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4일 (금)
(녹) 연중 제10주간 금요일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자는 누구나 이미 간음한 것이다.

자유게시판

사제 성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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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희송 [hsson] 쪽지 캡슐

2002-04-20 ㅣ No.32236

  이 글은 제가 삼 년 전에 어느 신부님의 첫 미사 강론으로 사용했던 것인데, 그 미사에 참석했던 다른 신부님이 굿 뉴스 자유게시판에 한번 올렸던 것입니다. 재탕이라고 나무라지 마시기를. 한약은 재탕도 마시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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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동차 운전을 하는 사람이면 다 느끼는 바인데, 평소에 자주 다니는 길에 있는 도로 표지판에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그러나 낯선 길을 운전해 갈 때에는 도로 표지판이 아주 유용하고 요긴합니다. 우리의 삶에도 이런 방향 표지판이 필요합니다. 사람은 자신의 인생을 백지 상태에서 시작할 수는 없습니다. 어렸을 적에는 부모님의 모습에서, 커 가면서는 선생님이나 존경하는 분의 모습을 통해서, 자신이 가야할 길을 서서히 찾게 됩니다. 인생에서만이 아니라 신앙 생활에서도 이런 표지판이 필요합니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가 신앙인에게는 유일하고 영원한 표지판이지만, 그분을 각 시대와 상황에 맞게 드러내주는 작은 표지판들도 필요합니다. 교회 공동체를 이끌어 가는 사제가 바로 이런 작은 표지판의 역할을 해야 할 것입니다.  

 

  첫째, 도로 표지판은 운전자가 잘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위와 잘 구별되는 장소에 세워지고 뚜렷한 색깔로 표시됩니다. 이와 유사하게 성직자는 일반 사람과는 다른 방식의 삶을 살아갑니다. 복음 삼덕의 삶, 즉 순종, 청빈, 독신의 삶이 바로 그것입니다.

  현대인들은 점점 더 자기 자신의 힘과 능력에만 의존하려고 합니다. 이에 대해서 사제는 순명의 삶을 통해서 사람은 무엇보다도 하느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래야 한다는 것(마태 6,10)을 증거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철저히 사랑과 봉사의 삶을 사셨는데, 그런 삶의 원동력은 바로 아버지 하느님께 대한 온전한 순종에 있었습니다. 사제도 하느님께 온전히 순종할 때 참된 사랑과 봉사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현대는 갈수록 경제가 우선적인 관심사가 되고, 돈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부모와 가족, 인륜과 도덕까지도 저버리는 배금주의가 만연해 갑니다. 이에 대해서 사제는 돈이 궁극적인 목표가 아니라 예수님 말씀대로 일차적으로 하느님 나라와 의를 구해야 한다는 것(마태 6,33)을 증거하기 위해서 청빈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많이 갖고도 행복하지 못한 현대인들에게 청빈의 삶을 통해서 적게 소유하고서도 만족하고 기쁘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것입니다.

  현대 사회는 성(性)이 (잡지, 비디오, 영화 등을 통해서) 드러나게 혹은 (광고를 통해서) 암암리에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모든 것을 성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증가합니다. 인간의 성은 분명 하느님의 선물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절대화되어 우상처럼 숭배되면, 오히려 인간에게 해를 끼칩니다. 현대 세계의 큰 위험인 성의 우상화를 반대해서 성이 인간 삶의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선포하는 것이 바로 독신생활입니다. 독신생활은 남자와 여자가 서로를 성적인 시각이 아니라 우선 형제 자매로 대하는 하느님 나라(마르 3,35)를 증거 합니다.

이렇게 사제는 복음 삼덕의 삶을 통해서 자신의 능력과 돈 그리고 성을 우상으로 만들어서 거기에 자신을 묶어두는 현대인들에게 진정한 자유와 행복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보여주는 표지판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둘째, 도로 표지판의 본질적인 역할은 방향 제시입니다. 사제 역시 신자들에게 신앙인이 가야할 방향을 명확하게 제시해야 합니다. 이는 우선적으로 말씀 선포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이 사명을 잘 수행하기 위해서는 부지런히 성서를 묵상하고 연구하는 동시에 사회의 흐름과 변화를 예의 주시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복음의 빛에 비추어서 세상사를 해석하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말씀 선포를 통해서 신앙의 방향을 제시하는 사제는 특히 강론을 성실하게 준비해야 합니다. 기도와 묵상, 공부를 통해서 잘 준비되어 정신을 일깨워주고 마음을 적셔주는 강론은 신자들에게 일 주일을 살아갈 풍요로운 영적 음식이 됩니다. 좋은 어머니는 항상 자기 가족에게 영양가 있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주려고 노력합니다. 이런 어머니는 식탁에서 가족들이 누리는 기쁨을 보면서 그동안의 수고를 잊고 자신도 기쁨에 충만하게 됩니다. 이런 좋은 어머니처럼 사제도 신자들에게 좋은 영적 양식을 마련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그 양식을 먹고 힘을 얻는 신자들의 모습은 수고를 잊게 하고 사제직을 보람과 기쁨으로 체험하게 해줄 것입니다.

