들을 기억하며 미혼모등이 포기한 아기등을 입양하는 선행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러한 죄중의 어미역시 몸마저 허락받지 못하엿다 절규하는 아이들의 영혼을 위하여 기도하고 승리할 것입니다. 이처럼 고통은 세상속 가장 큰 무지인 무관심을 초월하는 큰 은총인 것입니다.

 

마귀는 영적인 법칙에 의해 스며들려 하기에 자연법칙을 따르는 인간의 육체과인 감성보다 정신과인 이성의 틈새를 노리고 있슴을 잊지 마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의지로 의탁하여야 할 것입니다.

 

세상이 악하여 자살율들이 급증하는 것도 안타까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제 글로 인하여 앞으로도 자칫, 선과 악의 갈림길이라는 주님안이 아닌, 내 안으로 들어가지 않기를 바라면서

 

지금의 그 건강을 회복하고자 하는 의지로서 본당 신부님과도 면담을 성취할 수 있기를 기원하겠습니다.

 

 

 

 

 

 

 



172 0댓글쓰기

신고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