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8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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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관 일기82/김강정 시몬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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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탁 [daegun011] 쪽지 캡슐

2001-06-29 ㅣ No.3964

 

             사제관 일기 82  

 

어느덧 날이 저뭅니다.

밤하늘엔 별들이 총총히 떠다니고,  

그렇게 사제관은 적막 속으로 한 걸음씩 다가앉고 있습니다.

소슬한 바람 한줌이 좋아, 바깥 벤치에 오래도록 앉습니다.

늘 혼자서 부르는 노래지만,

우리 애들이 옆을 꼭 붙어 앉아 꼬리를 흔들며 응원을 보내줍니다.

이것이 나날이 이루어지는 사제관의 밤 풍경이라는 사실은 아무도 모를 겁니다.

..........

소곤이던 이들마저 서둘러 돌아간 빈자리, 그 텅 빈 고요가 내려앉으면,

그제야 사제관의 밤은 이렇게 시작이 됩니다.

저는 이런 사제관의 밤이 너무 좋습니다.

외롭거나 적막하다는 이름으로는 못다 표현 할 이 아름다움.......

그래서, 이 밤을 은총의 밤이라 이름하고 있습니다.

........

그러고 보니, 하느님도 참 별나십니다.

수풀이 우거지면 더 좋고,

인적 없는 곳에서 도(道)나 닦으며 살면 좋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는데,

어느 날, 꼭 그런 곳에다 뚝 떨어뜨려 놓으셨습니다.

짓궂은 어른이라, 능히 그러실 줄은 알았지만,

그 곳이 정글 한복판일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번번이 물을 먹이시는 이 황당한 어른 때문에 행복한 곤욕을 치릅니다.    

............

그렇지만, 그분이 왜 그러시는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분은 항상 앞을 생각하며 뒤를 치시고, 둘을 주기 위해 하나를 거두십니다.  

골탕을 먹이는 그분 특유의 장난기 때문에 애도 먹지만,

훗날에 여겨보면 모두가 사려 깊은 은혜임을 알게 됩니다.

..............

첫 달에는, 텅 빈 정글 숲에 왔다며 불평도 여간치 않았습니다.

전원생활에 낯설다 보니, 불편도 했고, 쓸쓸하고 허전도 했습니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하면, 잃은 것보다는 얻은 게 훨씬 많았음을 깨닫습니다.

도리어 여기가 지친 마음을 위로하는 안식의 공간이 되어 주었고,

저는 자연의 놀라운 치유력 안에서 보다 더 큰 사람으로 커가고 있습니다.

..........

도심의 휘황한 빛깔보다 자연의 색깔은 훨씬 멋없지만,

저는 그 단색이 주는 아름다움을 나날이 발견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연 속에서 저만의 색깔도 찾아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란하지는 않지만,자연처럼 제 나름의 한색깔만 지니며 살아가겠습니다

...........

자연에서 이루어지는 이 연중의 피정.....

그 하루 하루를 침묵과 묵상으로 수련하며 은혜 삼아 살고 있으니,

비로소 어른의 큰 뜻을 감사할 수 있겠습니다.

이제는 당신의 뜻을 제 뜻으로 절대 저울질하지 아니 하겠습니다.

사막의 한 복판에 떨구어 놓으셔도,

당신 뜻만을 여겨 더 깊숙이 들어가겠습니다

 

하지만, 제발로 여겨주시기를,

이 말씀은 한 귀로 흘려들으시고,

당신의 뜻대로 절대 사막만큼은 보내지 말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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