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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녹) 2019년 9월 20일 (금)연중 제24주간 금요일예수님과 함께 있던 여자들은 자기들의 재산으로 예수님의 일행에게 시중을 들었다.

영성ㅣ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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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ㅣ 봉헌생활
봉쇄의 울타리에서: 영원하신 그분의 자비

626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19-08-17

[봉쇄의 울타리에서] 영원하신 그분의 자비

 

 

수녀원에서 지낸 시간을 되돌아보니 청원자 시절의 한 사건이 떠오른다. 그때는 그저 우연히 발생한 사고라고 여겼으나,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내 삶의 요약본처럼 다가온다.

 

 

깊은 구렁 속에서

 

어느 낮 오락 시간 때의 일이다. 여느 때처럼 배구를 하러 배구장으로 갔는데 넓은 판자가 눈에 띄었다. 사실 그 판자는 하수구 점검을 다 끝내지 못해 임시로 덮어 둔 것이었지만, 나는 그것도 모르고 다니는 데 걸리적거릴 것 같아 판자를 옮기려고 했다.

 

동반자 자매들을 불러 양쪽 끝을 잡게 하고 나는 한가운데를 잡았다. 판자를 옮기려고 한 발 디디는데, 아뿔싸! 내 몸은 깊은 구렁 속으로 빠져드는 것이 아닌가. 급작스러운 상황에 자매들은 판자를 내팽개친 뒤 나를 찾았고, 곧 시궁창에 빠진 나를 내려다보았다. 이 상황에서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놀란 자매들은 만세 자세로 구렁 속에 빠진 내 양손을 붙잡아 서둘러 꺼내 주었다.

 

시궁창의 오물을 뒤집어쓴 나를 수련장 수녀님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쳐다보셨다. 하필 그날은 수련장 수녀님이 공동체 수녀들에게 내가 잘 지내고 있는지 소개하며 본격적인 양성 기간이라 할 수 있는 수련기를 시작할 것인지 결정하는 날이었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합니까? 보시다시피 이 모양 이 꼴입니다.” 수녀님은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나도 따라 웃었다. 그때의 나는 수녀님의 말씀을 농담으로만 여겼다. 내가 수녀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은 추호도 갖고 있지 않아서였을까.

 

 

가장 보잘것없는 피조물 안에 계신 주님

 

정작 수련기가 시작되니 주님께서는 그런 나의 생각을 조금씩 바꾸어 주셨다. 주님의 강렬한 빛 앞에서 내 깊은 곳에 존재하는 시궁창이 끓어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죄로 일그러지고, 애착에 붙들어 매이며, 욕구에 이리저리 이끌려 살아가는 노예 상태, 그야말로 스스로 빠져나올 수 없는 구렁 속에 빠진 지금의 내 모습이었다.

 

어느 신부님의 강론이 생각난다. 예수님께서는 가장 보잘것없는 피조물들과 같은 운명을 나누시고자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오길 원하셨단다. 참으로 피부에 와닿는 희망의 강론이었다.

 

나의 정배이신 예수님께서는 이미 그 구렁 속에서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내 죄를 용서로 씻어 주시고 십자가의 신비를 가르쳐 주셨다. 그리고 죽음도 갈라놓을 수 없는 영원한 사랑의 혼약을 할 수 있도록 친히 나를 준비시켜 주셨다.

 

“수녀는 무엇을 원합니까?” 성대 서원식 때 주교님이 물으셨다. 나는 진심에서 우러나와 대답할 수 있었다. “하느님의 자비와 공동체의 자비를 원합니다.”

 

내가 하느님의 부르심에 이처럼 응답할 수 있었던 까닭은 결코 내 능력과 자질이 아니었다. 나의 오른손을 잡아 주신 하느님의 자비와 나의 왼손을 잡아 준 공동체의 자비를 체험했기 때문이다.

 

 

이토록 죄 없는 이가 왜

 

5년 전 예수님께서는 스페인 모원으로 나를 보내셨다. 이곳에서 지내며 예수님의 자비하심을 날마다 새로운 방법으로 체험하곤 했다. 나는 환자 수녀님들을 돌보는 간호 소임을 맡게 되었는데 직장암과 치매가 함께 온 연세 많으신 한 수녀님을 돌보게 되었다. 그 수녀님은 오랫동안 원장 수녀로 지내며 자신을 다른 이에게 아낌없이 내어 주신 분이셨고, 모두가 그 수녀님의 덕망과 성스러움을 존경했다.

 

한번은 수녀님이 내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저는 점점 기억을 잃어 가고 있어요. 하지만 저는 하느님께 제 모든 것을 드렸기 때문에 그분께 ‘이건 가져가셔도 됩니다. 하지만 이건 안 돼요.’라고 말할 수 없어요. 제 모든 것 또한 하느님의 것이니까요.”

 

그 뒤 수녀님은 몇 차례 쓰러지셨고, 병세는 더욱 악화되었다. 지금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침대에 누워 계신다. 그런 수녀님의 모습을 보며 하느님께 ‘왜?’라는 질문을 수없이 했다. 이토록 선하신 분이 왜 고통받고 이렇게까지 비참해져야 하는지를 말이다.

 

예수님께서는 몸소 보여 주신 속죄의 신비를 통해 이런 내 마음을 열어 주셨다. 곧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이들에게 주시는 가장 큰 선물은 당신과 같은 운명을 나누게 하시는 것임을, 보이지는 않으나 힘차게 우리 안에서 활동하시는 성령을 통해서 깨닫게 해 주셨다.

 

 

하느님 자비의 도구로

 

세속에서의 남은 시간을 고난 속에서 몸과 영혼을 다하여 채워 가시는 수녀님이 사람의 눈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오직 고통 속에서 연명하는 환자처럼 보이나, 실제로 하느님께서는 속죄의 신비로 주님의 자비를 수녀님 안에서 이루고 계시다는 것을 신앙의 눈으로 바라보게 해 주신다.

 

수녀님처럼 알게 모르게 주님 자비의 도구로 자신을 온전히 내어 주며 사라져 가는 숨은 영혼이 세상 곳곳에 얼마나 많을까. 가장 가난한 이들 안에 머무르시겠다고 약속하신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내 곁의 수녀님 안에 머무르시어 내게 물 한 모금을 청하신다. 수녀님을 영적 수로로 삼으시어 생명의 물을 전하시는 것이다.

 

인간의 지혜로는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는 가장 보잘것없는 이의 모습으로 다가오시는 예수님을 바라본다. 이러한 예수님과 누리는 사랑의 친교가 주님 자비의 메아리가 되어 온 세상에 울려 퍼지기를 간절히 기도드린다.

 

[경향잡지, 2019년 8월호, 황상경 평화의 마리아 세레나(도미니코회 천주의 모친 봉쇄 수도원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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