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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부] 교부들의 신앙: 겸손 - 마르티노 성인이 전하는 겸손

554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19-09-24

[교부들의 신앙 – 겸손] 마르티노 성인이 전하는 겸손

 

 

‘겸손’과 ‘교만’은 ‘마음의 시소’를 타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겸손함을 드러내게 되면, 그 순간 겸손은 교만으로 변질되어 버립니다. 이러한 상대성 때문에 늘 주의를 경계해야 함은 지나침이 없는 일입니다.

 

이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교만’과‘겸손’의 관계를 고려하여, 지난 호에서 ‘교만’에 대해 주의를 당부했던 브라가의 마르티노(Martinus Bracarensis) 성인을 이번 호에서도 재조명하며, 성인의 작품 「겸손 권면」(Exortatio humilitatis)을 통해 ‘겸손’에 대해서 성찰해 보고자 합니다.

 

 

말의 소중한 힘을 잃어버린 시대

 

사람은 상호 의존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늘 소통과 교류가 필요합니다. 이것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오해가 생겨나고 분열과 싸움이 일어나기 십상입니다. 그래서 소통과 교류는 인간 삶의 방법 중에서 아주 중요한 자리를 차지합니다. 그런데 과학의 발전과 더불어 이 교류와 소통의 수단도 많이 변화되었습니다.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지 못했을 때는 서로 직접 만나서 눈빛을 보며 말을 주고받았습니다.

 

그렇지만 전화기가 발명되고 대중화되자 먼 거리에서 음성으로만 대화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또한 인터넷 문명의 시대에 접어든 뒤로는 아무런 감정의 이입 없이 오로지 축약된 문자로 자신의 주장만을 일방적으로 전달할 뿐입니다. 그러다 보니 수많은 오해가 생겨나고, 진실을 왜곡시켜 버리는 가짜 뉴스가 판치는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말’은 뜻을 전달하는 것 이상의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눈빛을 보며 주고받는 대화 속에는 상대방의 마음까지도읽을 수 있는 깊은 울림이 있습니다. 그래서 한마디의 말 때문에 사람들은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합니다. 때론 행복해지기도 하고, 섭섭해지기도 합니다. 또 어떨 땐 화도 나고, 어떨 땐 용기를 내기도 합니다. 이처럼 ‘말의 힘’이라는 것은 대단합니다.

 

그렇지만 오늘날 말의 소중한 힘을 잃어버린 시대가 되어 버린 것 같아 슬퍼집니다. 여기에 더해 막말을 통해 상대를 죽이고, 말의 힘을 악용해서 아첨과 같은 재주를 부려 상대를 속이는 데 이 힘을 쓰는 것 같아 더욱 안타깝습니다. 그럼에도 이러한 모습을 통해 역설적으로 진실한 말이 얼마나 가치 있고 소중한 것인지를 새삼 깨닫게 되는 것 같습니다.

 

 

겸손의 미덕

 

마르티노 성인도 「겸손 권면」을 통해서 이러한 말의 힘에 주목합니다. 그래서 당장은 단맛을 주는 아첨과 같은 말재주에 현혹되지 말고 입에는 쓰지만, 건강에는 좋은 진실한 이야기만을 나눌 것을 강권합니다. 그리고 아첨과 같은 말의 도탄에 빠지지 않고자 겸손을 통해서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기를 당부합니다.

 

“겸손의 미덕은 과장된 말보다는 순수한 마음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비록 진실이 우리를 힘들게 하더라도 건강을 위해 반드시 마셔야 하는 쓰고 맛없는 해독제처럼 우리는 진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무엇보다 여러분은 달콤한 말로 속삭이며 다가오는 사람들의 많은 유혹에 대해 경계심을 가지기를 당부합니다.

