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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철학ㅣ사상
과학 시대의 신앙: 수소 원자는 어떤 색일까

383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19-10-30

[과학 시대의 신앙] 수소 원자는 어떤 색일까

 

 

“수소 원자는 어떤 색인가요?” 몇 년 전 고등과학원의 ‘초학제’(transdisciplinary) 프로그램 차원에서 개최한 세미나에서 한 예술가가 강연자인 물리학자에게 던진 질문이었다. 수십 년 동안 물리학을 연구해 온 사람의 뒤통수를 치는 질문이었다.

 

 

큰 틀에서 이해하려는 움직임

 

어느 분야에서는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다른 분야에서는 전혀 당연하지 않을 수 있으며, 한 분야에서는 전혀 생각하지도 않았을 문제가 다른 분야에서는 심각하게 다뤄지는 경우가 있다. 과학과 철학, 예술 등의 학제를 넘어서는 논의를 통해 세상을 더 큰 틀에서 이해해 보자는 취지로 고등과학원에서 마련한 것이 바로 초학제 연구이다.

 

초학제 연구에서 아쉬운 것이 있다면 종교적인 문제는 묵시적으로 금기라는 점이다. 더구나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하는 연구 기관에서 종교와 관련된 주제를 논한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일 뿐만 아니라 세금 낭비와 비슷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몇 년 전 방송에서 어느 잘나가는 철학자가 ‘종교적 신앙을 가진 물리학자는 엉터리’라고 말한 적도 있었다.

 

초학제를 하면서 깨닫는 또 다른 한 가지는 현대 학문이 탄생한 서구와 달리, 그 학문을 받아들인 우리에게는 이를 논하는 용어를 비롯한 언어 관련 문제가 심각하다는 점이다. 필자가 연구하는 ‘양자 정보 과학’(量子情報科學)만 하더라도 세 단어를 복합한 명사인데 한자 문화권인 우리나라, 중국, 대만, 일본이 모두 같은 표현을 쓰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Quantum Information Science’를 번역한 ‘양자 정보 과학’이란 단어는 모두 일본학자들이 수십 년 이상 애쓴 결과 정착시킨 단어들이다.

 

중국은 한자의 종주국으로서 모든 기본적인 개념에 해당하는 한자를 한 자씩 만드는 것이 전통적인 원칙인 듯하다. 이와는 달리 우리나라나 일본은 새로운 한자를 고전을 참조하기도 하면서 이미 존재하는 한자를 활용하여 두 자나 석 자 또는 여러 한자를 엮어서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 내는 경향이 있다. 자연 과학과 수학, 철학, 문학, 역사 등의인문학, 법학 등의 사회 과학, 예술, 종교 등 서구 문화를 번역하고 연구하고자 일본 학자들이 만든 한자 단어들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한자의 종주국인 중국에서도 널리 쓰이고 있다.

 

 

표현의 다름에서 오는 문제점

 

에너지를 비롯하여 물리적인 ‘양’(量, quantity)이 연속적이지 않고 덩어리져 있어서, 양자 물리학의 창시자인 막스 플랑크는 이를 ‘퀀텀’(Quantum)이라고 불렀다. 이를 일본학자들은 ‘양자’(量子)로 번역했다. 한글로 ‘양자’라고 쓰면 너무 많은 동음이의어가 있기에 정확하게 소통하는 데 지장을 주기도 해서인지 ‘아재 개그’의 소재가 되기도 한다. 일본 책을 자주 읽는 이들은 ‘양자’(量子)와 ‘양성자’(陽性子)를 종종 혼동하기도 한다. 일본에서는 수소의 핵인 양성자도 양자(陽子)라고 표기하기 때문이다.

 

‘사이언스’(Science)도 일본학자들은 과학(科學)이라고 표기한다. 그 의미에 대한 논란과 잘못된 번역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이제는 한자 표현의 뜻을 심각하게 여기는 경우가 거의 없고, 그 의미를 추론하는 경우도 없다. 한마디로 과학은 그냥 ‘사이언스’이다.

 

‘정보’(情報)라는 단어도 일본에서 만들어졌는데, 학문적으로 ‘인포메이션’(information)의 번역어인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미국의 중앙 정보국인 CIA(Central Intelligence Agency)의 경우처럼 ‘Intelligence’라는 단어도 정보로 번역되었다. 그러나 여기서는 ‘지적’(知的)이라는 일반적인 뜻이 아니라, 스파이 활동을 말하는 ‘첩보’(諜報)라는 뜻을 담고 있다.