 

  셋째, 도로 표지판에는 어둔 밤에도 운전자가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밝고 빛나는 색깔을 칠해 놓습니다. 마찬가지로 사제도 밝고 빛나는 색깔의 삶, 기쁨의 삶을 살 수 있어야 합니다. 하느님께 자신과 자신의 미래, 그야말로 모든 것을 맡긴다면 자신에 대한 집착, 돈에 대한 욕심, 사람에 대한 애착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진정 자유롭고 기쁘게 살면서 이웃에게 환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경건하고 열심히 산다고 해서, 불의한 세상에 대해서 정의를 부르짖고 실천한다고 해서 항상 침울하고 어두운 얼굴로 살아가서는 안 될 것입니다.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복음, 기쁜 소식을 전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 기쁜 소식을 전하는 사제는 말로써만이 아니라 삶으로 그 기쁨과 평화를 증거해야 할 것입니다. 사제는 인간의 죄와 잘못으로 점점 더 어둠이 짙게 드리워 가는 세상 한 가운데서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복음의 빛을 비추는 사람, 그래서 그 빛을 보고서 사람들이 하느님을 찾을 수 있도록 인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넷째, 도로 표지판은 굳건히 땅에 박혀있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신앙의 표지판이 될 사제는 기도를 통해서 교회의 기초인 예수 그리스도 안에 영성적으로 깊이 뿌리를 두어야 합니다. 예수님 스스로도 식사도 할 틈도 없이 바쁘면서도 틈틈이 기도하시고 또 제자들에게 기도하라고 권고하셨습니다. 만일 예수 그리스도라는 땅에 깊이 뿌리박지 못한다면, 세찬 비바람을 이기지 못해서 표지판이 넘어지는 것처럼 세파에 시달려 쓰러지고 말 것입니다. 예수님께 직접 교육을 받은 베드로 사도도 세 번이나 예수님을 배반하는 잘못을 범할 정도로 세상의 저항은 거세다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사제는 늘 기도하시던 예수님의 모습을 가슴속에 깊이 새겨두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다섯째 도로 표지판은 단지 목적지를 가리키는 표지판일 뿐 목적지가 아닙니다. 비유로 한다면 표지판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일 뿐 달 자체는 아니라는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사제 자신도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도구일 뿐 그리스도 자신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매이게 해서는 안 됩니다. 사제는 자신을 통해서 전해지는 하느님 말씀과 자신이 집전하는 성사에서 힘과 위로를 얻는 신자들을 보는 것으로 만족하면 그만입니다. 그들이 얻은 은총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이지 사제 자신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사제는 주인이 아니라 일꾼일 뿐입니다. 그러기에 신자들이 반드시 자신을 잘 대우해주고 받들어주기를 바라고, 그렇지 않을 때에는 짜증이나 화를 낸다면 그것은 자기 분수를 모르는 ’문제사제’겠지요. 이런 사제는 복잡하게 그려져서 방향 제시는커녕 혼란만 가중시키는 잘못된 표지판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물론 사람은 다른 사람이 나를 인정해주고 알아주는 데에서 삶의 보람과 기쁨을 느낍니다. 사제도 사람이기에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정도에 지나치게 남의 칭찬과 인정을 받는 데에 모든 것을 걸어서 명예심의 노예가 되는 것은 금물입니다. 우리가 남에게 칭찬 받을만한 일을 하였다면, 이는 하느님의 은총이 먼저 있었기에 그렇게 된 것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일을 다하고서 "저는 그저 보잘것없는 종입니다.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따름입니다"(루가 17,10)고 고백하는 충실한 종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제의 모범이신 예수께서는 항상 자신보다는 아버지 하느님을 내세우시고, 마지막까지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간구 하셨습니다(마르 14,36). 이런 예수님을 자주 바라보고 그분께 도움을 청함으로써만 인간의 마음에 깊숙이 도사리고 있는 명예심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기존의 가치관이 송두리채 무너져 내리고 혼란이 가중되어서 방황하는 현대인들에게 진정한 삶의 길을 제시하는 표지판은 정말 필요하고 요긴합니다. 하지만 불신과 유혹이 늘어가는 험한 세상에서 이런 표지판이 되는 것은 물론, 표지판으로 머무르는 것은 힘겹고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힘겹고 어려운 만큼 보람도 크고 많습니다. 보통이 아닌 역할은 보통을 넘는 수고를 요구하지만, 또한 보통을 넘는 특별한 기쁨과 보람을 줍니다. 사제들이 확신 속에서 기쁨과 바람을 갖고 신앙의 표지판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도록 도움과 기도를 아끼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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