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3일 (월)
(홍) 성 가롤로 르왕가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소작인들은 주인의 사랑하는 아들을 붙잡아 죽이고는 포도밭 밖으로 던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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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Re:본시오 빌라도는 나쁜사람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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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영혼 [222.110.253.*]

2015-09-25 ㅣ No.10988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본시오 빌라도는 나쁜사람이면서 좋은사람이다.라는 묵시의 임의 말씀이 맞습니다.

깊은 나와 깊은 너이신 주님과 내가 있겠는데 본시오 빌라도는 때때로 주님을 내 몸과 마음 감옥에 가둬두는 우리 자신의 모습과 닮아있기 때문이지요.

 

싸움구경 불구경 휩쓸리기 좋아하는 군중들은 이때에 당신이 예수님을 풀어주면 로마 황제의 친구가 될 수 없다고 압박을 합니다. 이에 본시오 빌라도는 정치인으로서 애환을 보여줍니다. 정치라는 것도 이나라의 보수적 신부님은 사제는 정치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라고 하시고 진보적 신부님은 정치가 곧 신앙이라며 반론을 제기합니다. 이를 인간이 가지고 있는 네가지 관점에서 과연 이분들이 너죽고 나살자의 뺑소니 운전자형이냐 너죽고 나죽자의 부부싸움형이냐 아니면 너살고 나살자의 공자형이냐를 논하기에 앞 서 너살고 나죽자의 예수님 말씀을 믿고 듣고 보려는 의지가 중요할 것입니다. 반면 무신론자인 故 스티븐 호킹 박사의 과학은 보고 듣고 믿는데 본시오 빌라도는 이 두가지에서 갈등하고 결국 개인주의 이기주의로 자신의 손만 씻는 행위로 신앙과 과학 조화에도 모범을 보여주신 무고한 예수님을 십자가형에 처하도록 방관한 것입니다.

 

사랑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란 이야기지요. 본시오 빌라도를 보다 깊이 탈피하기 위하여 우리는 예수님 함축 생애를 묵상하는 묵주기도를 더욱 즐기게 될 것입니다. 필자는 성가를 오래해서 그런지 세속 가요를 누구보다 더 좋아하면서도 대중가수들의 예수님이 아닌 본시오 빌라도형의 술과 여자와 노래가 무분별로 뒤범벅 된 음색들 위험성에도 더욱 민감해짐을 볼 수 있겠습니다.

 

이는 고음으로 갈수록 하느님 권세음에 관심 갖는 더 맑고 경건하며 힘있는 그러한 음색이 아닌 땅의 권력음 등의 악성이라던가 느끼한 음색에 대한 거부감과 여인들 경우는 저음들 아무리 곱더라도 고음에선 뭔가 찢어지는 아주 불쾌한 음색등이 거부감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이럴때 한편으론 내가 본시오 빌라도로 머물며 예수님 사랑을 유린하는 현상으로 지나칠 수 있기에 상대의 영혼을 바라보며 적극적으로 기도하는 자세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어집니다. 두 배의 기도인 노래도 결국 내안의 깊은 나이신 주님과 일대일 대화를 추구할수록 청중이 많아져도 분심 소멸될 것이며 어떤 자리에서도 유감없이 발휘할 내 자신을 예비하는 것이지요.

 

그러다 보면 어느날은 내가 바보가 된 듯 하지만 예수님 십자가에 못박히시는 순간 저들이 지금 무슨 죄를 짓고 있는지 모릅니다.에서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소서.등의 예수님 큰 사랑 닮아가는 마음으로 미운정들이 고운정으로 바뀌기도 할 것입니다. 사람에 속하지 않고 하느님께 속하려는 태도 또한 빌라도의 의지로서는 유한할 뿐입니다. 본시오 빌라도는 유다처럼 자살로 생을 마쳤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느님 죽음까지 방관하며 영원한 죽음으로 추락한 것이지요. 국민은 이런 사람들이 정치를 하는 것에 대한 분노심이 일기도 합니다. 하지만 분노보다 더 귀한 것은 사랑이기에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을 영접하는 자세는 소중하고 또 소중합니다.

 

본시오 빌라도를 닮은 정치인들 또한 때때로 그나물에 그밥으로 다가오기에 유권자들 또한 물질주의와 생명경시를 더욱 경계해 나가야 하겠는데 이에 위정자들을 위한 기도를 필자도 게을리 할 수 있기에 돌아오는 미사 때에는 그나물 그밥 사고를 조금이라도 더 정화하여 주님의 물과 피, 그리고 성체 은사를 영접해야 하겠습니다.

 

잠시 본시오 빌라도와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는 순간 예수님 일곱마디를 복기하며 이날 2주기를 맞으신 작가 최인호 베드로님 영전에 바친 낙서 한 줄을 첨삭해 봅니다.

 

아버지! 저들은 지금 무슨 죄를 짓고 있는지 모릅니다.