 

몇 년 전 일본에서 열린 양자 정보 관련 학술 대회에서 만난 어느 중국인 교수는 학교에 출장을 신청했다가 공안으로부터 왜 일본의 스파이 관련 모임에 참석하려고 하는지 해명하라는 요구를 받았다는 웃지 못할 사연을 들려주었다. 우리는 일본을 따라 ‘인포메이션’과 ‘인텔리전스’ 둘 다 ‘정보’라고 쓰지만, 중국과 대만은 첩보와 관련한 단어만 ‘정보’라고 쓰고, 인포메이션은 각각 ‘신식’(信息)과 ‘자신’(資訊)이라고 표현한다. 여기서 ‘식’은 숨 쉴 ‘식’으로 ‘소식’과 관련이 있고, 자신의 ‘신’은 ‘묻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 대부분이 모르고, 과학자들도 잘 모르는 중국과 대만의 원소 주기율표를 보면, 나라 간의 생각이 얼마나 다른지 알 수 있다. 예컨대 우리나라와 일본은 ‘하이드로젠’(hydrogen)을 번역한 한자어 ‘수소’(水素)를 쓰지만, 그 두 나라는 이 원소가 근본적이기에 한자 한 자를 부여할 가치가 있다고 하여, 기체를 뜻하는 ‘기’(气)자 아래에 가볍다는 뜻으로 ‘경’(巠)자를 넣어 ‘경’(氫)이라는 한자로 수소를 나타낸다.

 

그뿐 아니라 다른 원소 주기율표도 우리가 모르는 새로운 한자들로 대부분 채웠다. 기체에 해당하는 것은 부수로 ‘기’(气), 금속에 해당하는 것은 ‘금’(金), 중간 영역의 일부는 ‘석’(石)을 포함했다. 또한 우리나라는 열역학에 나오는 엔트로피(entropy)를 그냥 발음대로 쓰지만, 중국에서는 에너지를 뜻하는 ‘화’(火) 변에 에너지의 교환을 뜻하는 ‘상’(商)을 써서 엔트로피를 나타내고 있다.

 

더 큰 틀에서 이해하려면 번역어를 대할 때 본디 단어를 생각하지 않고 번역에 묻어 있는 뜻만을 생각한다면 심각한 오류에 빠질 수 있다. 천주교를 모욕할 목적으로 ‘신부’(神父)라는 한자 표현을 ‘귀신 아비’, 심지어 ‘무당’이라 해설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이 경우는 아니지만, 방주를 뜻하는 선(船)자를 보면 여덟[八] 식구[口]가 배[舟]에 타고 있으니, 노아의 방주는 노아 부부와 세 아들 부부, 총 여덟 사람이 탔음을 의미한다는 엉터리 주장도 있다.

 

이것 말고도 우리가 쓰는 수많은 번역어가 불만족스럽지만, 이미 용법이 굳어져 쓰이고 있으니 번역된 말마디에 현혹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다시 수소 원자의 색깔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우리가 주변의 사물을 볼 때, 그 물체에서 나오거나 그 물체가 반사한 빛이 우리 눈의 망막에 있는 시각세포에 흡수되어 보이게 된다. 그 물체는 어떤 색깔을 띠게 된다. 이런 일상의 감각적 경험을 확장하고 일반화하여 ‘모든 것은 보이고 색깔을 가지고 있다.’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 우주의 물질이나 물체 중에는 빛을 내거나 반사하지 않는 것도 있고, 빛을 내거나 반사하여도 우리 눈으로는 볼 수 없는 파장의 빛도 있다. 곧 우주에는 우리의 감각적 경험을 초월하는 것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수소는 양전기를 띤 하나의 양성자 주위에 음전기를 띤 전자 하나가 일정한 양자 상태에 있다가, 그 상태가 변할 때 에너지 차이에 해당하는 빛을 흡수하거나 내어놓을 수 있다. 그런 빛 가운데 아주 일부분만이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가시 영역 파장대에 있다. 수소와 관련된 빛 대부분은 우리 눈으로 직접 볼 수 없다.

 

우리의 감각과 경험, 사고, 논리, 언어와 그를 총동원한 과학적 방법을 무시해서는 안 되지만, 그를 초월하는 그 무엇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대하거나 다른 문화를 접할 때, 더구나 신앙 행위와 관련한 것에서는 열린 마음으로 그 초월성을 존중해야 한다.

 

* 김재완 요한 세례자 – 고등과학원(KIAS) 계산과학부 교수로 양자 컴퓨터, 양자 암호, 양자 텔레포테이션 등을 연구하고 있다.

 

[경향잡지, 2019년 10월호, 김재완 요한 세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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