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0일 (목)
(녹) 연중 제11주간 목요일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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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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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corenelia] 쪽지 캡슐

2024-06-02 ㅣ No.172942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나해] 마르 14,12-16.22-26 “이는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내 계약의 피다.“


 

여러분은 음식과 양식의 차이를 아십니까? 어차피 다 먹는건데 별 차이 있겠나 싶지만, 국어사전을 보면 두 단어의 의미 사이에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차이가 있습니다. 음식은 “사람이 먹거나 마시는 모든 물건”이라는 뜻입니다. 그것이 사람에게 유익한지 혹은 해가 되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지요. 그저 먹고 마실 수만 있으면 괜찮다고 생각하는, 내가 먹고 마시는 것들을 ‘물건’으로 여기는 철저히 물질적인 관점입니다. 그에 비해 양식은 “생존을 위해 필요한 사람의 먹을거리”라는 뜻입니다. 그냥 먹고 마시는게 아니라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해서, 그게 있어야만 내가 살 수 있어서 먹고 마시는 겁니다. 양식의 범주에는 그저 물질적인 것들만 포함되지는 않습니다. 그 양식을 마련하기 위해 애쓴 이들의 노력과 정성, 그것을 먹을 이들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까지 다 들어가야 비로소 그것을 먹는 이들을 살게하는 ‘양식’이 되는 겁니다. 그렇기에 자식들이 잘 먹고 건강하게 자라기를 바라는 사랑의 마음을 담아 어머니께서 ‘양식’을 만들어주시면, 자녀들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꼭꼭 씹어먹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 안에 담긴 어머니의 사랑이 나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살리시고 구원하시기 위해 사랑으로 내어주신 양식인 ‘성체’와 ‘성혈’의 신비에 대해 묵상하는 축일입니다. 그 신비의 출발점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맺으신 ‘계약’입니다. 오늘 제1독서인 탈출기를 보면 모세는 희생제사에 쓰일 짐승의 피 절반을 제단에 뿌리고 나서, 하느님의 뜻과 말씀이 담긴 “계약의 책”을 백성들에게 읽어줍니다. 그러자 백성들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실행하고 따르겠다’고 응답하지요. 모세가 시켜서 억지로 그런게 아닙니다. 놀라운 권능과 큰 사랑으로 자신들을 이집트인들의 손아귀에서 구해주신 하느님을 자기들의 ‘주님’으로 받아들이며, 그분의 뜻을 충실히 따르겠노라고 자기 의지로 약속한 겁니다. 그러자 모세가 나머지 절반의 피를 백성에게 뿌리면서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계약”이 맺어졌음을 선포합니다. 그 계약이란 서로 상대방에 대한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여 특별한 관계를 이루는 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잘 듣고 실천함으로써 그분으로부터 큰 사랑과 보살핌을 받는 소중한 존재가 됩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생명의 땅으로 이끄시고 번영을 누리게 하시겠다는 당신 약속을 지키심으로써 그들의 주님이 되어 주십니다. 이 때 계약을 맺는 매개체로 쓰이는 짐승의 피는 ‘희생’을 상징합니다.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 이스라엘을 보살피시고 지키시기 위해 희생과 수고를 감수하시는만큼, 이스라엘 백성들도 오직 하느님만 사랑과 순명으로 섬겨야 할 자기들의 의무를 다 하지 않는다면 그에 응당한 희생을 기꺼이 감수하겠다고 약속하는 것이지요. 하느님께서 자신들에게 커다란 은총과 사랑을 내어주시는 만큼, 이스라엘 백성들도 사랑과 순명으로 하느님께 자신을 내어드리는 겁니다.

