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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성소(聖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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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희송 [hsson] 쪽지 캡슐

2002-04-20 ㅣ No.32234

  내일, 4월 21일, 부활 제 4주일은 <착한 목자 주일>, <성소 주일>입니다. 서울 신학교를 비롯한 다른 신학교 그리고 수도원, 수녀원에서는 내일의 수많은 방문객을 맞이하려고 분주하게 준비 중일 것입니다. 서울 대신학교 학생들은 며칠 째 주변 청소를 하면서 이런 저런 준비를 하느라 바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성소주일은 ’청소주일’이라고까지 하겠습니까? 이런 분주한 손님 맞이 준비 때문에 막상 자신의 성소에 대해서는 찬찬히 되새겨 볼 시간이 없는 경우가 많지요. 그래서 어느 잡지에 기고했던 성소에 관한 글(디다케 4월호)을 조금 보충해서 게시판에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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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소(聖召), 즉 하느님의 부르심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사제 성소와 수도 성소만을 생각하기 쉽습니다. 물론 하느님의 일꾼으로, 도구로 불림을 받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기에 성소라고 표현하지만, 그 이전에 좀더 넓은 의미에서 성소를 얘기할 수 있다. 꼭 사제나 수도자가 되지 않아도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다고 얘기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사람으로 태어났다는 것 그리고 세례를 통해서 그리스도 신자가 됐다는 것, 그것 또한 성소입니다.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미 하느님으로부터 불림을 받은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 각자는 하느님의 사랑에 의해서 태어났기에 스스로를 사랑해야 하는 불림을 받았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구약성서 지혜서의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은 세상 모든 것을 사랑하시며 주님이 만드신 그 어느 것도 싫어하시지 않는다. 주님이 미워하시는 것을 만드셨을 리가 없다. 만일 주님이 원하시지 않으셨다면 무엇이 스스로 부지할 수 있겠으며 그분이 불러 주시지 않은 것이 어떻게 스스로 연명할 수 있겠는가? 생명을 사랑하시는 주님은, 모든 것이 그분 것이기에 모든 것을 용서하신다"(지혜 11,24-26).

 

 우리 각자는 하느님의 사랑 속에 태어나 그분의 사랑과 자비 속에 살아갑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우선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흔히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누구나 자연적으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상 그렇지가 않습니다. 물론 사람은 모두들 이기주의적 성향이 있어서 자기 자신을 위하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묘하게도 자기 자신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고 싫어할 때도 많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설정한 기대치에 실제 자신의 모습이 훨씬 못 미치기 때문이지요. ’왜 나는 공부를 잘 못할까? 나는 멋지게 생기지 못했나? 왜 나는 날씬하지 않고 이리 뚱뚱한가? 내 성격은 왜 이렇게 모가 났을까? 난 왜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할까? 왜 나는 남들처럼 이런 저런 재주가 없는가?’ 하면서 스스로를 괴롭히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인간 각자를 사랑하시고, 그렇기 때문에 각자에게 다른 사람이 갖지 못한 좋은 점, 독특한 점, 하나 정도는 다 주셨습니다. 따라서 우리 각자는 부질없이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데에 시간과 신경을 쏟지 말고 먼저 나에게 주어진 좋은 점이 무엇인지, 나의 특성과 재능은 어떤 것인지를 찾아서 가꾸어야 합니다. 아마 우리가 죽은 다음 심판을 받게 될 때, 하느님께서 ’너는 왜 아무개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지 못했느냐, 누구처럼 유능한 사람이 되지 못했느냐’고 묻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 대신에 ’바오로야, 너는 과연 네가 되었느냐? 내가 네게 준 것을 제대로 살렸느냐, 마리아야, 너는 고유한 네 자신이 되어 살았느냐’고 물으실 것입니다.

 

