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GOOD NEWS 자료실

검색
메뉴

검색

검색 닫기

검색

오늘의미사 (백) 2024년 4월 26일 (금)부활 제4주간 금요일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신학자료

sub_menu

세계교회ㅣ기타
스리랑카1: 랑카 성모 대성전

554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0-03-16

[서울대교구 순교자 현양위원회 공동기획 아시아 교회 복음화 길을 따라서] 스리랑카 (1) 랑카 성모 대성전


불교국가에 뿌려진 믿음의 씨앗, 성모신심으로 전쟁을 피하다

 

 

- 1952년 비오 12세 교황이 축복한 랑카 성모자상. 대성전에 모셔져 있다.

 

 

교황청 새복음화촉진평의회는 2018년 국제 성지담당자 회의에서 순례지를 ‘새로운 복음화를 향한 문’으로 정의했다. 서울대교구 순교자현양위원회(위원장 정순택 주교)는 이에 아시아의 새로운 복음화를 위해 2019년부터 한국과 아시아 교회를 잇는 3개년 ‘순례 네트워크’ 구축 사업을 시작했다.

 

가톨릭평화신문은 지난해에 이어 서울 순교자현양위와 ‘아시아 교회 복음화의 길을 따라서’를 공동 기획, 아시아 교회 순례 사목을 소개한다. 올해 첫 순례지는 내전과 테러의 아픔을 딛고 일어나는 스리랑카 교회다. 콜롬보대교구와 만나르ㆍ갈교구 세 지역 교회를 방문했다. 총 4회에 걸쳐 연재한다.

 

 

아누라다푸라 십자가

 

스리랑카는 2300년 역사를 자랑하는 불교 국가이다. 국보 제1호도 석가모니 치아 사리를 모신 ‘불치사’일 정도다. 2000만 인구 중 70%가 불교를, 다음으로 힌두교(11%), 이슬람교(8%)를 믿고 있다. 가톨릭 신자는 150만여 명으로 인구의 약 7%를 차지한다. 콜롬보대교구를 비롯한 12개 교구와 440여 개 본당이 있다. 성당은 주로 북·서부 해안 일대에 분포돼 있다. 16세기 초부터 포르투갈이 점령해 선교했던 지역이다.

 

이 가운데 복음화율이 가장 높은 도시는 콜롬보 북쪽에 있는 네곰보(Negombo)다. 시민 14만 명 가운데 65%가 가톨릭 신자라 ‘작은 로마’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곳부터 최북단 도시 자프나까지 신자가 많은 지역을 묶어 ‘가톨릭 벨트’라고 부른다. 이들 지역 길가에는 작은 유리에 담긴 성상이 불상 못지않게 많다. 자선함이 있는 성상도 많은데, 신자들이 오가며 동전을 넣는다. 봉헌금은 주변 성당에서 거둬 가난한 이들을 돕는다.

 

- 성모자상 밑에 아누라다푸라 십자가를 새긴 조형물이 있다.

 

 

스리랑카 교회의 상징은 천년고도 아누라다푸라(Anuradhapura)에서 1912년 발굴한 십자가다. 십자가의 네 면이 삼위일체를 상징하는 클로버 세 잎처럼 펼쳐져 있는 독특한 모양이다. 6세기 인도 교회로부터 전해진 유물로 추정하고 있다.

 

‘아누라다푸라 십자가’는 서기 52년 성 토마스 사도가 스리랑카에 처음으로 복음을 선포했다는 교회의 전승에 힘을 실어주는 유물로 스리랑카 신자들에게 큰 자부심을 안겨주고 있다. 스리랑카 교회는 이미 고대 때부터 그리스도교 신앙공동체가 스리랑카에 존재했음을 이 십자가를 통해 자랑하고 있다. 스리랑카 교회의 상징이 된 아누라다푸라 십자가는 2015년 프란치스코 교황 사목 방문 공식 로고로 사용됐다.

 

 

성 요셉 바즈 신부, 7만여 명 세례

 

스리랑카 가톨릭교회의 역사는 1505년 포르투갈 함대가 남부해안에 정박하면서 시작한다. 1543년에는 유럽 선교사들이 본격적으로 스리랑카를 찾았다.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도 방문해 1만여 명에게 세례를 줬다.

 

- 성 요셉 바즈 신부.