 

아첨을 즐기는 것은 큰 악덕이며 아첨을 하는 것은 간사한 짓입니다. … 듣기 좋은 말과 아첨으로 여러분을 치켜 세울 때, 여러분의 마음을 다스리십시오. … 아첨은 죄인의 기름입니다. 아첨은 화장품처럼 우리의 외모를 부드럽고 번지르르하게 만들어서 반짝이게 하지만,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겉모습보다는 내면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다윗 예언자는 아첨꾼의 찬양보다 의로운 사람의 조언이나 바른말이 더 낫다고 이야기합니다. 아첨꾼은 겉과 속이 다른 말을 하기 때문에, 하느님 보시기에 가장 나쁘고 혐오스러운 범죄자라고 여겨집니다.

 

그러므로 겸손을 익히십시오. 그래서 아첨이 여러분을 현혹할 때 여러분의 겸손을 마음을 다스리는 지침으로 삼으십시오. 겸손은 여러분이 거짓말에 현혹되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입니다”(27-30면).

 

‘겸손’은 라틴어 ‘Humilitas’를 번역한 것으로 ‘대지(Humus)에 가까워서 비천하다.’는 뜻을 가집니다. 곧 ‘인간이 두 발을 딛고 사는 땅인 대지는 낮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다 받아들여서 생명을 베풀어 준다.’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겸손은 인간이 자기 스스로를 바르게 알아서 하느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르티노 성인도 다음과 같이 우리에게 당부합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여러분이 이루어낸 일들을 자기의 능력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하느님께 그 공을 돌린다면 모든 악을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34면).

 

 

낮아지는 것은 높아지는 것

 

겸손이 하느님을 따르게 하는 인간의 기본적인 덕이라면, 교만은 하느님을 거스르게 하는 가장 근원적인 악입니다. 그래서 마르티노 성인은 늘 주의를 기울여 교만을 경계해야 한다고 우리에게 경고합니다.

 

“우리 안에 억제되어 있는 죄가 매 순간 다시 힘을 얻을 수 있는 이유는, 다윗처럼 하느님께 의탁하지 않고 자신을 뽐내기 때문입니다”(34면).

 

성인은 이러한 위험성을 알고 “낮아지는 것은 높아지는 것”임을 「겸손 권면」을 통해 반복적으로 강조합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겸손한 삶을 통해 선을 지향하고 그것을 열망하며 하느님을 찬미하며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스스로 부족하다고 자신을 낮추는 겸손한 마음만이 모든 것을 할 수 있게 만들며, 자신이 아닌 항상 하느님께 공을 돌림으로써 모든 좋을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 겸손함은 오르막길이 아니라 내리막길처럼 얼핏 쉬워 보일지 몰라도 이 길을 걷는 사람들을 천국으로 안내합니다. 그러니 항상 스스로를 낮추고 이것을 명심하며 살아가십시오. 영광은 여러분이 쫓으면 도망가고, 여러분이 도망가면 쫓아오는 그림자와 같기 때문입니다”(35-36면).

 

중국의 사상가 노자도 「도덕경」에서 “성인은 끝까지 스스로 위대해지지 않으려고 하니, 그렇기 때문에 위대함을 이루게 된다.”(34장)라고 역설합니다.

 

누가 어버이와 하늘과 땅, 더 나아가 하느님만큼 위대할 수 있습니까? 성인들은 하나같이 스스로 위대해지려고 하지 않습니다.

 

또한 물은 천지 만물에 모두 스며들어 그 생명을 키우고 지켜 내지만, 자신을 내세워 주인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냥 물로 있을 뿐입니다.

 

이처럼 ‘실로 위대한 것은 크고자 하지 않으므로 크게 된다.’는 역설처럼, 우리도 마르티노 성인의 당부를 잊지 않고, 겸손을 삶으로 체화하여 주님께 영광을 돌리며 그분께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 김현 안셀모 - 부산교구 신부로 부산교구 언양성당에서 사목하고 있다. 교황청립 라테라노대학교 아우구스티노 교부학 대학원에서 수학했고, 서강대학교 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했다. 사목 단상을 담은 수필집 「나그네 생각」을 펴냈으며, 역서로 「그리스도교 신앙 원천 5, 브라가의 마르티누스」가 있다.

 

[경향잡지, 2019년 9월호, 김현 안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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