어머니! 이제부터 이 사람들이 당신 자녀입니다.

이제부터 이분이 너희의 어머니시다. 

 

목마르다(육신의 고통 호소).

엘로이 엘로이 라마 사박다니(영혼의 고통 호소)!

다 이루었다.

아버지! 제 영혼을 당신께 맡깁니다.

 

9월의 크리스마스/ 海棠 하 경호

 

사랑하는 임 보내고

겨울 나그네 되어

봄을 맞았습니다.

 

한 여름밤의 꿈 지나

가을 크리스마스

당신은 어디론가 떠나십니다.

 

그해 겨울 나그네처럼

그 날 아침부터 저녁까지 홀로 카페 지켰지요

두 번 그녀의 어머니 전화 받으셨습니다.

겨울이라 차가웠을 뿐이지요.

 

삶과 죽음 강을 지나

영원으로 떠나는 임

환송하는 사람들 줄 잇습니다.

 

세 번의 탄생 마치고

처음으로 돌아가신 당신께

청원해도 될까요.

 

당신은 평화 찾아 매진하셨습니다.

그런데 악에게 속아

어머니와 형 살해해야 했던 아들 감옥으로 떠납니다.

 

두 번 어둠속으로 떠나는 것이지요.

염치없지만 기억해 주실 수 있는지요.

제가 달리 무슨 부탁 하겠습니까.

 

그저 작가님 바라보며

소외된 한 남자에게

구원의 손길 청함이지요.

 

굳이 이런 부탁 안 드려도

작가님 너그러이 해 주실 일이지만

그동안 바라보던 부탁이오니

들어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또 뵙겠습니다.

아멘.

 

2013. 9. 26(木). 海棠 하 경 호 St. Domingo

 

시작노트

 

2013년 9월 25일 선종하신 故 최인호 베드로님 2주기에 붙이는 편지입니다.

필자 河 도민고는 미리내라는 우선 표제로 모 활동 잇고 있는데 2013년 1월 1일부터 보이지 않는 은하 작은별 친구를 기리는 행위이기도 하지요. 미국 교포로서 병고로 인해 매우 고통스러워 잠못 이루던 그녀에게 우린 영원한 벗으로 언제 어디서나 응원 보낼테니 힘내라 할 때 무척 기뻐하며 감사의 예 전하던 시간 어제같습니다.

 

당시 겨울나그네 카페들 쉽게 찾을수 있던 80년대말 그녀 鄭 로사는 이른 아침부터 문 닫을때까지 카페에 오지 않았습니다. 다만 두 번 통화중 눈보다 더 차가운 어머니 응답 맞아야 했고 며칠 뒤 김수환 추기경님 첫 사목 부임지 화곡본동 성탄 미사에 로사 참례한다는 소식으로 달려갔으나 제대도 신부님도 볼 수 없었고 수많은 교형들이 뒷 모습으로 반겨줄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슬픈 성탄 종소리 맞으며 인파에 밀려 세상으로 통하는 문 앞 이르러 문득 고개를 돌리니 로사 모녀가 보였습니다.

 

두 번째 차갑게 눈길조차 주지 않던 모녀는 겨울밤 어둠속으로 떠나고 있었습니다. 이로부터도 1년동안 그녀의 불꺼진 창 그 앞 벤치 그리고 지금은 주님 등불로 여겨지는 가로등 하나 있었는데 로사와 도민고 두 대의 미사중 이해 부활절 명동성당을 향하기도 하였습니다. 더불어 처음 사람을 찾다가 나중 마지막 날짜 손꼽아 기다리던 해가 바뀐 1월 3일 자정을 앞둔 시간 신촌의 많은이들 귀가 서두를 때 등 뒤에 로사가 나타났습니다.

 

안개꽃 가슴 안은 그녀는 꽃말부터 물었고 연이어 "엄마는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 얻으라지만 저는 제가 사랑하는 남편을 찾고 싶습니다."라는 메시지를 남겼으며 마지막 불꺼진 창 앞에서 그녀는 도민고를 다시 불러세우며 안녕히 가시라는 인사를 더해주었습니다. 그후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었던 그자리 벤치와 가로등에게 인사하지 못하고 황급히 돌아선 모습 아직도 후회로 남습니다. 이 글은 그런 애환을 섞은 것이지요.

 

곧 1월 13일 열 세번째 맞선 임하는 아내와 처음이자 마지막 맞선 이루고 다음날 전격 결혼 합의로서 이듬해 성금요일 아들 태성 탄생과 이태후 1월 3일 딸 연희가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아들아! 큰 성인 되거라! 현세와 내세 기쁨 이어주는 연희도 기억하면서 도농 경계선상 자리한 수도원의 스승이신 성 도미니꼬님 발자취 놓칠 수 없기에 9월의 크리스마스를 맞아 최인호 베드로님의 영원한 안식을 되새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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