이와 같이 사랑하는 이에게 자기 자신을 내어주는 희생이 오늘날 성체성사 안에서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을 믿고 따르는 이들에게 ‘양식’이 되시기 위해 당신의 몸과 피를 기꺼이 내어주시는 겁니다. 그분이 아무런 조건도 달지 않고, 당신의 전부를 내어주시기에 우리는 그분의 몸을 받아 먹으며 영육간의 충만함을 누리고, 그분의 피를 받아 마심으로써 그 사랑에 힘입어 죄를 용서받고 구원받을 기회를 얻게 되지요. 그렇게 아낌없이 당신 자신을 내어주시면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단 한 가지입니다.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단순히 최후의 만찬을 기념하는 그 예식을 반복해서 행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향한 큰 사랑으로 당신 자신을 내어주신 것처럼, 우리도 이웃 형제 자매를 향한 큰 사랑으로 나 자신을, 내가 가진 재물과 시간과 능력을 기꺼이 내어주라는 뜻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 모두가 주님 사랑 안에서 충만한 기쁨을 누리게 되는 겁니다. <가을이 오면>이라는 시의 내용처럼 말이지요. “나는 꽃이예요. 잎은 나비에게 주고 꿀은 솔방벌에게 주고 향기는 바람에게 보냈어요. 그래도 난 잃은 건 하나도 없어요. 더 많은 열매로 태어날 거예요. 가을이 오면”

그렇다면 주님은 왜 우리에게 당신의 피를 마시라며 내어주시는 걸까요? 그 피흘림으로 우리와 사랑의 계약을 맺으시기 위함입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짐승들의 피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과 특별한 관계를 맺으신 것을 옛 계약, 즉 ‘구약’이라고 부른다면, 주님께서 당신의 피를 통해 당신을 따르는 제자들과 특별한 관계를 맺으신 것을 새 계약, 즉 ‘신약’이라고 부르지요. 옛 계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실행하고 따름으로써 이 세상에서 그분의 은총과 사랑을 누리는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면, 새 계약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계명을 받아들이고 실천함으로써 죄를 용서받고 영원한 행복을 누리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겁니다. 주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당신께 맡기신 우리중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인원이 그 행복을 누리게 하시려고 기꺼이 당신 전부를 내어 주셨습니다. 주님으로부터 받은 그 큰 사랑을 생각한다면 우리도 가만히 있어서는 안되겠지요. 그 사랑을 허투루 만들지 않기 위해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바를 실천해야 합니다.

그럼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실천하면 될까요? “신앙의 신비여”에 대한 응답으로 우리가 직접 내뱉는 그 말이 우리가 가야 할 길이 됩니다.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적마다 주님의 죽음을 전하나이다.”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주님의 죽음을 전하며 부활을 선포하나이다.” 미사 중에 성체를 받아 모시지 않으면 큰 일이 나는 줄로 아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참으로 중요한 것은 주님의 몸을 먹는 행위 자체가 아니라, 주님께서 당신 몸을 우리에게 내어주신 이유와 뜻을 헤아리며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내 안에 받아모셨다’는 사실이 의미하는 바를 삶 속에서 드러내는 일입니다. 즉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치신 말씀과 계명을 충실히 실천함으로써 성체 안에 담긴 큰 은총을 고스란히 내 안에 흡수할 수 있는 겁니다.

성체성사 안에서는 두 가지 중요한 변화가 일어납니다. 첫번째 변화는 빵이 주님의 몸으로, 포도주가 그분의 피로 바뀌는 ‘성변화’입니다. 그 변화를 통해 주님께서 성체성사 안에서 온전히 우리와 함께 하시게 되고 우리 안에 들어오시게 됩니다. 두번째 변화는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전하고 따르는 그분의 참된 사도로 변화되는 ‘회개’입니다. 주님을 내 안에 받아모셨다면 세상과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져야 합니다. 즉 주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아야 하는 것이지요. 또한 이웃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져야 합니다. 그들을 경쟁자로 여겨 배척하거나 내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삼으려 들지 말고, 하느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은총과 축복을 함께 누리는 ‘가족’으로, 그분께서 나만큼이나 아끼시는 형제 자매로 여기며 사랑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여 우리를 위해 당신 자신을 희생하신 주님의 사랑이 우리 삶 안에서 서서히 실현되게 만드는 것이 우리가 살아내야 할 ‘성체성사의 신비’입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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