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GOOD NEWS 자료실

검색
메뉴

검색

검색 닫기

검색

오늘의미사 (백) 2024년 4월 28일 (일)부활 제5주일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영성ㅣ교육

sub_menu

교육ㅣ심리ㅣ상담
[심리] 신약성경, 무엇이든 물어보세요35: 중풍 병자

1144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3-09-14

[홍성남 신부의 ‘신약성경,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35) 중풍 병자


몸도 못 가누는 환자를 누가 주님께 데려갔나요

 

 

틴토레토 ‘중풍 병자의 치유’. 출처 위키미디어

 

 

■ 최근 어떤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있는데, 정작 본인은 제가 바치는 기도의 내용을 원하지 않는 듯합니다. 예수님은 본인 의사와 관계없이도 기도를 들어주시나요? 성경에도 그런 내용이 나오는지 궁금합니다.

 

사람들이 중풍 병자 한 사람을 주님께 데려옵니다. 그런데 이 복음의 내용은 일반적이지 않습니다. 우선 주님께서 중풍 병자가 아닌 그를 데려온 사람들의 믿음을 보셔서 치유를 해주셨다는 것이 특이합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느님께서는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다른 사람들이 그를 위해 해주는 기도에도 응답하시는 분임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미사 때에 다른 사람들을 위한 기도를 하는데 바로 복음의 이 부분을 근거로 하는 것입니다.

 

또한 주님께서는 중풍 병자를 인지치료, 즉 병든 생각을 바꾸어주시는 치료를 해주십니다. “용기를 내어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이 말씀은 이 병자가 걸린 중풍이 심리적 요인에서 온 것임을 말해주신 것입니다.

 

병적인 죄책감.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해도 나는 나 자신을 절대로 용서할 수가 없어’ 하는 생각. 이렇게 죄책감이 강한 사람들은 자기를 비난할 뿐만 아니라 자신을 정신적·육체적으로 학대하기에 몸과 마음이 병듭니다. 또한 이런 사람들은 하느님이 다른 사람들은 다 용서해줘도 자기는 절대로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란 병적인 믿음을 가지고 삽니다.

 

더욱이 그 당시 사람들은 병이 그가 지은 죄로 인한 것이란 병적인 신념을 가지고 살았기에 그의 죄책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클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중풍은 그가 가진 내적인 고통이 신체적으로 드러난 현상이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중풍 병자의 내면을 보시고 그의 병적인 죄책감을 덜어주시는 말씀으로 치유를 해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복음에서 놓치기 쉬운 내용은 ‘왜 사람들이 중풍 병자를 주님께 데려오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는가’하는 것입니다.

 

만약 중풍 병자가 동네 사람들의 인심을 잃은 사람이었다면 어떠했을까요? 아무도 그를 위해 나서지 않았을 것입니다. 자기 한 몸 챙기기도 바쁜 세상에 누가 남의 일에 나서겠습니까. 그런데도 여러 사람이 그를 주님께 데려왔다는 것은 그가 다른 사람들에게 호감의 대상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었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선한 사람이 될 것을, 다른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이 될 것을 누누이 강조하십니다. 이것은 바로 이 중풍 병자와 같은 처지가 됐을 때 다른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가르침이라고 생각하셔도 될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들고 다른 사람들에게 비호감 대상이 되면 어려울 때 아무도 그를 돕지 않습니다.

 

독재자 스탈린, 그가 쓰러졌을 때 아무도 그를 돕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가 죽기를 바란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았기에 그가 죽은 후에 아무도 애도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가는 곳을 우리는 지옥이라고 합니다.

 

 

■ 마태 9,1-8

 

예수님께서는 배에 오르시어 호수를 건너 당신께서 사시는 고을로 가셨다. 그런데 사람들이 어떤 중풍 병자를 평상에 뉘어 그분께 데려왔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얘야, 용기를 내어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중략)

그런 다음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 네 평상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거라.” 그러자 그는 일어나 집으로 갔다. 이 일을 보고 군중은 두려워하며, 사람들에게 그러한 권한을 주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가톨릭신문, 2023년 9월 10일, 홍성남 마태오 신부(가톨릭 영성심리상담소 소장)]


0 62 1

추천  0

TAG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로그인후 등록 가능합니다.

0 / 500

이미지첨부 등록

더보기
리스트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