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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하는 커피21: 바벨탑과 스페셜티커피

614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0-10-13

[사유하는 커피] (21) 바벨탑과 스페셜티커피


상술이 쌓아올린 커피 시장의 바벨탑

 

 

“야훼께서 온 세상의 말을 거기에서 뒤섞어 놓아 사람들을 온 땅에 흩으셨다고 해서 그 도시의 이름을 ‘바벨’이라고 불렀다.”(창세 11,9, 공동번역본)

 

바벨탑의 이야기는 문학, 영화, 미술, 음악 등 다양한 영역에서 은유되면서 우리의 본성을 스스로 되돌아보게 한다. 인간은 욕심대로 살 수 없으며, 과욕이 만든 그릇된 사회를 바로잡는 장치를 신께서 이미 내부에 계획해 두셨음을 일깨워 준다. 또 인간은 소통하지 않으면 한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는 점과 인간을 하나로 뭉치도록 하는 가치가 불온할 때 전체를 위험에 빠뜨리게 됨을 경고한다.

 

“사람들이 한 종족이라 말이 같아서 안 되겠구나.… 당장 땅에 내려가서 사람들이 쓰는 말을 뒤섞어 놓아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해야겠다.”(창세 11,6-7)

 

청소년기에 이 말씀을 받아들이는 데 마음이 불편했다. 시쳇말로 “하느님께서 인간이 잘되는 꼴을 못 보겠다고 하시는 것인가?” 하는 오해 때문이었다. 지천명을 넘어서야 이 구절이 인간 탐욕에 대한 은유적인 가르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커피 시장에는 ‘스페셜티 커피(Specialty coffee)라는 바벨탑’이 우뚝 서 있다. 마치 하늘에 닿은 데 이어 이름을 날려 사방으로 흩어지는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양 기고만장하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작당하고 품질이 좋지 않은 커피를 스페셜티 커피처럼 꾸미는 일이 잦아졌다. 그 무리가 커피 전문가의 탈을 쓰고 실제로는 장사를 하는 세력이기에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이들은 일단 “스페셜티 커피란, SCA(스페셜티커피협회)라는 세계적인 단체가 품질을 평가해 100점 만점에 80점 이상을 부여한 좋은 커피”라고 정의해 소비자들에게 신뢰를 얻는 수법을 쓴다. SCA를 앞세워 놓고는 정작 그들이 사용하는 커피가 바로 그 커피인지는 얼버무리고 넘어간다. 이런 짓을 그러려니 하고 혀만 차던 사이, 그들의 바벨탑은 하늘로 우뚝 솟았다.

 

커피 광고를 보면 스페셜티 커피가 아닌 게 없는 듯하다. 커피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는 적잖은 전문가들이 자신이 다루면 무엇이든 스페셜티 커피가 되는 양 떠든다. 좋지 않은 커피라도 자신이 로스팅하거나 추출하면 스페셜티 커피가 된다고 수작을 부린다. 이들을 추종하는 사람들까지 생겨나 자신들만의 바벨을 구축한다. 그러나 그들의 도시는 바벨이 뜻하는 ‘혼돈’ 그 자체일 뿐 성경 말씀대로 흩어져 사라질 운명을 피할 수 없다.

 

그릇된 신념은 잘못된 가치를 증폭해 빠르게 오염시킨다. 그들의 바벨에서는 스페셜티 커피라고 떠드는 온갖 잡음들이 난무해 혼돈에 빠지게 된다. 지금 우리의 커피 시장이 이렇게 흘러가고 있다. 주변에 온통 스페셜티 커피이다. 출처를 물어보면, 믿고 마시라는 식이다. 성경 속 바벨에는 결국 거대한 탑만 남고 사람들은 모두 사라졌다. 거대한 탑은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자리에 홀로 남아 모래바람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스페셜티 커피의 개념은 1978년 국제커피회의에서 에르나 크누젠이 “산지의 지정학적인 미세한 기후 조건이 커피에 특별한 향미를 부여한다”고 일갈할 때 태동됐다. 순간 전 세계 커피 애호가들은 가슴이 벅차올랐다. 와인처럼 산지를 명확하게 표기하고 품질을 관리해 품격 있는 커피 문화를 만들어가자는 다짐이었고, 그런 커피는 분명 사람들을 행복으로 이끈다는 믿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스페셜티 커피는 상술만 요란할 뿐 그 딱지가 붙으면 되레 신뢰를 잃는 지경이 됐다. “사람들이 딴마음을 먹으면 못 할 일이 없겠구나” 하신 하느님의 말씀이 무엇을 염려한 것인지 커피를 통해서도 헤아릴 수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0년 10월 11일, 박영순(바오로, 커피비평가협회장, 단국대 커피학과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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