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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Re:왜이리 전 부정적인 생각만 하게 되는건지..조언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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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영혼 [61.106.106.*]

2006-06-26 ㅣ No.4274

 

   † 찬미예수

 

   승자는 달리면서 생각하지만, 패자는 변두리만 맴돈다지요? 저도 겁쟁이랍니다. 하지만 두려움 없이 주님의 삶으로 뛰어든 우리는 행복하여야 마땅할 것입니다.

 

그런데 신앙 방법의 개선이 좀 필요할 듯 싶어요.

 

자매님도 잘 아시겠지만 아버지께 받은 사랑이 부족한 듯 싶으나 일단 아버지께 주님이 좋아하시는 '푸른돈'을 봉헌한 점을 찾아보시면서 달리시는것은 어떠할런지요? 성서에는 푸른돈을 달란트라고도 할 것입니다. 세속에서는 저마다의 탤런트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자매님은 노래를 좋아하시나요? 아무래도 겁쟁이라는 현 위치를 잘 활용하시면 보다 신중함으로 업그레이드 할 수 있겠잖나란 기대를 갖아봅니다.

 

예를 들어서 노래를 부를 때의 일반 법칙처럼 첫음을 여리게 시작하는 것, 더 나아가 우리가 완전한 빽이신 아기 예수님의 탄생처럼 그것을 바라보고 체험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 같습니다.

 

자매님이 주변 이웃에게도 상처주지 않도록 노력하실터이니, 또한 말씀도 가급적 들꽃처럼 하시려 노력할 터이니 어울릴 것 같습니다.

 

신랑 신부도 마찬가지지요. 현대인들이 그러한 고민을 누구나 갖을 수 있기에 자매님처럼 직장에서 고행을 하는 신랑은 집에서 아내의 품으로부터 쉼터를 갈망하며 보다 경건한 여성상을 요구할 테고, 아내 또한 화초의 그것처럼 남편의 사랑을 갈망할 것입니다.

 

하지만 겁쟁이 타입인 우리들은 자연속에서도 독버섯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는 경향이 있을 수 있는 것 같습디다. 독버섯, 독의 꽃들은 나름대로 자기가 이름모를 언덕에서 살려 하는데, 이곳 저곳 평화를 캐러 산을 뒤지기도 하는 심마니인 우리 자신이 궨한 독버섯을 먹고 탈이 나는 경우가 많치요. 이렇게 생각하면 편할 듯 싶습니다.

 

더우기 가톨릭은 하느님이 직접 세우신 교회로써 또한 십자가에서 죽음의 피와 생명을 뜻하는 부활의 물을 마지막으로 보내주신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요한에게 당신의 어머니를 맡기셨기에 초대 교황성하 성 베드로부터 이어온 '사도좌 무류권'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따라서 2,000여년동안 전승되고 이어온 미사때에 자매님이 누구보다 열릴 수 있는 그 마음의 귀로써 주님의 주파수를 기울일 수 있는 특전이 있겠습니다.

 

이처럼 사제와 그리스도와 교회와 하나되어 미사에 참례할 수 있다는 것은 겨자씨만한 작은 믿음 하나로도 개선될 수 있는데, 이를 위하여 자매님은 지금 매우 중요한 준비를 하고 계신것입니다.

 

나아가 아기 예수처럼 시작한 여린음의 말과 노래등의 원기 회복을 지향하고 있으며 또한 재차 그 음들을 내가 하늘로 차 올리려는 뛰어야 벼룩처럼 하는 것이 아닌, 부모님을 한편으로 사랑하는 그 힘으로써 하느님 아버지, 어머니 품에 안긴 두번째 하와로써의 모습으로 즉, 밑에서의 고음이 아닌 가장 높은 하늘에서의 파견음을 만나실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음역이 잘 나타나 있는 그레고리오 성가 창법을 한번 만나보시는 것도 좋을것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말과 노래등의 종음에 있어서도 지금 자매님이 주님께 청원하고 있는 그 모습을 잘 활용하시어 입김마저 내가 끊지 않고 구름위 하늘로 봉송할 수 있도록 즐겨보세요.

