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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녹) 연중 제15주일 ...독서,복음서 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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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군 [ahyin70u] 쪽지 캡슐

2021-07-10 ㅣ No.148220

1<가서 네 백성에게 예언하여라.>

아모스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7,12-15

그 무렵 베텔의 사제

12 아마츠야가 아모스에게 말하였다.“선견자야,어서 유다 땅으로 달아나, 거기에서나 예언하며 밥 벌어먹어라.

13 다시는 베텔에서 예언을 하지 마라. 이곳은 임금님의 성소이며 왕국의 성전이다.”

14 그러자 아모스가 아마츠야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예언자도 아니고 예언자의 제자도 아니다. 나는 그저 가축을 키우고 돌무화과나무를 가꾸는 사람이다.

15 그런데 주님께서 양 떼를 몰고 가는 나를 붙잡으셨다. 그러고 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예언하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 아모스 예언자는, 주님께서 양 떼를 몰고 가는 그를 붙잡으시어, 이스라엘에게 예언하라고 말씀하셨다고 전한다.

 

2독서<하느님께서는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셨습니ㄷk.>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서 말씀입니다. 1.3-14<또는 1,3-10>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서 찬미받으시기를 빕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온갖 영적인 복을 우리에게 내리셨습니다.

4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었습니다. 사랑으로

5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를 미리 정하였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그 좋으신 뜻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6 그리하여 사랑하시는 아드님 안에서 우리에게 베푸신 그 은총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였습니다.

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를 통하여 속량을 곧 죄의 용서를 받았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그 풍성한 은총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8 하느님께서는 이 은총을 우리에게 넘치도록 베푸셨습니다. 당신의 지혜와 통찰력을 다하시어,

9 그리스도 안에서 미리 세우신 당신 선의에 따라 우리에게 당신 뜻의 신비를 알려 주셨습니다.

10 그것은 때가 차면 하늘과 땅에 있는 만물을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머리로 하여 한데 모으는 계획입니다.

<11 만물을 당신의 결정과 뜻대로 이루시는 분의 의향에 따라 미리 정해진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한몫을 얻게 되었습니다.

12 그리하여 하느님께서는 이미 그리스도께 희망을 둔 우리가 당신의 영광을 찬양하는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13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진리의 말씀, 곧 여러분을 위한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 안에서 얻게 되었을 때, 약속된 성령의 인장을 받았습니다.

14 우리가 하느님의 소유로서 속량될 때까지, 이 성령께서 우리가 받을 상속의 보증이 되어 주시어, 하느님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십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2독서 주해(해제,역주 김영남 신부님)

3

2고린1.3;1베드1.2참조. 이 첫 문장은 14절까지 이어지는 서두 찬양의 주제문이다. 3ㄴ절에 찬양의 이유로 계시된 하느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축복하셨다는 내용이 무엇인지는 이 서두 찬양을 끝까지 읽어봐야 알 수 있다. 그 축복의 내용인즉 선택. 하느님의 아들이 됨. 죄의 용서와 속량, 신비의 계시, 성령의 날인 등이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하느님의 축복이 그리스도 안에서이루셨다는 점이다. 이 점은 이 서두 찬양에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어구가 얼마나 자주 나오는가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 어구는 옥중서간들을 포함하여 바오로계 문헌에서 160회 이상 나오는데 에페소서에 비교적 자주 특히 여기 서두 찬양에 집중적으로 나온다. 저자는 이 어구를 통해 1.3에서 말한 하느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축복하셨다는 내용을 전개시킨다. “그리스도안에서하느님은 우리를 선택하셨고 은혜를 베푸셨으며 우리를 용서하셨고 함께 일으켜 하늘에 앉히셨으며 만물을 총괄하고자 하셨다.

 

수동태로 표현된 문장들도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우리는 상속자로 뽑혔고 날인을 받았고 하느님과 가까워졌고 선행을 하도록 지음받았으며 소량됨을 받았다. 이렇게 저자는 하느님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위하여 구원활동을 하셨고 하신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리스도야말로 구원의 중개자시다.