  비유로 얘기해보지요. 장미꽃은 그 아름다움으로 모든 이에게 기쁨을 줍니다. 장미꽃에 비해서 호박꽃은 꽃도 아니라고 할 만큼 못난 꽃입니다. 하지만 호박꽃은 호박이라는 열매를 맺어서 인간에게 풍요함을 안겨주지만, 장미는 그렇지 못합니다. 이렇게 꽃만 아니라 사람에게도 그 사람에게만 있는 고유함과 특성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 고유한 꽃들이 어우러져서 아름다운 화단을 이루듯이 인간 각자의 고유함과 특성이 어우러져서 아름다움 세상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각자 자신만이 지니는 고유함을 찾고 가꿀 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의 고유함을 발견해서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괜히 이 사람 저 사람 기웃거리면서 샘내거나 공연히 질투하지 않고 넉넉함과 여유를 갖게됩니다. 반면 자신의 고유함을 찾지 못한 사람일수록 남에 대해 질투와 시기도 많이 하고, 자기 자신을 학대하고 괴롭힙니다.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하느님께서 나에게만 심어주신 ’꽃씨’가 무엇인지를 찾아서 아름답게 키워야 할 것입니다. 언젠가 소방관 여러 명이 한꺼번에 사고로 죽은 일이 있었지요. 그 중 한사람이 죽기 전에 쓴 편지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었습니다. "누군가를 위해서 기꺼이 목숨을 내어놓을 수 있는 것, 얼마나 아름답고 숭고한 것인가? 그래서 나는 이 직업을 성직(聖職)으로 여긴다네". 이 소방관은 하느님이 자신에게 주신 ’꽃씨’를 찾아서 아름답게 꽃피운 사람이라고 하겠습니다. 나의 고유함을 찾아서 잘 살린다면 그래서 내가 보람을 느끼고, 남에게 유익이 된다면, 그것이 바로 거룩한 삶이 아닐까요? 반대로 나의 고유함을 제대로 찾지 못하고 남의 것만 바라보고 부러워하고 질투하는 삶을 산다면, 하느님의 마음을 상해드리는 것이 아닐까요? 마치 자신이 가야할 삶의 길을 찾지 못해 우왕좌왕하는 자식을 보는 부모의 마음이 아프듯이 말입니다.

 

  자식을 여럿 둔 어떤 어머니가 쓴 글 중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공부 못하는 아이는 건강한 것만으로도 고맙고, 공부 잘하는 아이는 신통해서 고맙고, 말썽꾸러기 아이는 그 힘찬 고집이 고맙다." 자애로운 아버지 하느님 역시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우리 각자의 독특함을 사랑하실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 속에 태어난 우리 각자는 자신의 고유함을 찾아, 그것을 가꾸고 다듬고 키워서 세상을 풍요롭게 만드는 사람으로 불림을 받았습니다.

 

  자기 자신에게는 전혀 좋은 것이 없는 듯이 여겨져서 자포자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자신 안에서 온통 모난 구석만 눈에 띄고 좋고 아름다운 것은 도무지 찾아 볼 수 없는 것 같아서 실망하거나 심술을 부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사람에게도 분명 좋은 것이 숨어있습니다.

 

  로마의 성 베드로 성당 안에는 유명한 예술품이 많은데 그 중에서 미켈렌젤로의 작품 삐에따가 있습니다. 성모님께서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님의 시신을 품에 안고 비통해하시는 모습을 조각한 것인데 걸작 중의 걸작으로 손꼽힙니다. 그런데 이 작품에는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사연 하나 얽혀있습니다.

어느 날 미켈란젤로가 대리석 가제 앞을 지나고 있는데, 그곳에는 아주 볼품 없게 생긴 커다란 대리석 하나가 세워져있었습니다. 가게 주인에게 그 대리석의 가격을 물으니 주인은 의외의 대답을 했습니다. "그냥 가져가세요. 지난 10년 간 이것을 팔려고 해보았지만, 아무도 사려고 하지 않더군요. 쓸모도 없이 큰돌이 괜히 공간만 많이 차지해서 귀찮았는데, 잘 됐네요. 필요하면 그냥 가져가세요". 미켈란젤로는 고맙다는 말을 하고 그 대리석을 집으로 가져왔습니다. 1년이 지난 어느 날 그는 대리석 가게 주인을 집으로 초대해서 자신이 공짜로 얻은 대리석으로 만든 작품을 보여주었습니다. 그 작품은 바로 그 유명한 삐에타 상이었습니다. 가게 주인은 깜짝 놀라면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아니, 어떻게 그렇게 볼품 없는 대리석으로 이렇게 훌륭한 작품을 만들 수가 있었습니까?" 미켈란젤로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내가 대리석을 보았을 때 단지 불필요한 부분만을 쪼아낸다면 아주 멋진 작품일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단지 그렇게 했을 뿐입니다."

 

  자신이 아무 쓸모도 없다고 생각되더라고 그 안에는 정말로 값진 무엇이 숨겨져 있을 수도 있습니다. 어렵더라고 자신에 대해서 실망하지 말고 하느님이 내 안에 마련하신 고유하고 귀중한 선물을 찾아내어 가꿈으로써, 자기 스스로 삶의 보람을 느끼고, 남에게도 기쁨과 유익함을 주도록 하는 것이 인간 각자의 소명일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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