 

 

하지만 1658년 개신교가 우세한 네덜란드가 포르투갈을 스리랑카에서 축출하면서 점차 쇠퇴했다. ‘가톨릭 금지법’으로 인해 쇠퇴하는 교회를 재건하기 위해 1687년 인도에서 오라토리오회 요셉 바즈(Joseph Vaz, 1651~1711) 신부가 건너왔다. 그는 20년 동안 7만여 명에게 세례를 줬다. 1796년 영국이 네덜란드를 꺾고 스리랑카 새 주인이 됐고, 10년 뒤 가톨릭교회는 신앙의 자유를 얻었다. 그로부터 200년이 흐른 2015년 바즈 신부가 스리랑카 최초로 성인품에 올랐다.

 

 

콜롬보대교구 랑카 성모 성지

 

콜롬보대교구(교구장 말콤 란지스 추기경)는 스리랑카 교회의 유일한 대교구다. 신자 수는 67만여 명, 복음화율은 11%다. 1834년 인도 코친교구에서 분리돼 설정됐으며, 1886년 대교구로 승격했다.

 

콜롬보 북쪽 교외 라가마에 국가 순례지인 ‘랑카 성모 대성전’(Basilica of Our Lady of Lanka)이 있다. 로마의 성모 마리아 대성전(Santa Maria Maggiore)과 영적 유대를 맺고 있는 준대성전이다. 인도양을 상징하는 푸른색 지붕과 타지마할을 떠올리게 하는 정면이 이색적이다. 외벽에는 스리랑카 교회사를 묘사한 청동 부조가 장식돼 있다.

 

- 1974년 완공·축성된 랑카 성모 대성전 정면 모습.

 

 

랑카 성모 대성전이 봉헌된 계기는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콜롬보대교구장인 장 마리 마송(Jean-Marie Masson, 1876~1947) 대주교는 성모 마리아께 평화를 간구했다. 그는 성모님께 “스리랑카가 전쟁을 피하게 해주신다면 성당을 봉헌하겠다”고 서약했다. 성모님의 도우심 덕분인지 일본군은 해안 항구 두어 곳을 몇 차례 공습했을 뿐 본토까지 침략하지는 못했다.

 

전쟁이 끝나고 1948년 비오 12세 교황은 성모 마리아를 ‘스리랑카 수호성인’으로 선포했다. 랑카 성모자상은 이런 배경에서 탄생했다. 대성전 중앙 제대 위에 있는 성모자상은 비오 12세 교황이 축복했다. 천상 모후의 관을 쓰고 흰옷을 입은 성모 마리아는 스리랑카의 국목(國木)인 ‘실론아이언우드’ 위에 서서 왼손으로 오른팔에 앉긴 아기 예수를 가리키고 있다. 왕관을 쓰고 황금 별을 가슴에 단 아기 예수는 오른손에 묵주를 늘어뜨리고 있다.

 

콜롬보대교구민들뿐 아니라 전국의 수많은 신자가 끊이지 않고 이곳을 순례와 평화를 위해 랑카의 성모자에게 기도하고 있다.

 

- 랑카 성모 대성전 지하에는 하느님의 종 토마스 쿠레이 추기경이 안장돼 있다.

 

 

쿠레이 추기경 시복시성 추진 중

 

대성전 지하에는 토마스 쿠레이 추기경(Thomas Cooray, 1901~1988) 무덤이 있다. 오블라띠선교수도회 출신인 그는 스리랑카인 최초의 추기경이며, 본토인으로는 처음으로 콜롬보대교구장이 된 인물이다. 그는 약 30년간 교구장으로 재임하며 랑카 성모 대성전을 지어 봉헌했다. 랑카 성모자상도 직접 도안했다. 1988년 선종한 뒤 자신이 세운 성당에 묻혔다.

 

쿠레이 추기경은 생전 교회 일치와 종교 간 대화를 위해 헌신했고, 교회의 복음화 사명에 충실했던 사제로 존경받았다. 그가 선종한 뒤에도 그를 추모하는 신자들이 많다. 그의 무덤 앞에 놓인 노트에는 추기경에 전구를 청하는 기도가 빼곡하다.

 

콜롬보대교구는 쿠레이 추기경의 시복시성을 추진 중이다. 2010년 쿠레이 추기경은 ‘하느님의 종’이 됐다. 그의 무덤에는 시복시성을 위해 기도해달라는 문구가 싱할라어, 타밀어, 영어로 적혀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0년 3월 15일, 스리랑카 콜롬보=이학주 기자]


0 1,078 0

추천  0

TAG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로그인후 등록 가능합니다.

0 / 500

이미지첨부 등록

더보기
리스트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