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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성사의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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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ystefano] 쪽지 캡슐

2002-03-21 ㅣ No.3426

3월 22일 사순 제 5주간 금요일-요한 10장 31-42절

 

"너희는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될 것이다."

 

 

<고백성사의 기쁨>

 

요즘 각 본당에서는 이제 연례행사가 되어버린 판공성사가 한창입니다. 저도 요즘 일손이 딸리는 몇몇 본당 신부님들을 도와드리면서 참으로 은혜로운 체험들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판공성사를 집전하다 보면 재미있는 일들도 많이 생깁니다.

 

90세 가까이 되신 제 열렬한 팬클럽 회원 할머니 한 분은 고백소에 들어오시면 늘 먼저 하시는 일이 앞에 가려져 있는 흰 천을 확 들어올리시면서 "나요, 나! 나왔슈!"하고 인사부터 하십니다.

 

또 다른 할머니 한 분은 얼마나 상황묘사력이나 표현력이 뛰어 난지 듣고있노라면 마치 한편의 감동적인 라디오 드라마를 듣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똑같은 레파토리여서 이젠 저도 그 집 며느리들의 성격까지 다 꿰고 있을 정도입니다.

 

아무튼 판공성사는 우리 한국천주교회가 지니고 있는 아름다운 전통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많은 분들이 고백성사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하고 또 활용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냥 판공성사표가 나왔으니, 또는 냉담자로 처리되고 싶지 않아서, 어머니가 강제로 가라고 하니까, 그것도 아니면 남들이 하니까, 습관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느님이 아닌 부족한 한 인간인 사제 앞에서 자신의 치부를 드러낸다는 것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상당한 부담감을 지닌다는 것을 자주 확인합니다.

 

그러나 고백성사는 우리가 그토록 부담을 느끼는 고통의 성사, 수치심을 유발시키는 통과의례로서의 성사가 결코 아닙니다. 참된 고백성사는 기쁨의 성사이며 자유와 해방에로 우리는 인도하는 은총의 성사입니다.

 

우리는 하느님 아버지를 언제 어떻게 만납니까? 다양한 삶의 체험을 통해서이겠지요. 특히 우리 자신을 겸손 되이 낮출 때, 하느님은 보다 확실한 형상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참으로 부끄럽지만 우리 자신의 적나라한 실상을 솔직히 드러내는 순간 하느님께서는 거짓말처럼 우리 생의 한 가운데로 스며드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하느님 아버지와 하나임을 강조하고 계십니다. 언제나 하느님 아버지와 일치된 삶을 사셨던 예수님의 비결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언제나 자신을 솔직하게 하느님 아버지께 개방시켰던 자녀다운 겸손함, 하느님 아버지를 향한 지극히 단순한 신뢰심 때문이었습니다.

 

삶의 기쁨과 성공은 물론이고 고통과 슬픔, 좌절과 한계에 대해서 하느님 앞에 솔직히 말씀드리는 자녀다운 마음이 예수님의 비결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하느님 아버지께 온전히 종속되어 있는 존재임을 자각하고 계셨습니다. 따라서 그분의 뜻이 아니라면 걸음 한 발 자국도 내딛지 않으셨습니다.

 

이런 차원에서 볼 때 우리가 하느님 아버지와의 일치를 위한 가장 소중한 도구는 바로 고백성사입니다. 우리가 이 고백성사를 적절히 잘 활용할 때 우리의 신앙은 한 단계 비약적인 성장을 하게 될 것입니다.

 

고백성사는 단순한 죄의 나열과 보속의 이행으로 끝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고백성사는 우리를 다시 한번 하느님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가게 하고 그분과의 일치 안에 머무르게 하는 기쁨과 감사의 성사입니다. 절대로 무의미한 성사가 아닙니다. 절대로 적당히 해치우는 연례행사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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