 

4

우리”: 7절에서 말하는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죄를 용서받고 속량된 사람들을 의미한다.

 

5

아들이 되는 자격이라고 번역된 그리스어 단어는 본디 종교용어가 아니라 법적 입양을 뜻하는 세속 법률용어로서 칠십인역에서도 아직 모르던 단어인데 신약성서에서는 바오로께 문헌에서만 사용된다. 바오로에게 있어 유다인뿐 아니라 이방인도 하느님의 아들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해 하느님을 감히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는 하느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는 것은 크나큰 하느님의 은혜로서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사건의 중요한 결과다.

 

사랑으로5절과 연결시켜 번역하는 것이 옳다. 하느님의 선택과 예정의 동기는 사랑이다. 여기 나오는 주제 예정은 항상 긍정적으로 하느님의 구원행위에 관계된다. 이 문장을 근거로 선택받지 못한 사람들이 자신의 탓도 없이 멸망으로 예정되었다는 식의 결론을 끌어내서는 안된다. 이런 사변이 하느님의 풍요로운 사랑. 은혜, 호의에 대한 감사의 정으로 가득한 이 서두 찬양에 들어설 자리는 없다.

 

7

특히 골로 1.14참조,“속량또는 구속이라고 번역되는 아폴뤼트로시스의 본래 뜻은 속전을 받고 종이나 포로를 자유인으로 풀어주는 행위다. 이 단어는 이렇게 풀어주는 행위를 뜻하기도 하고 이런 행위의 결과 즉 구속된 상태를 뜻하기도 한다.

 

9

신비”: 유다 묵시문학에서 신비들은 천상에 이미 준비되어 있지만 감추어져 있다가 하느님이 정하신 종말에야 비로소 드러날 사건이나 상황들을 일컫는 데 비해 에페소서에서는 하느님의 계획 안에 감추어져 있었으나 이제 교회를 통해 우주적 차원에서 드러나는 현실을 지칭한다. 에페소서에서는 유다 묵시문학에와 달리 많은 선비들이 아니라 오직 하나인 그리스도의 신비에 관해 말한다.

 

10

역사를 충만함으로 이끄시어”. 직역하면 때들의 충만함의 실행으로”, 오이코노미아는 흔히 경륜이라고 번역되는데, 하느님의 구원계획에 대해 말하는 여기 10절에서는 실행의 의미를 가진다, “(카이로스)들의 충만함이라는 표현은 (크로노스)의 충만함이 오자 하느님께서 당신 아들을 파견하셨다라는 갈라 4.4를 연상시킨다. 에페소서에서 때들의 충만함은 지상 서간들은 정점, 곧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신비가 계시되고 실현되며 전개되는 그리스도의 때를 가리킨다.

 

총괄하다로 번역된 동사 아나케팔라오사스타이가 메팔래보다 케팔라이온에서 파생되었다는 데는 학계에서 이견이 없다. 이 동사는 본디 연설을 마치면서 그 내용을 요약하는 수사적 용어였다. 많은 학자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만물을 총괄한다는 표현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만물의 파괴된 질서를 새롭게 회복시킨다는 의미를 보려고 하는데 에페소서 전체 맥락에서 볼 때 매우 의미 깊은 해석이다.

 

물론 아니케팔라이오사스타이 동사에서 케팔레 라는 단어가 직접 나올 수는 없지만, 저자는 머리를 연상하며 이 동사를 선택했을 개연성이 높다. 이 견해는 하느님께서는 만물 위에 그리스도를 머리로 주셨다라는 22절에 의해 뒷받침받는다. 따라서 10절을 다음과 같이 풀이할 수 있겠다. “하느님께서는 만물을 머리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총괄하시면서 만물의 파괴된 질서를 새롭게 회복시키신다.”

 

11

몫을 맏다라고 번역된 그리스어 동사는 신약성서에서 이곳에만 나오는데, 구약성서에서 제비뽑기와 관련된 단어로서 능동태로는 제비뽑기를 하여 정하야”, 수동태로는 제비뽑기로 선택되다를 뜻한다. 여기서는 하느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선사하신 구원에 그리스도인들이 참여함을 강조하는 역할을 한다.