 

자! 미사에 대한 논리를 잠시 말씀으로 비유하여 전해드렸습니다.

 

우리가 갈망하는 참 신자의 도리는 완전한 기도인 미사 참례를 위하여 더 나아가 생활속에서 그것을 모두 미사 참례화 하기 위하여 부연으로 세가지의 성화방법이 따르기도 합니다.

 

그것은 미사때의 압권인 영성체와 또한 몸과 마음의 진정한 미사를 향하는 묵주기도와 성체조배등이 있겠습니다.

 

이를 위하여 자매님의 부끄러운 그것들을 먼저 내려 놓으시고, 잘 들어두십시오.

 

묵주기도는 예수님의 생애가 농축되어 있는 매우 훌륭한 기도입니다. 우리가 유아적인 신앙때에 자칫 성모님께만 편향될 수 있던 기도를, 지금 자매님도 어머니만 편애할 수 있는 이러한 기도를 성모님의 은총 전구를 통하여, 즉 성모님 손 계속하여 놓치지 말고 성부께 나아가는 기도로 봉헌되어야 마땅할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우리는 미사의 입당에 성공할 수 있다면 완전하신 그리스도의 제대위에 나의 그것을 계속하여 아끼없이 봉헌하는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방금전의 잠시 묵상론의 경험을 말씀드리고 싶군요.

 

오늘이 월요일이었지요? 환희의 신비를 엷은 비가 나리는 동네 어귀를 돌며 주저리 주저리 바쳐보았습니다.

 

먼저 '마리아께서 예수님을 잉태하심을 묵상합시다'가 열렸습니다.

 

이처럼 주님께서는 염치없는 죄인인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은총에 가까운 평화를 제공해 주십니다.

그러나 두려워 마십시오.

 

'마리아께서 엘리사벳을 찾아보심을 묵상합시다'에 이르러서는 시공을 초월하여 지고지순의 사랑을 계속하여 폭포수처럼 보내주시는 주님의 권능이 함께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지금 님과 제가 자매와 형제로도 만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입가경으로 '마리아께서 예수님을 낳으심을 묵상합시다'에 이르러서는 자매님들은 누구보다 산고의 고통을 실감하시기에 아기 예수님의 탄고의 고통이 더욱 극심할 수 있슴도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수많았던 탄고의 고통을 바라보며 우리의 고통을 봉헌할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더 나아가 주변의 고통받는 이웃들도 바라볼 수 있으며 그것을 주님께 치유해 달라고 청원하기도 할 것입니다.

 

'마리아께서 예수님을 성전에 바치심을 묵상합시다'에 이르러서는 내가 전에 주님의 성전이어야 할, 그리고 가톨릭 교회에서 기도하고 있는 '천상교회, 연옥교회, 지상교회'에서의 나의 무엇을 다시 한번 쇄신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계속하여 중요한 점으로 주님께 봉헌할 수 있는 의지를 위하여 그것이 무엇인지를 굳이 찾으려 하지 않는 것도 궨찬겠습니다. 장차의 무관심이 아닌 무념 무상을 말씀드리는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님의 모습이 성찰을 위한 중요한 과정임을 믿으시면 되겠습니다.

 

축하를 나눕시다. '마리아께서 잃으셨던 예수님을 성전에서 찾으심을 묵상합시다'의 기쁜 소식을 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생활속에서, 자연속에서, 교회 공동체안에서 우리는 수많은 이러한 기쁜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그리고 주체할 수 없는 기쁜 소식 가운데 몇가지 실수도 흘릴 수 있겠지요. 그러나 역시 잔가지를 두려워 할 필요가 없으며 하느님께서 포도나무보다 우리의 잔가지 해석에 치우침등을 정화시켜 주심을 믿으시면 될 것입니다.

 

묵주기도의 여파인지 저의 부주의했던 생각과 말과 행위가 보다 침묵화되며 자유롭게 글이 써지고 있는것 같군요. 저만의 생각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글이 순탄하게 이어지고 있는듯 합니다.

 

영성체를 향한 성사생활과 성체조배등의 논리는 다음에 기회가 닿으면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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