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순례ㅣ여행후기
청주교구 연풍성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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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그리스도의 평화) 청주교구 연풍 성지 연풍은 1866년 병인박해 때 갈매못에서 순교한 성 황석두 루카의 고향이며, 최양업 신부의 발자취가 서려 있는 곳으로 초대 교회부터 신앙공동체가 형성되어 있던 뿌리 깊은 교우촌이다. 연풍 마을과 문경 새재의 구석구석마다 선조들의 자취와 피의 순교 역사가 어려 있다.
위치: 충북 괴산군 연풍면 삼풍리 187-2 찾아가는 길:[승용차] 중부내륙고속도로 연풍IC에서 내리면 우측 5분 연풍 지역에 복음이 전파된 것은 한국 천주교회가 창설된 직후로 추정 이후 박해가 계속되면서 이 연풍 지역에도 신앙 공동체가 형성되었고, 연풍에서는 황석두(黃錫斗, 일명 재건, 1813~1866, 루카) 성인의 그뿐만 아니라 신앙에 눈뜬 뒤 그는 정결을 지키는 생활을 해 페레올 갈매못 모래밭에 가매장된 황석두 성인의 시신을 성인의 조카이자 양아들인 황천일 요한이 4월 그믐에서 5월 초승 사시에 수습하여 홍산 삽티(현 부여군홍산면 상천리)에 이장했는데 <((병인박해 순교자 시복 재판기록(1차)>> 6권1095쪽과 1111쪽), 황석두 종조손인 황 마르타(황 안드레아의 딸)가 분명히증언하기를 "4월 16일에 나의 백부가 가서 시체를 가져왔다고 합니다. 홍산(鴻山) 삽티에 묻었습니다. 지금은 자손(子孫)이 없기 때문에 가더라도 찾지 못합니다."라고 하였다. 연풍에는 한 가지 웃지 못할 일화가 전해진다. 병인박해로 한국 교회는 아홉 명의성직자를 잃었다. 천신만고로 세 명의 선교사가 목숨을 건졌는데 그중 칼레 (Calais,姜, 1833~1884, 아돌프) 신부에 얽힌 이야기가 그것이다. 달레의 <<한국 천주교회사>>에 의하면 칼레 신부가 연풍을 지나던 중 포졸들에게 발각돼 도망치다가 붙잡히려는 찰나에 그만 전대가 풀어져 돈이 떨어졌다. 그를 쫓던 포졸들은 돈을 줍느라 정신이 없었고 그 틈에 간신히 도망칠 수 있었다는 것이다. ■ 김흥금(金興金) 김흥금(1765!1815),순교자, 세례명 미상, 일명 명숙, 충청도 홍주에서 태어났다. 가난으로 인해 연풍의 교우촌으로 이사한 후 1801년 아들 장복(長福), 딸 작단(作丹)과 함께 입교하였다. 그러나 입교한 지 얼마 안 되어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경상북도 진보로 피신, 그곳에서 살았다. 그러던 중 1815년 부활 축일을 지내다가 김시우, 이시임 등 마을 교우 30여 명과 성지 안내글의 출처: 가톨릭출판사/ 순교자의 맥을 찾아서 / 오영환. 박정자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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