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4일 (목)
(녹) 연중 제13주간 목요일 군중은 사람들에게 그러한 권한을 주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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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Re:선교를 하려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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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영혼 [61.106.108.*]

2007-02-02 ㅣ No.4915

 

   구구절절 하느님만을 흠숭하려는 아들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예수님 덕분으로 계속 올리세요.

   하느님의 이름을 합부로 부르지 않으려는 의지도 빛납니다. 알지요? 예수님의 은총에 감사하는 것.

   주일을 거룩히 지내야 한다는 의지도 좋아보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의 선교 기도도 자주 하시구요.

   부모에게 효도하려는 형제의 의지가 참 아름답습니다. 천국 문지기이신 베드로처럼 계속 용기 잃치 마세요.

  

   사람을 죽이지 않는 천주교리를 계속 묵상할 수 있도록 허락하시기에 성모님께서 뜸을 들여주십니다.

   간음하지 말라는 계시가 있었기에 생리욕부터 허덕이는 이사회의 우리들에게 더 큰 기쁨을 제시하십니다.

   도둑질을 하지 말라는 엄명도 함께 하시기에 때때로 말과 행위뿐 아니라 생각까지 침묵해야 한다합니다.

 

   거짓증언을 하지 말라 명하셨기에 조금 더 아기처럼 시작하고 노인의 겸손으로 잠들라 하십니다.

   남의 아내를 탐내지 말라 하셨기에 어느 보좌 신부님은 나도 어여쁜 아내(성모님)를 맞고, 주임신부(예수)가 되고 싶다는 농담을 하시기도 합니다.

 

   남의 재물을 탐내지 말라 하셨기에 깊은 신앙을 가졌고 주님의 그 은총으로 부자가 되었으나 잘못된 사랑으로 아들의 입시를 위하여 지난 한달여전 졸부인 음대 교수에게 가난한 우리들의 시각에서 뇌물을 쥐어주는 그것을 보고도 침묵하는척 해야 했습니다. 점점 복잡해지지는 않는지요? 이런 사람들은 뇌물과 감사의 개념이 흐려진 사람들입니다. 대화가 타이밍인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아무튼 아들로서 참 훌륭하십니다. 우리 아버지는 필자가 아홉살 때 익명의 신자로서 돌아가셨지요.

 

   답은 역시 하나이자 세가지입니다.

 

   아버지를 사랑하는 아들의 그 마음으로 지금의 그 굳건한 신앙을 다섯가지로 묵상해보세요.

 

   일지기 저 순교자들은 망해야 사는 것을 체험하신 분들입니다.

   4대 박해중 가장 많은 순교자의 목을 친 대원군은 이로서 정치적으로 굳건한 입지를 취득하여 몇년동안 그 안위를 도모하기도 하였습니다. 자칫 아들의 그 사랑이 결과적으로 개신교 선교로 끝날 소지가 엿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개신교가 때로는 시끄럽게 선교함으로서 결과적으로 천주교가 어부지리 선교 효과를 얻고 있듯이 하느님 섭리를 그처럼 내가 조정하려 하지 않으면 잘 될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개신교 찬송을 먼저 들으려는 것도 자연스러운 발상일 수 있습니다. 너무 개의치는 마시고 다만 더 깊이 숨겨진 천주교 성가도 설명해 드릴 수 있는 힘을 길러보세요.

 

어차피 지난 10년간 늘어난 그리스도교인 240만중에 천주교 신자 증가수가 궨히 220만인것이 아니잔아요.

 

천주교는 지난 10년간 유연하였고, AD 33년으로부터의 정통성이 있으며, 오공등의 불의에 항거하던 정의감이 투철하고, 어제도 오늘도 헌금 운용이 투명하며, 더 열린마음을 지향할 수밖에 없기에 개신교에서도 자체적인 모순등에 식상한 나머지 돌아오는 아들이 많습니다.

 

이 다섯가지를 잘 묵상하고 다시 바치면 형제님도 틀림없이 기도생활, 공부생활, 봉사생활, 성사생활, 공동체 생활의 조화로서 그리스도의 오상(다섯 상처)을 조금씩 더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형제님이 보편적인 견지보다 부자이기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제일 어려운 것이 가족 선교인데 살아서 움직이는 형제님의 글을 보며 어찌 우리 신앙인들이 함께 기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물질적인 부자들도 그것을 더 불리기 위해 통장쪼개기등으로 그것을 더욱 잘 관리하기 때문에 형제님의 다섯가지 그것 쪼개기는 흘륭한 성과를 이루어내기 충분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조금씩 더 형제님에게 힘을 실어주실 것입니다.

 

가톨릭은 결과보다 계속하여 과정을 중시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가급적 미사때에 제일 먼저 주님의 제대부터 바라보는 것 잊지 마시고 필자처럼 무식하게 바치려 하던 시행착오도 경계하면서 잘해보시기 바랍니다.

 

하느님께서는 반드시 형제님의 그것을 들어주실 것입니다. 부자간에 독백이 아닌 대화의 모습도 참 아릅답습니다. 이것은 살아있는 기도인 것입니다.

 

오십견 치유같은 경우는 대다수 꾸르실리스따(그리스도 병사)들도 무관심한 경우가 많은데, 하늘향해 어둠속에서 양팔기도의 체험을 권하고 싶습니다. 언제 한번 날 잡아서 아들로서 아래와 같이 먼저 체험을 권하고 싶습니다.

 

1. 양팔기도로서 묵주기도 100단을 바친다(필자의 견진 대자는 엄청난 전신 류마티스의 고통을 하루 묵주 기도 100단으로 바쳐야 했기에 지금은 완치된 상태이기도 합니다. 당시 수녀님을 언니로 둔 자매와 깊은 사랑을 나누었으나 부모의 반대로 갈라지는 아픔을 경험하기도 하였는데 지금은 핸드폰 초기 화면에 그녀의 환한 얼굴을 두고 다니는 숙제를 안고 있습니다).

 

2. 처음에는 주님을 만나는 기쁨으로 분심을 멀리한다.

 

3. 30분 뒤쯤부터 부활하신 주님이 대신 이루어주시기에 하나도 아프지 않은 것을 체험할 수 있다.

 

※ 양팔기도 역시 내 의지로 하는 것이 아니고 주님 의지로 바쳐야 합니다. 오십견 정도야 그냥 치유가 되며, 인간이 어린아이같은 맘이기도 한지라 양팔기도후 손을 내리면 무지무지 평화로워짐을 체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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