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8일 (금)
(홍) 성 이레네오 주교 학자 순교자 기념일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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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 한 필에 수 놓은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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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선 [cskim74] 쪽지 캡슐

2001-05-10 ㅣ No.3468

 

   화창한 봄날이 오면 어머님의 모습이 더욱 그립습니다. 제가 어린시절 어머님께서는 겨우내 물레를 돌려 무명실을 뽑아 두셨다가 이른 봄날 시골마당 양지 바른 곳에 잿불을 피워놓고 베를 맨후(무명실에 풀을 입혀 솔질을 한후 불에 말리는 과정), 베틀을 차리고 베를 짜며 길쌈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기 때문입니다. 온 종일 베를 메다보면 끼니도 잊어야만 했기에 어린 제가 "엄마 배고파."라고 옆에서 보채면 잿불에 씨감자를 구워주시며 달래셨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어느 해인가 저는 베짜시던 어머님께 "장터에 가보니 광목이나 옥양목이 많이 나오는데 무얼 하시려고 힘드시게 베를 짜세요?"라고 여쭈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그래 이젠 길쌈도 더 이상 소용이 없구나. 그러나 이번만은 올이 곱게 잘 짜서 너 장가 갈때 혼수감으로 쓰련다." 하시며 미소를 지으셨습니다. 그렇게도 정성스레 마련한 무명 한 필은 먼 훗날 처가댁에 함 파러 가는 날까지 어머님의 장롱 속에 오래오래 간직되었습니다.

 

   한올한올에 어머님의 손끝이 닿아 무명 한 필에 수놓은 사랑을 그리며  언젠가 아내에게 "무명에 미색이나 코발트 색을 염색하여 여름용 이불이나 침대시트를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하였다가 "촌스런 발상"이라며 딱지를 맞은 후로는 또다시 스무해가 지나도록 옷장속에 갈무리 해야 했습니다.  이삿짐을 처가에 맡겨두고 해외근무를 마치고 귀국하던 여름날 장모님께서 무명을 장속에 그냥두면 무엇하느냐며 여름이불을 만들어 건네주실 때 돌아가신 어머님 생각에 젖어 고맙다는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체 눈시울을 붉혔던 기억이 납니다.

 

   올해에도 어김없이 다가온 어버이날, 섬섬옥수로 마련하신 혼수감은 잊을 길이 없지만, 따뜻한 이야기 가족 여러분에게 "어머님의 그리움"(#1853)을 통해서 고백 하였듯이 살아계신 동안 효도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한 죄책감을 떨쳐버릴 수가 없습니다.  뭇 사람들이 "부모사랑은 내리사랑"이라고 하는데, 우리집 두 아이들도 이제 장성하여 성인이 되었는데도,  어머님께서 장만하신 무명 한 필같은 혼수감은 커녕 아이들 교육비 마련에도 허덕이는 저의 삶의 모습을 되돌아 보면 더욱 숙연해 질 따름입니다.  어버이날을 지내며 어머님의 영혼의 안식을 위하여 조용히 침묵의 묵주기도를 바쳐봅니다.  어머님 참 고맙습니다.   JTB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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