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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클 죠의 바티칸 산책27: 다윗 왕의 부끄러운 과거

578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0-06-23

[엉클 죠의 바티칸 산책] (27) 다윗 왕의 부끄러운 과거


다윗의 애끓는 부정, 아들 때문에 두 번 통곡하다

 

 

- 고대 이스라엘의 황금기를 이룬 지도자 다윗 왕. 그러나 한편으로는 부하의 부인을 탐하고, 아들의 배반에 통곡한 나약한 인간이기도 하다. 다윗은 어릴 때부터 비파를 잘 타 예술가들은 ‘비파를 연주하는 다윗 왕’을 즐겨 묘사한다. 사진은 예루살렘 시온산에 있는 다윗 왕 청동상. 가톨릭평화신문 DB.

 

 

다른 종교의 경전도 이럴까요? 신자들이 우러러 받드는 중요 인물의 ‘부끄러운 과거’를 낱낱이 기록해 놓은 것 말입니다. 과문한 탓인지 모르겠지만, 성경은 그런 면에서 독보적입니다. 위대한 성인일수록 민망한 수준의 부끄러운 과거가 많습니다.

 

 

아들 압살롬의 쿠데타

 

이스라엘의 다윗 왕이 그런 위인 가운데 한 명입니다. “다윗은 올리브 고개를 오르며 울었다. 그는 머리를 가리고 맨발로 걸었다.”(2사무 15,30) 명색이 왕인데, 몰골이 말이 아닙니다. 믿었던 아들 압살롬이 쿠데타를 일으켜 예루살렘을 장악한 뒤 아버지 다윗 왕을 쫓고 있었습니다. 절체절명의 위기! 자칫 반란군에게 잡히면 죽을 위기에 몰렸습니다.

 

아들에게 쫓기는 아버지의 신세, 얼마나 처량하고 비참합니까. 세상 사람들이 볼까 두려워 얼굴을 가리고, 모자를 뒤집어쓴 채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넘었습니다. 얼마나 급했는지 신발도 신지 못하고 맨발로. 벼랑에 몰린 다윗이 주님에게 ‘SOS’를 쳤습니다. 시편 3장의 기도가 바로 그의 애원입니다. “주님, 저를 구하소서. 저의 하느님, 정녕 당신께서는 제 모든 원수들의 턱을 치시고 악인들의 이를 부숩니다. 주님께만 구원이 있습니다.”(시편 3,8-9)

 

다윗이 누구입니까. 이스라엘 민족을 구한 영웅, 국가다운 국가를 세우고 33년을 통치한 최고의 지도자,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성왕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른 정치 지도자를 평가할 때 그 기준을 항상 다윗으로 삼았습니다. 다윗을 100점 만점으로 설정해 놓고 다른 지도자들을 평가하는 방식이었지요. 중국의 요순(堯舜)시대 임금과 같은 위상이었습니다. 신약시대에도 다윗의 위상은 절대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갈릴래아에서 치유의 기적을 일으키자 사람들이 질겁을 하며 말합니다. “저분이 혹시 다윗의 자손이 아니신가?”(마태 12,23) 갈릴래아 백성들은 다윗을 메시아를 배출할 가문의 원조로 믿고 있었을 정도였습니다.

 

아뿔싸! 다윗이 큰 죄를 짓고 말았습니다. 인간으로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정치 지도자로서도 절대로 짓지 말았어야 할 대죄를 지은 것입니다. 측근 참모(우리야)의 부인(밧세바)을 겁간하는 권력형 성범죄에 이어 우리야를 전쟁터에서 죽게 하는 살인죄를 범했습니다. 주님이 진노하십니다. 다윗은 죗값을 톡톡히 치러야 했습니다. 예언자 나탄이 주님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이제 네 집안에서는 칼부림이 영원히 그치지 않을 것이다.”(2사무 12,10) 다윗은 주님께 용서를 빌었습니다. 시편 51장이 그의 절절한 기도입니다. “우슬초로 제 죄를 없애 주소서. 제가 깨끗해지리이다. 저를 씻어 주소서. 눈보다 더 희어지리이다.”(시편 51,9) 한번 엎질러진 물을 어떻게 주워담을 수 있겠습니까! 압살롬의 쿠데타는 그 칼부림의 시작이었던 셈입니다.

 

다윗은 우여곡절 끝에 반란군 진압을 목전에 두고 있었습니다. 전세가 역전된 것입니다. 반란군의 수괴 압살롬은 극형에 처할 운명이었지요. 다윗의 눈에 아들이 밟혔습니다. 진압군 총사령관(요압)을 불러 압살롬을 죽이지 말고 생포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러나 원칙주의자 요압은 압살롬을 현장에서 처단해버렸습니다. 다윗은 충격에 빠졌습니다. 비록 반역했지만, 많이 사랑했던 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통곡했습니다.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 압살롬아, 너 대신 차라리 내가 죽을 것을.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아!”(2사무 19,1) 아비를 죽이려 한 패륜아, 그런 아들의 죽음을 비통해 하는 다윗, 천하의 다윗이 아들 때문에 두 번 통곡했습니다. 아들의 공격을 피해 도망갈 때에는 저주의 눈물을, 아들이 죽었을 때에는 연민의 눈물을 흘린 것이지요. 그야말로 애끓는 부정(父情)입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거나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말을 되뇌게 합니다. 조선 시대 영조 왕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요. 정치적 갈등 관계에 있던 아들 사도세자를 뒤주에 넣어 굶겨 죽인 잔인한 아버지 영조 말입니다. 다윗은 불효자를 용서할 수 있는 용기를 갖고 있었지만, 영조는 그런 용기가 없었던 같습니다.

 

 

철저한 회개

 

중요한 것은 다윗의 믿음입니다. 다윗은 잘못을 철저히 회개한 후 모든 것을 주님의 처분에 맡겼습니다. 이것은 온갖 흠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삶을 일궈낼 수 있었던 다윗의 비결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0년 6월 21일, 이백만(요셉, 주교황청 한국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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