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30일 (일)
(녹) 연중 제13주일(교황 주일)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따뜻한이야기 신앙생활과 영성생활에 도움이 되는 좋은 글을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을지로 뒷골목의 음식 나누기

스크랩 인쇄

이옥경 [rheeok88] 쪽지 캡슐

2002-05-22 ㅣ No.6416

 

번화가인 서울의 을지로 뒷골목에는 봉제 공장, 인쇄소, 종이 만드는 공장 등 갖가지

 

영세업소들이 벌집처럼 빈틈없이 들어서 있습니다.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나 홀로 사장’들입니다. 그들은 대개 점심을 식당에서 시켜 먹습니다.

 

 백반이나 찌개, 또는 생선구이 등을 주문하여 먹고 식반을 신문지로 덮어 점포 앞이나

 

계단에 내놓습니다. 바람이 불면 남은 음식 속으로 먼지나 오물이 얹히기 일쑤지만,

 

언젠가부터 그 음식들을 눈치보며 허겁지겁 먹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때로는

 

여인이 비닐 봉지에다 담아가기도 하고, 혹은 폐품을 주워 연명하는 할아버지께서 마치

 

꿀꿀이 죽처럼 지저분하게 남겨진 음식 찌꺼기를 두 손으로 부지런히 드시기도 했습니다.

 

 그 날도 언덕배기에서 뒤로 미끄러지면 수레와 상자의 무게에 깔려 끔찍 한 일을 당할

 

 것만 같은 위험한 상황에서 할아버지 한 분이 손으로 눈을 털며 계단에 앉아 남은 찬

 

음식을 들고 계셨습니다. 따뜻하고 정갈한 음식도 들기 어려울 연세에, 이미 얼음장 같은

 

음식들은 잘 넘어가지 않는 듯 보였습니다.그때 옆 가게에서 누군가가 나왔고 할아버지께

 

따뜻한 물과 소주를 조금 가져와 말을 붙이는 이가 보였습니다. 다음부터는 깨끗이

 

보관해둘 테니 자주 오시라는 말을 했고, 할아버지는 연신 고맙다고 인사했습니다. 그리고

 

일이 있어서 술은 마시지 않겠다는 말씀이셨습니다.

 

 그 뒤로 알게 모르게 여러 주민과 영세업자들은 누구나 이심전심이 되었습니다. 꼭 먹을

 

음식만 손 대고 깨끗이 가다듬어 식반을 내어놓았습니다. 이들 모두 어떻게든 함께

 

살아가야 할 사람들입니다.

 

                                       소금항아리에서



394 0

추천 반대(0) 신고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