 

12

13절에 갑자기 나오는 여러분에 착안하여 이를 이방인 그리스도인들로 이해하고 여기 12절의 우리를 유다인 그리스도인만 지칭한다고 보며 그리스도메시아로 번역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더러 있다, 이 주장은 우선 일찍부터 희망을 걸다라고 번역된 프로엘피제인에 의해 뒷받침되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유다인들은 그리스도 전부터 오랫동안 메시아을 매망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주장은 다음가 같은 문제들을 안고 있다.

 

3-14에서 11절까지의 우리는 줄곧 이방인 그리스도인을 포함하여 그리스도를 통해 구속받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지칭한다. 12절에서 갑자기 이 우리를 유다인 그리스도인에게만 한정시키는 것은 무리다. “희망하다를 뜻하는 엘피제인의 목적어에 전치사 엔을 쓰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따라서 엔크리스토 전치사구는 서두 찬양의 다른 데서와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로 번역하는 것이 옳다,

 

프로엘피제인의 접두사 프로는 반드시 시간적으로 미리만 뜻하는 것은 아니며 희망하다를 강조한다고 볼 수도 있다. 사실 희망 자체가 미래에 대한 것이다. “희망을 건이라고 번역된 그리스어는 과거 행동의 결과가 현재까지 지속할 때 사용되는 완료형 분사다. 그리스도를 믿고 세례를 받음으로써 그리스도 안에서” “희망의 상태를 갖게 된 그리스도인 일반에 적용하는 것이 옳다.

 

13

서두 찬양에서 12절까지는 우리라고 하다가 이제 여러분이라고 말한다. 이방인만 지칭한다기보다는 이방인과 유다인을 구별하지 않고 수신자 전체에게 직접 말을 건낸다고 보는 것이 옳다.

 

직역하면 여러분의 구원의 복음복음은 진리의 말씀으로써 그 복음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을 구원으로 이끈다.

13절의 정동사는 여러분은 날인받았습니다”. 그 앞의 두 분사문은 이 정동사를 준비하는데 여기서 성령의 날인은 세례를 배경으로 한다고 볼 수 있다.

 

14

아라본은 보증금.착수금.약조금을 뜻하는 상업용이다. 바오로는 이미 2고린 1.22;5.5에서 하느님이 영의 보증을 우리 마음 안에 주셨다고 말하고 로마 8.23에서도 비슷하게 “,을 미래의 완전한 구속을 위한 맏물이라 부른다. “성령은 우리가 상속할 재산의 보증이라는 14절에 의하면 성령이야말로 신앙인 지금 이미 부분적으로 누리는 구원과 미래의 완전한 구속을 내적으로 연결하는 보증 역할을 한다.

 

직역하면 소유의 속량까지또는 소유의 속량을 위하여매우 어색한 표현이라 번역에 많은 문제점을 일으킨다. 여기서 소유라고 번역된 단어는 소유하는 행동인 자치함을 뜻할 수도 있고 그 결과인소유물.재산을 뜻할 수도 있다. 이 단어가 말라 3.17‘: 1베드2.9에서 하느님 백성이 하느님의 소유라고 번역될 때 사용된다는 사실을 근거로 적지않은 이들이 14절의 소유하느님의 소유라고 번역하여 하느님의 백성에 관한 말로 이해했다.

 

이에 따른다면 문제의 어구를 다음과 같이 풀어볼 수 있다. “(하느님의)소유(인 하느님의 백성)(완전히)구속될 때까지이것은 의미깊은 해석임에는 틀림없으나 과장된 해석인 듯하다. 하느님의 백성을 하느님의 소유라고 보는 생각이 에페소서 다른 데서는 전혀 나오지 않는데도 소유라는 단어 하나만 가지고 그렇게 이해하는 것은 무리다. 14절에서 말하는 구속은 하느님 백성 전체가 아니라 개별 신앙인의 완전한 구속이다. ”소유라는 단어가 1데살5.9: 2데살 2.14에서 구원 또는 영광의 획득“,”차지를 뜻하는 것으로 보아 여기서도 자연스럽게 차지함의 뜻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겠다.

