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8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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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지갑과 함께 돌아온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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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경 [ppebble] 쪽지 캡슐

2003-01-07 ㅣ No.7989

 

 

친구들과 만나 맥주를 곁들여 저녁 식사를 하고 헤어진 길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택시 안에서 무심코 주머니에 손을 넣어보니 지갑이 없었다.

택시 기사에게 부탁해서 부랴부랴 조금 전 맥주와 식사를 했던 명동의 식당에

달려가 보았지만 그곳에도 지갑은 없었다. 돈도 돈이지만 지갑 속에 들어있던

주민등록증과 은행 신용 카드를 분실 신고하는 일과 그것들을 다시 만드는 일,

그 동안 신용 카드의 분실이 가져올지 모를 피해 등에 생각이 미치자,

몸에서 썰물처럼 기운이 빠져 나갔다.

 

집에 돌아와, 책상 앞에 망연히 앉아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밤 열두시가 넘은 시각. 조용한 중년의 여인의 목소리에 의하면, 남편이 남산

산책길을 걷다가 길가에 버려진 지갑을 주웠는데 주인을 알아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지갑을 열어보았더니 나의 명함이 있어서 이렇게 전화를 한단다.

그 목소리는, 현금은 하나도 없지만 주민등록증과 은행 신용카드가 들어 있고,

밤새 걱정할 것 같아서 늦었지만 이렇게 전화를 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나는 그녀와 다음날 12시에 강남의 한 지하철 역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다음날 내가 집을 나서려니까, 아내가 지갑을 찾으러 가려면 누구를 하나 데리고 가는 것이

좋겠다고 근심스런 어조로 말을 한다. 밤 열두 시에 남산을 산책하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

뭔가 함정이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명동에서 잃어버린 지갑이 바로 얼마 후

남산 산책길에 버려져 있었다는 것도 이상하다 했다. 하지만 나는 그저 웃고 집을 나섰다.

 

약속 장소인 지하철 역 앞에서 오버 코트를 입은 중년 여인을 만나 지갑을 돌려받고

현금을 제외한 내용물이 고스란히 들어 있는 것을 확인한 나는 실례를 무릅쓰고

지난밤부터 궁금했던 점을 물어 보았다.

"부군은 무얼 하시는 분인데 그 늦은 시간에 남산을 산책하세요?"

"아, 네, 제 남편은 회사원인데, 시아버님이 몸이 편찮으셔서 퇴근 후

매일 밤 아버님을 모시고 남산 길을 산책시켜드리거든요. 어제도…"

"아니, 요즘에도 그런 효자가 계세요!"

 

이 말과 함께 내가 주머니에서 사례금 10만 원을 담은 봉투를 꺼내자

여인은 벌써 저만치 잰걸음으로 뛰어 갔고, 나는 그 뒤를 쫓아가서

그녀의 코트 주머니에 돈 봉투를 억지로 쑤셔 넣었다.

 

전화가 다시 걸려온 것은 2~3일이 지나서였다.

"저 일전에 지갑 주워드린 사람인데요."

"네, 그런데요."

혹시 추가로 뭔가를 요구하려는 것일까? 그런 생각이 떠오르면서

나는 갑자기 긴장이 되었다. 그녀가 말했다.

"그때 저에게 주신 봉투를 집에 와서 열어보니 너무 큰돈이었어요.

그래서 아버님을 모시고 가족회의를 해서 불우청소년 돕기 모임에

기부하기로 했거든요. 이렇게 전화를 거는 것은 선생님 이름으로

기부했기 때문에 혹시 그 모임에서 선생님께 돈을 받았다는 연락을 할지

몰라서 미리 알려드리려고요…"

 

 

- 샘터(2003.1월호), 문용 님의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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