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8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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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관 일기92/김강정 시몬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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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탁 [daegun011] 쪽지 캡슐

2001-07-19 ㅣ No.4145

 

               사제관 일기 92  

 

혼배 미사가 있었습니다.

이곳서 처음으로 주례를 맡은 혼배였습니다.

조당을 풀고, 새 결혼을 하려던 분들인데,

나서기가 서먹해 감추려던 것을 제가 크게 부풀려 성대히 식을 올려드렸습니다.

걱정과는 달리 교우님들도 많이 참석해주셨고,

일가친척과 우인들도 자리를 가득 메워주셨습니다.

............

이민사회다 보니 한국의 결혼정서와는 사뭇 달라,

이곳은 이혼자도, 조당자도 다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교회를 떠난 분들도 많으시다 들었습니다.

와서보니, 그로 인해 애를 태우시는 분들도 제법이나 계셨습니다.

앞서 몇 분은 서둘러 풀어 드렸지만,

마저 풀어야 할 숙제가 아직은 더 남은 것 같습니다.   

어떻게든 손길이 닿는 데까지 맺힌 것들을 다 풀어주고 싶습니다.  

그래서, 더는 그늘진 모습으로 살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

조당에 묶인 채, 이방인으로 살아왔던 그들의 전과를 없애주는 일,

그 역시 사제로서 갖는 작은 보람이며 행복인 것 같습니다.

미사 내내 벙글거리며 웃음을 흘리는 신랑신부를 보면서,

사제의 마음도 덩달아 흐뭇해졌으니 말입니다.

어둡고 그늘진 얼굴만 봐오다 오랜만에 맑은 모습을 보니,

그 기쁨이 꼭 제 것 같아 더 기뻤습니다.  

...........

"신부님, 열심히 살겠습니다......"

그 한마디 말씀으로도 배가 부르고, 행복해지는 오늘입니다.

신부를 꼬옥 껴안은 신랑과 신랑의 품에서 마냥 행복한 모습의 신부.....

사랑의 아름다움을 또 한번 느끼는 순간,

인간적인 부러움과 함께 부끄럼이 살포시 샘솟습니다.

 

같은 신부인데도,

한 신부(新婦) 는 신랑의 품에 저토록 행복하거늘,

한 신부(神父) 는 님의 품에서도 그늘진 모습으로 살고 있으니.

나날이 신랑의 품을 뛰쳐나오는 이 외도를 빌어야겠습니다.

 

그리고,

오늘밤은 제 신랑을 더 기쁘게 반겨드려야겠습니다.

한복 차림이 참 잘 어울리던 그 한 쌍처럼,

마음의 옷장을 열고, 제 신랑과 잘 어울릴 옷가지를 찾아봐야겠습니다.

아직 한번도 바꿔 입지 않은 이 낡은 마음의 옷을 벗고,

님이 주신 새 마음의 옷으로 갈아입겠습니다.

그리고 몸단장도 곱게 해놓고, 님을 기다려 맞겠습니다.

하여, 오늘밤  님이 오시면,

님이 계셔 행복한 밤이라 속삭이며,

새 신부의 수줍음으로 님의 품으로 달려들고 싶습니다........

 

                                              괌 한인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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