 

1,3-14요약: 5-7절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하느님의 자녀로 받아들이려는 하느님의 구원계획이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 우리 죄를 용서하는 구속사건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는데 8절에서는 이 구속사건의 범세계적 더 나아가 우주적 의미에 대해 말한다. 즉 그리스도를 통한 역사적 구속사건은 만물을 그리스도 안에 총괄하려는 하느님 지혜의 계획을 계시하는 사건이다. 하느님은 이 계획을 이미 세상 창건 전부터 가지셨지만 시간들이 충만하게 될 때비로소 실행하고자 하셨다.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 구속된 우리는 이 우주적 구속사건에 관련되어 이미 하느님으로부터 우리 몫을 받았다. 그리스도 신앙인 실존은 하느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한다. 이방인을 포함하여 모든 신앙인이 성령으로 날인받아 충만한 구속 유산의 보증을 가진 희망의 사람들이다.

 

 

 

복음<예수님께서 그들을 파견하기 시작하셨다.>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7-13

그때에 예수님께서

7 열두 제자를 부르시어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고, 둘씩 짝지어 파견하기 시작하셨다.

8 그러면서 길을 떠날 때에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빵도 보따리도 전대에 돈도 가져가지 말라고 명령하시고,

9 신발은 신되 옷도 두 벌은 껴입지 말라고 이르셨다.

10 그리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어지에서난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그 고장을 떠날 때까지 그 집에 머물러라.

11 또한 어느 곳이든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고 너희 말도 듣지 않으면, 그곳을 떠날때에 그들에게 보이는 증거로 너희 발밑의 먼지를 털어 버려라.

12 그리하여 제자들은 떠나가서, 회개하라고 선포하였다.

13 그리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고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부어 병을 고쳐 주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서 주해(해제.역주 정양모 신부님)

7

심부름꾼을 둘씩 보내는 사례는 유다교 문헌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유다교의 영향을 받아 초대교회에서도 둘씩 파견하는 견해가 있었다.

 

8

8-9절은 여행채비에 대한 훈시인데 꼭 필요한 것 외에는 아무것도 허용하시지 않는다. ”지팡이는 맹수와 강도 따위를 물리치는 데 필요하고 핸들은 가시나 돌이 많은 땅을 돌아다니자면 신어야 한다. 그런데 어록에서는 지팡이와 샌들조차 허락하시지 않는다. 속옷을 두 벌 껴입는 것은 부자들이 하는 것이므로 금하신다. 예수님의 철저한 모습. 아니 과격한 모습이 엇보인다. 필수불가한 것 이외 모든 것을 떨쳐버리라고 요구하신다. 가벼운 몰가짐. 홀가분한 마음가짐으로 오직 전도에 헌신하라는 것이다.

 

 

10

저 좋은 점을 찾아다니지 말라는 것이다. 여기 전도훈시와 관련하여 100년경 방랑전도자들에 관한 훈시를 참고할 것이다. ”여러분은 사도들과 예언자들에 대해서 복음의 원칙을 따라서 이렇게 하시오. 어느 사도든 여러분에게 오면 주님처럼 영접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는 하루만 머물 것입니다. 필요하다면 다음날도 머물 것입니다. 그러나 사흘을 머무른다면 그는 거짓 예언자입니다. 그리고 사도가 떠날 때에는 (다음 장소에서)숙박할 때까지 (필요한)빵밖에는 아무것도 받지 말야 합니다. 만일 돈을 요구한다면 그는 거짓 예언자입니다.

 

11

번지를 터는 것은 절교를 뜻하는 상징적 행동이다. 헐어버린 먼지는 제자들이 그곳을 다녀갔음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배척했다는 표시로 남아 종말심판 때에 불리한 증거가 될 것이다.

 

12

외치다”= “선포하다

 

13

병자들에게 기름을 바르는 치유법은 널리 유행했다. 제자들이 그런 치유법을 사용했다는 기사는 네 복음서를 통틀어 여기에만 있다. 초대교회 관습을 반영한 것이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분도출판사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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