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7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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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욱현 신부님_소년 예수와 성모 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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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2024-06-08 ㅣ No.173120

 

 

오늘의 복음은 예수님의 어린 시절을 전하는 유일한 자료이다그러나 이 이야기는 단순한 유년기의 예수님의 이야기만은 아니다이것은 파스카 신비를 완성할 예루살렘을 향한 예수님의 일생을 그려내는 루카에게 마리아가 이미 파스카 신비에 참여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이 이야기는 지혜와 파스카의 특징을 드러내는 그리스도론이다예수님이 지혜 자체이며파스카의 주인공이라는 것을 드러낸다.

 

이 사건의 배경은 구약의 파스카 축일이다구약의 파스카는 당시 예루살렘에서 지내기로 되어 있었다또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의무적이었는데아마 12살이 그 규정 나이였던 것 같다.

 

성전에서 학자들과 이야기를 주고받는 광경은 구약의 파스카 예식에서 가장 나이 어린 사람이 파스카 예절에 관한 것을 질문하고 가장 연장자가 파스카의 역사와 의미에 대하여 설명하는 것과 비슷하다여기서는 학자들이 질문하고 예수께서 답하시는 것이예수께서 신약의 파스카의 주인공임을 드러낸다예수님은 율법학자들을 경탄하게 하는 지혜의 스승지혜자체로 보인다.

 

또 파스카적 용어를 통하여 마리아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신비의 고통과 기쁨을 미리 체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이 이야기는 부활사건과 공통점이 있다. “예루살렘에서 일어났다”(2,41; 22,8.13), “사흘이라는 시간”(2,46; 24,46), 그리고 아버지의 뜻을 이룰 필요성”(2,49; 24,7)과 이해하지 못하였다”(2,50; 24,25)는 것이다.

 

여기에서 사흘이라는 시간 개념은 성서에 자주 나타나는 주제이다아브라함은 이삭을 제물로 바치기 위해 모리야 산으로 사흘 길을 걸었다요나는 하느님의 말씀을 이방인들에게 선포하기 위해 고래 뱃속에 사흘간 머물렀다예수님의 부활은 죽음으로부터 사흘간의 시간을 필요로 하고 있다이 개념은 고통의 최대치를 드러낸다사흘이란 의인들의 최대의 고통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따라서 마리아와 요셉이 사흘간 소년 예수를 찾아 헤맸다는 것은 의인으로서 최대의 고통을 겪으셨다는 것이다그것은 아이를 잃어버린 다른 어머니처럼 극한의 고통을 겪으셨다는 것을 뜻하며훗날 십자가의 죽음을 맞이하는 예수의 고통을 미리 겪으셨다는 것을 아울러 미리 보여주고 있다.

 

마리아가 예수님을 성전에서 발견하고 꾸짖는 가운데 요셉을 아버지로 언급하는데 대해서 예수님은 하느님을 아버지로 언급하고 있다.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49이 말은 예수께서 이미 어린 시절부터 하느님의 아들임을 의식하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이 말씀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하였지만그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51)는 진술은 신앙의 길을 걷는 마리아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여기서 알아듣지 못함은 지혜의 결핍이 아니라하느님께 열려있음내맡겨져 있음을 드러낸다이러한 신앙의 자세는 목동들이 다녀간 이야기에도 나타난다(2,19). 거기에는 이 신비를 간직한 것만이 아니라깊은 묵상의 자세를 보여주는 표현으로 간직하였다는 말이 덧붙여지고 있다또 이 이야기에서는 찾다-발견하다는 신앙의 도식을 볼 수 있다불신앙은 찾아도 얻지 못하지만신앙인은 찾으면 얻게 된다는 것이다주님을 열심히 찾는 마리아의 신앙을 묵상하게 한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또한 마리아의 신앙을 다른 각도에서 발견할 수 있다마리아와 요셉도 예수님을 잃어버린 적이 있다그러니 우리의 신앙생활도 너무나 자주 하느님을 잃어버리고 나 홀로 방황하는 경우가 많다그리고는 그것을 나 홀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으면서 나가는 경우가 많다여기서 우리는 마리아의 모습을 보아야 한다마리아는 사흘간의 고통 후에 성전에서 예수님을 다시 찾는다.

 

이것은 우리도 잘못하여 하느님께로부터 멀어졌을 때에즉시 다른 곳에서 주님을 찾지 말고 하느님의 뜻으로하느님께로 되돌아가야 함을 말해주는 것이다하느님의 뜻으로 다시 돌아갈 때에 비로소 주님을 다시 만날 수 있고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이것이 마리아를 따르는 자세이다.

 

마리아의 신앙을 본받고 따르도록 노력할 때에 우리는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성심을 따라 하느님 아버지와 예수님께 대한 더 완전한 사랑을 드릴 수 있게 된다이러한 은총을 구하며 열심히 살아가도록 하자.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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