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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7.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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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애 [ji5321] 쪽지 캡슐

2017-06-30 ㅣ No.112937

 

2017년 6월 30일

연중 제12주간 금요일

제1독서 창세 17,1.9-10.15-22

1 아브람의 나이가

아흔아홉 살이 되었을 때,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타나 말씀하셨다.

“나는 전능한 하느님이다.

너는 내 앞에서 살아가며

흠 없는 이가 되어라.”
9 하느님께서 다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내 계약을 지켜야 한다.

너와 네 뒤에 오는 후손들이

대대로 지켜야 한다.

10 너희가 지켜야 하는 계약,

곧 나와 너희 사이에,

그리고 네 뒤에 오는 후손들

사이에 맺어지는

계약은 이것이다.

곧 너희 가운데 모든 남자가

할례를 받는 것이다.”
15 하느님께서 다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다.

“너의 아내 사라이를

더 이상 사라이라는

이름으로 부르지 마라.

사라가 그의 이름이다.

16 나는 그에게 복을 내리겠다.

그리고 네가 그에게서 아들을

얻게 해 주겠다.

나는 복을 내려 사라가

여러 민족이 되게 하겠다.

여러 나라의 임금들도

그에게서 나올 것이다.”
17 아브라함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웃으면서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

‘나이 백 살 된 자에게서

아이가 태어난다고?

그리고 아흔 살이 된 사라가

아이를 낳을 수 있단 말인가?’

18 그러면서 아브라함이

하느님께 “이스마엘이나

당신 앞에서

오래 살기를 바랍니다.”

하고 아뢰자,

19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니다. 너의 아내 사라가

 너에게 아들을 낳아 줄 것이다.

너는 그 이름을

이사악이라 하여라.

나는 그의 뒤에 오는

후손들을 위하여 그와 나의

계약을 영원한

계약으로 세우겠다.

20 이스마엘을 위한 너의

소원도 들어 주겠다.

나는 그에게 복을 내리고,

그가 자식을 많이 낳아

크게 번성하게 하겠다.

그는 열두 족장을 낳고,

나는 그를 큰 민족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

21 그러나 나의 이 계약은

내년 이맘때에 사라가

너에게 낳아 줄

이사악과 세우겠다.”
22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시고

그를 떠나 올라가셨다. 

복음 마태 8,1-4
1 예수님께서 산에서

내려오시자 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랐다.

2 그때에 어떤 나병 환자가

다가와 예수님께 엎드려

절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3 예수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그러자 곧 그의 나병이

깨끗이 나았다.
4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다만 사제에게 가서

네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령한 예물을 바쳐,

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여라.”

언젠가 신부들과 함께

정통 양식 레스토랑에

갈 일이 있었습니다.

자리를 안내 받고서

메뉴판을 받았지요.

저는 메뉴판을 보지도 않고

곧바로 말했습니다.
“저는 비후까스요.”
어렸을 때 먹었던 돈까스,

 비후까스의 기억 때문일까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비후까스’를 주문했습니다.

그러자 함께 갔던 신부들이

요즘에 비후까스 있는 레스토랑이

어디에 있냐면서 핀잔을 줍니다.

그런데 한 선배 신부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메뉴판을 여유 있게

보는 것도 매너야.”
이 신부님께서는

양식 먹을 때의 매너에

대해서 잘 알고

계신 것 같았습니다.

솔직히 이러한 레스토랑에

잘 가지 않는 저로써는

잘 알지 못하는 부분이었지요.

그래서 어떤 매너가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전채요리는 식욕 촉진제이므로

많이 먹지 말아야 하는 것,

수프는 마시는 것이 아니라

떠서 먹어야 한다는 것,

빵은 수프를 먹고 나서

먹어야 한다는 것,

고기 요리는 왼쪽부터

세트로 잘라 먹어야 한다는 것,

로스트 치킨은 손으로

뜯어 먹어서는 안 된다는 것,

샐러드 접시의 위치는 마음대로

바꿔서는 안 된다는 것 등등

지켜야 할 매너가

너무나 많았습니다.
드디어 요리가 나옵니다.

그런데 매너를 따지면서

행동을 하다 보니 식사 시간

내내 불편하기만 합니다.

 특히 식사 매너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한 마디 하시는

신부님 눈치 보느라 더욱 더

불편함이 가득했습니다.

이러한 상태에서 과연

음식 맛을 느꼈을까요?

 아무렇게나 먹어도 상관없는

설렁탕집이

갑자기 떠올려지더군요.

바로 그때 한 신부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매너나 에티켓은

상대방을 편하게 하기

위해서 있는 거잖아.

우리끼리인데 편하게 좀 먹자.”
상대방을 향한 배려가

진짜 매너나 에티켓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이 단지 알려져 있는

매너나 에티켓만 강조하면

그것은 가짜라고밖에

할 수 없지 않을까요?
오늘 예수님께 한 나병 환자가

다가와서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라고 말을 합니다.

 이 말에 대한 뜻은 무엇일까요?

충분히 깨끗하게 하실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으로,

 곧 자신의 병을 치유해달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당연히 이제까지 보여주신

많은 행적을 보면 치유해줄

힘이 분명히 있으시지요.

문제는 주님께서 하고자

하실까 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이러한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나병 환자의 바람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그 사람의

언어로 말씀하십니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주님의 배려하는

사랑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사랑을 바라보면서 내 자신은

얼마나 나의 이웃들을 배려하는

사랑으로 다가섰는지를

반성하게 됩니다.

사랑받기만을 바라고,

사랑을 나누는 데는

인색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가장 가까운 곳에 있으면서도

 때로 남보다도

서로를 이해 못하는,

사랑하고 사랑받는 걸

당연하게 여기면서도

누구보다

상처 주고 상처받는,

구원이자 상처이며

나를 꼭 닮은 타인이

바로 ‘가족’이다.

(김별아)

엊그제 먹은 쫄면.

강화의 조그만 분식점인데

이런 쫄면의 맛은 처음이었어요.

"더 숙이세요."

어느 책에서 읽은

주례사의 내용입니다.
“신랑 신부는 잘 들으세요.

상견례 순서가 되는데

지금 하는 이 맞절은 부부가

살아생전에 하는 절로는

처음이자 마지막입니다.

그러니까 여기에는 두 사람이

평생 쏟아야 할 공경,

사랑, 아낌, 베풂, 더 나아가

상대방 부모님께 드리는

효심까지 다 담아야 합니다.

때문에 이 주례가 그만할 때까지

고개를 계속 숙이고

계시기 바랍니다.

자, 신랑신부 경례...

신랑은 고개를 더 숙여요.

신부도 마찬가집니다.

더, 더, 더, 아직 멀었습니다.

더 숙이세요.”
사랑은 고개를 숙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뻣뻣하게

고개를 들고서는 입으로만

‘사랑’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과정 안에서 사랑은 공허한

메아리처럼만 울릴 뿐이고,

미움과 다툼이 커집니다.

진정한 사랑,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셨던 배려하는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그럴려면 고개를

숙일 수 있어야 합니다.

강화의 또 다릇 맛집.

김밥 하나라도 맛집이 될 수 있네요.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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