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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교회ㅣ기타
사유하는 커피4: 카페인과 떨기나무의 가시

573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0-06-01

[사유하는 커피] (4) 카페인과 떨기나무의 가시


커피가 카페인을 품게 된 이유는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로다.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작은 열매도 맺을 수 없듯이, 너희도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그러하리라~”

 

어릴 때부터 영성체 행렬에서 항상 따라 부른 덕분에 동요보다 또렷하게 몸에 새겨진 성가이다. 시인을 꿈꾸며 멋스럽게 시집을 들고 다니길 좋아했던 중학생 시절, 문득 ‘가사가 너무 쉬운 거 아냐!’라는 생각이 들어 작사에 덤비기도 했다. 노랫말이 될 만하게 없을까 성경을 뒤지다 모세가 가시덤불에서 하느님을 뵙는 장면에서 제법 오랫동안 열병을 앓은 기억이 있다. 구절구절 의미를 따져가며 성경을 읽은 건 그때가 처음이었는데, 궁금증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 앞에 나타나셨으면 훗날 예수님이 고생하지 않았을 텐데, 왜 목소리만 들려주셨을까, 나무를 태우지 않는 불이란 전기의 발명을 예고하신 것일까….

 

성경에 의심을 품으면 의혹을 낳고, 의혹은 정신을 피폐하게 만든다. 반면 비유의 말씀이 현실에서 부딪치는 난제를 풀 열쇠가 될 것이라고 믿으면 가끔 눈이 뜨이는 환희를 맛보기도 한다. 하느님께서 수많은 나무 중 가시덤불에 나타난 이유를 따져 나간 경험이 그랬다. 하느님은 왜 가시가 있는 떨기나무(관목)로 오신 것일까? 답을 찾으려는 생각은 하면 할수록 꼬여만 갔다. 중학교 이후 거의 40년간 이에 대한 궁금증이 도질 때면, 한참 고민하다가 결국 ‘그냥 믿자’ 하며 넘겼다. 그러다가 커피를 만나면서 접근법을 바꿨다. 이유를 따지기보다 가시덤불이 주는 의미를 찾아 스스로 납득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창세기보다 대략 2000년 앞선 글로 남겨진 길가메시 서사시에 “늙은이가 젊은이가 되다”라는 긴 이름이 붙게 된 ‘영생을 주는 나무’에도 가시가 있다. 그 나무를 잡아 손에 챙기기 위해 길가메시는 가시에 찔리는 고통을 참아내야 했다. 가시는 진실을 만나기 위해 인간이 넘어서야 할 관문이자 치러야 할 대가이겠다. 가장 크고 날카로운 가시로 쇄도해 목을 찔린 후에야 비로소 아름다운 소리를 토해내는 가시나무새도 같은 은유다.

 

나무에게 가시는 생명을 보존하고 번식하기 위한 장치이기도 하다. 진화론에 따르면, 가시가 없는 나무들은 잎과 줄기를 동물에게 쉽게 먹히는 바람에 소멸됐다. 가시가 없는 나무들은 꽃가루를 통한 보다 왕성한 번식력으로 소멸의 위험을 극복해왔다. 모세에게 하느님이 불로서 깃든 가시 떨기나무는 근접조차 힘들지만, 반드시 가시(고난과 유혹)를 극복하고 그 속에 들어 있는 진실(하느님)을 만나야 한다는 삶의 이치를 깨우쳐주는 상징이다.

 

커피나무도 진실에 이르게 하는 나무이길 소망하며 바라봤다. 길가메시의 시절, 커피나무는 지금의 카메룬 지역에서 치자나무의 형태로 자라고 있었다. 지질활동으로 동아프리카 단층지구대가 형성되면서 치자나무는 고향을 떠나 에티오피아로 긴 고난의 여정을 시작했다. 치자나무는 동물과 곤충의 공격에서 자신을 보호할 수단으로 가시를 장착하는 대신 카페인을 품는 전략을 채택했다. 어머니 유게니오이데스(Eugenioides) 시대를 거쳐 지금의 아라비카종으로 모습을 갖추기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나무로서는 드물게도 뿌리에서부터 잎, 심지어 꽃술까지 식물체 전체에 카페인이 흐르고 있는 덕분이다.

 

가시가 고난을 만드는 것인지. 고난이 가시를 만드는 것인지 혹은 위험이 카페인을 만든 것인지 카페인이 위험을 만든 것인지. 그 이유보다는 세상 돌아가는 이치, 하느님의 섭리를 이해하는 게 유익하다는 생각을 한다. 커피나무의 카페인은 떨기나무의 가시를 닮았다.

 

[가톨릭평화신문, 2020년 5월 31일, 박영순(바오로, 커피비평가협회장, 단국대 커피학과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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