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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교회ㅣ기타
사유하는 커피1: 골방에서 커피를 다시 생각한다

567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0-05-11

[사유하는 커피] (1) 골방에서 커피를 다시 생각한다


성경 구절로 안내할 ‘신의 음료’ 커피

 

 

커피가 우리를 사유(思惟)로 이끌기를 소망한다.

 

커피의 향미가 머릿속에 띄워주는 영상들을 쫓다 보면 언제나 그 끝에는 내가 있다. 지금 덩그러니 빈 잔만 남긴 콜롬비아 라모렐리아 커피는 리븐델의 깊은 숲에서 시리도록 맑은 옹달샘을 내려다보는 나를 비춰준다. 따스한 꽃향기가 지그시 눈을 감게 만드는 것을 보니 엘프들이 나무 위에서 꽃가루를 뿌리고 있나 보다.

 

커피를 마시면 어떨 때는 시인이 되고 싶다. 한 줄은커녕 한 마디조차 터져 나오지 못한다 해도, 아름다운 무엇인가를 허공에 띄워야 한다는 간절함과 그 순간의 전율을 사랑한다. 초를 밝혀 두 손을 모을 때도 있다. 발아래부터 나를 가득 채워 주며 올라오는 행복감이 이대로 사라지지 말고, 누군가에게 축복이 되기를 기도한다. 커피의 무엇이 거친 세월에 길들어진 나의 심성을 이토록 보듬어 줄까? 그 답을 찾아가는 여정의 기록을 담은 것이 「커피인문학」이다.

 

아주 먼 옛날, 커피는 에티오피아에서 태어나 홍해를 건너 아라비아반도로 갔다. 기원후 7세기, 커피는 동굴 수행으로 죽음의 고비에 처한 마호메트를 살려내 무슬림들에게 ‘신의 음료’로 추앙받았다. 게다가 식욕을 떨어뜨리는 효력 덕분에 금욕주의 수피교도들의 친구가 되어 순례길을 따라 아랍 전역 깊숙이 스며들었다. 커피는 200여 년간 이어진 십자군 전쟁의 소용돌이에서도 유출을 삼가며 아라비아반도를 잠행했지만, 16세기 오스만투르크에 의해 예멘에서 꼬리를 밟혔다. 냉혈한으로 소문난 술탄 셀림 1세에 의해 이스탄불 심장부로 옮겨진 커피는 종교색을 벗고 대중의 음료로 변신했다.

 

사람들에게 이야기꽃을 피우게 하는 커피의 마력은 서민들에게는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대화를 통해 정보가 흘렀고 지식은 개인을 각성시켰으며, 운명적으로 시대적 계몽으로 이어졌다. 위정자들은 커피의 힘을 빌려 부조리를 포효하는 사람들을 붙잡아 가죽 부대에 담아 보스포로스 해협에 던졌다. 무슬림이 받들던 ‘신의 음료’가 자신들을 박해하는 빌미로 추락한 것이다. 커피는 인생처럼 기구(崎嶇)하다.

 

성 베드로 대성전이 건립된 1615년은 커피가 처음 유럽 땅을 밟은 해이다. 검은 빛깔 때문에 그리스도인 사이에서는 ‘악마의 음료’로 눈총받던 커피가 벌건 대낮에 교황청에 들어섰다. 앞서 클레멘스 8세 교황(재위 1592~1605)이 세례를 통해 거듭날 수 있도록 한 덕분이다. 교황께서 “이렇게 맛있는 음료가 사탄의 것일 리 없다. 설령 그렇다고 하면 사탄을 쫓아내고 그리스도인들도 마음껏 마실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커피의 역사에서 가장 극적인 이 장면을 기록으로는 아직 찾을 수 없다. 커피는 이후 영국의 청교도 혁명 한복판에 떨어지고, 프랑스에서는 대혁명의 기운을 모았으며, 미국에서는 독립 혁명의 도화선으로 작용했다. 커피가 펼쳐내는 지식의 향연은 끝이 없다.

 

그러나 커피는 “엉뚱한 길로 가고 있다”고 내게 속삭인다. 커피가 왜 인류 역사의 고비마다 등장했으며, 숱한 사연을 만들어 낸 것은 무슨 의미인지를 알고 있느냐는 꾸짖음이 이제와 크게 울려 나온다. 나는 그동안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회당과 한길 모퉁이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한 것은 아닌지.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골방으로 들어가고자 한다. 에덴동산의 선악과가 커피나무였다는 주장을 커피의 위대한 스토리텔링으로 볼 게 아니라 왜 그런 주장이 나와 수많은 커피 애호가들을 성경의 구절로 안내하는지, 그 의미는 무엇인지를 따라가겠다. 골방에서 나를 비추던 패러다임을 바꿔 볼 참이다.

 

* 박영순(바오로) - 커피비평가협회장, 단국대 커피학과 외래교수

 

세계일보 수습 5기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02년 국내 첫 무료신문인 ‘메트로’ 창간 멤버로 참여한 뒤에는 문화생활 분야의 전문기자를 지냈다. 2013년 ‘포커스’ 편집국장을 끝으로 21년간 언론인 생활을 마감한 뒤 커피 향미와 인문학을 접목해 국내에서 처음으로 ‘커피인문학’ 강의를 시작했다. 세계적인 커피 석학인 숀 스테이먼 박사와 커피 향미를 올바로 평가하고 묘사하는 커피 테이스터 교육 과정을 공동 창안했다.

 

커피인문학, 커피 테이스터, 플레이버(FLAVOUR) 마스터 분야를 개척한 공로로 2017년 세계 3대 인명사전 중 하나인 ‘마르퀴즈 후즈 후(MARQUIS WHO’S WHO)’에 등재되었다. 현재, 단국대 문화예술대학원 커피학과 외래교수이자, 커피비평가협회(CCA) 회장이다.

 

[가톨릭평화신문, 2020년 5월 10일, 박영순 바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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