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4일 (금)
(녹) 연중 제7주간 금요일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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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 너머의 의미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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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식 [goodactor] 쪽지 캡슐

2024-05-12 ㅣ No.231431

합리화

살면서 참 많은 말들을 접하고 산다
그 중에는 귀에 탁 박히는 말도 있고 속으로 곱씹게 되는 말들도 있다
다들 아마도 그럴 것이다
말 몇 마디에도 감정이 상할 수 있고 기분이 좋아질 수도 있으니 세치 혀는 그리 능수능란한 마법?을 곧잘 부릴 수도 있는 것이다
'혀에 맞으면 뼈가 부러진다'
-성경
'말 한 마디로 천냥 빚도 갚는다'
-속담
합리화라는 것은 내 행위가 마땅하다는 것, 무엇에도 정당하다는 것을 내세우는 심리의 반영에서 출발한다
내 행위가 그렇게 마땅하지 않으면 양심이 얼마나 불편할까도 싶다
아니면 가시방석에 앉은 듯 불편을 넘어 불안하기까지 하지 않을까
그래서 인간심리는 자아를 안정시키기 위해 자기지지의 일환으로 합리화라는 의식적 상태를 강화하는지도 모르겠다
정치인이라면 왜 다들 입에 달고 사는 말이 있지 않은가
내로남불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합리화는 그렇듯 나를 긍정하고 방어하는 차원이 아니라 나에 대한 선입관의 철옹성을 만드는 데에도 일조를 하는 사고방식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합리화가 도저히 될 수 없는 행태들이 있는데 대체로 당연한 결과들이 뒤따르고 이미 그 대응이 예비되어 있는 행위들이다
보통은 범죄, 폭력, 해를 끼치는 짓 등 이웃이나 상대를 향해 정의롭지 못하고 악이라고 할 수도 있는 행동들이다
그리고 구구절절 변명 밖에 안되는 행위들(약속을 어기거나 시간을 지키지 않는 일, 계약을 위반하거나 질서를 해치는 것과 반칙 등 아주 많고도 많다)도 그렇게 합리화가 되기 어렵다
한 처음에 아담과 하와도 하와가 먹으라고 그래서(죽으라면 죽을 거냐), 뱀이 따 먹어 보라고 해서(이하 동문이다) 그렇듯 탓이라는 변명을 늘어놓지만 그것은 합리화될 수 없는 엄연히 잘못된 선택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선택이 가져온 모든 결과는 우리 모든 인간들에게 언제나 남아 있다
대체로 존재와 삶에 가해진 그 두 축은 죽음, 그리고 가시덤불과 엉겅퀴로 대변되는 세상의 악화이다
아름다운 장미꽃 가지에 가지런히 나 있는 가시에 찔려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아프다, 따갑다, 피도 난다, 긁히면 더 아프다
찔리는 것보다
그게 덤불째 있다는 것이다
그 상징성이 정말 대단하지 않을 수 없다
가시관을 쓴 예수의 이마에 흐르는 피, 왕관이 아닌 가시관은 영광이 아닌 고통인 것이다
사람 머리에, 얼굴에 꾹 눌러 쒸우는 그 가시관은
말이다
대체로 사람에게 그렇듯 콱 박힌 가시관 같은 것은 사람이라면 넘어설 수 없는 고통과 같은 것이고 받아들이며 살 수 밖에 없는 일이기도 하다
누구나 한 번쯤은 그 고통에 괴로와하고 번민하는 일이 있듯이
그리고 많은 경우에 사람들 서로가 서로에게 그 고통의 동인이 되기도 한다
얼마나 쓰라리고 독한지 그런 고통은 깊은 상처를 남기기도 하고 트라우마가 생기게도 한다
그리고 대체로 약도 없는 경우가 많다
왜들 그럴까
바로 합리화 때문이 아닐까 한다
법정에서 자주 다투고 충돌하는 시비거리는 보통 그 합리화로 맞서는 경우가 많다
어느 한 쪽이 이기고 어느 한 쪽이 질 수 밖에 없는 결과를 뻔히 알면서도 말이다
기를 쓰고 맞서는 것이다
자기 합리화를 가지고 말이다
세상의 악화는 모든 이에게 운명처럼 결과맺어진 사실에 가깝다
그래서 아무리 선의를 다해 세상의 양화를 위해 애쓰고 노력한다고 한들 그런 악화의 문제는 사라지지도, 사그라들지도 않는다
애초의 선택을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은 그로 인한 애초의 결과를 뒤집을 수도 없다는 사실과 같아 마치 일사부재리가 진리의 준엄함을 반영하는 룰과도 같이 보인다
한 번 봐주는 것은 진실을 넘어서는 행위를 하는 것이다
관용이 아닌 것이다
사안의 중대함이나 그 성격의 중요성은 그런 관용의 잣대를 결정짓는 무게나 규모, 성질에 입각해 판단하게도 하겠지만 한 처음에 하느님은 있는 그대로 모든 것을 행하셨다는 사실로 진리의 진실성이 무엇인지를 사람들이 알아 보도록 한 것이다
아니면 스스로가 선포한 진실을 가볍게 보고 가벼이 여기게 하듯이, 아니면 선악과가 그런 것인데 그게 아니게 할 수도 있는 사례가 무엇이고 그렇게 하는 성격이 또 무엇인지를 밝혀야 하는 것일 수도 있다
또한 하느님이라고 해서 그 모든 것을 자기 마음대로 다 하고, 할 수 있다는 하느님에 대한 인상을 가지게 만들 수도 있는 일이다
하느님이 사랑이기에 그렇다가 납득될 수 있는 일이어야 하고 하느님은 거룩하고 선하고 의로운 분이기에 그렇다 하는 것이 이해되어야 하는 일인 것이다
사람인 부모들은 자기자식만을 위해 많은 짓들을 하기도 한다
하느님이 아니라 정의나 공정과 같은 세상을 바람직하게 만드는 원리도 쉽사리 저버린다
아브라함과는 대조적이다
그리고 그걸 합리화하며 부모임을, 부모이기에 무엇보다 자식을 위한 일이 모든 것에 우선하는 것이라는 자기지지로 모든 사안을 화해 버린다
자녀들은 물론 그 자기지지의 적자들이며 이유인 것이다
아브라함은 단순한 신앙의 성조가 아닌 것이다
신앙인이라면 합리화로 인한 돌파구나 자기를 위함이 없어야 한다
하느님에 대한 순명은 그래서 인간성에 빛을 비추는 일인 것이다
순명은 모든 것이 하느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인간편에서의 더할 수 없는 값진 행위이다
성모 마리아의 모범도 순명이고, 예수가 보인 본보기도 순명인 것이다
순명에는 합리화가 아닌 신앙이 살아있는 것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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