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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백) 2024년 4월 20일 (토)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영성ㅣ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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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론자료
2019-07-07.....연중 제14주일 다해

2312 이철희 [gold] 스크랩 2019-07-06

 

연중 제14주일 (다해)

 

이사야 66,10-14     갈라티아서 6,14-18       루카 10,1-20

2019. 7. 7. 이태원

주제 : 우리가 가질 삶의 자세

사람의 삶에 필요하다고 말할 첫 번째 요소로 누구나 '평화(平和)'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같은 글자를 쓰면서도 사람들이 저마다 담는 의미가 다를 수 있는 일이 평화입니다. 뜻을 다르게 생각하면, 그 평화를 삶에 실현하는 방법도 다를 것입니다. 같은 글자를 쓰면, 뜻도 같은 것이어야 할 텐데, 평화는 어떤 의미이어야 하겠습니까

 

사람이 바라는 것을 현실에서 얻기란, 누구나 어려울 수 있습니다. 실제로 어려운 일을 택해서 그런 경우도 있지만, 표현을 같이해도 담는 뜻이 달라서 그럴 때도 있을 것입니다. 사람에게 중요한 사랑믿음행복에 관한 것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당신보다 앞서서 복음을 선포하라고 제자들을 보내시며, 그들이 갖추어야 할 조건을 말씀하시는 내용입니다. 세상에 쉽고도 만만한 일은 어디에도 없습니다만, 복음을 선포하려는 사람이 가져야 하는 자세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사람이 중요하다고 생각할 조건들을 모두 빼고서도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을 일이라고 생각한 예수님이 순진하셨던 것일까요

 

예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어렵다면, 반대로 아주 쉽고 또 간단하게 하는 준비만으로도 복음선포의 효과를 충분히 얻는다고 할 일도 잘못인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복음을 선포하는 일이 어렵지 않다고 여기고 싶은 우리일 수도 있지만, 내 몸을 움직이는 일이 아닌 다음에야 모든 일이 어려운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세상의 논리에서, 사람은 개인이 노력하는 일준비하는 일의 어려움을 크게 생각하고, 결과를 좋은 것으로 예상할 것입니다. 그 예상하는 내용에 따라, 없는 정성도 있는 것처럼 드러내려고 애쓰는 것이 당연한데,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명령하시는 조건들을 보면, 사람이 생각하는 조건들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인간의 생각이나 노력이 쓸 데가 없다고 말씀하셨을까요 성경의 어디에도 그런 얘기는 없습니다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일의 의미를 새겨야 합니다.

 

우리가 삶에서 걱정하는 불안요소와는 달리 일흔 두명의 제자들이 복음선포를 한 후에 예수님에게 돌아와서 보고하는 내용은, 사람이 미리 준비한 여러 가지 조건들이 하느님의 뜻이 펼쳐지는 일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말씀은 그렇게 들었지만, 우리가 실제로 그러한 자세로 사느냐는 것입니다.

 

첫째 독서로 들은 이사야예언자의 선포는 하느님나라가 이루어진 뒤’, 그 나라의 모습을 전하는 먼 미래의 모습에 관한 얘기입니다. 오늘 우리가 독서의 말씀으로 들은 내용은, 예언자 이사야가 2500년이 넘는 시간 전에 선포한 내용이지만, 아직도 현실로 드러난 일은 아닙니다. 사람의 삶에 실현되었으면 좋겠다고 할 희망을 담은 말씀인데, 아직 실현되지 않은 희망의 얘기를 들으면서, 우리는 그 선언을 어떻게 받아들이는 신앙인이겠습니까 세상의 삶에 충실하게 산다는 사람으로서, 과연 신앙의 자세는 어떻게 갖는 사람이겠습니까

 

아직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미래의 어느 순간에 실현될 것이라는 희망이 담긴 이야기가 사람에게 힘을 주는 일은 언제나 가능할까요 실제로 예언의 말씀대로 일이 실행되면 가장 큰 행복이겠지만, 그 일이 아직 실현되지 않은 일이라면, 우리가 어떤 자세로 그 말씀을 대하느냐에 따라, 내 삶에 현실로 드러날 내용이 달라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희망은 사람의 삶이 좋게 바뀌는 데 꼭 필요한 요소입니다. 일주일 전만 해도 꿈과 같은 이야기였을 일이, 지난주일(6/30. 15:45~: 50분간 만남)에 있었습니다. 일본에서 G20-선진국회의를 마치고, 판문점에서 우리 대통령과 북의 지도자, 그리고 미국의 대통령이 만난 얘기는, 아직 후속결과는 없습니다만, 기적을 담은 얘기이고, 그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희망이라고 포장했을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낙인을 자기 몸에 지니고 살았다고 말한 바오로사도의 삶은 기쁨보다는 서글픈 생각을 더 많이 하고 살았을 겁니다. 하지만 그 낙인은 하느님께서 자신을 선택하신 표지라는 생각으로 사신 분이 또한 바오로사도였습니다. 우리도 각자의 삶에서 바오로사도가 선택을 입었다고 할 때 말하는 낙인과 같은 인호(印號)를 지니고 삽니다. 그러한 우리는 바오로사도와 같은 자세를 드러내며 살까요 내 삶을 통해서 하느님의 뜻이 실현되기를 청하고, 내가 그 일에 함께하기를 청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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