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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ㅣ 봉헌생활
봉쇄의 울타리에서: 주님 안에서 하나 되어

625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19-07-29

[봉쇄의 울타리에서] 주님 안에서 하나 되어

 

 

대만 봉쇄 수녀원에 입회하기까지

 

1984년 6월 2일, 나는 수녀원에 입회하고자 대만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봉쇄 수녀원, 그것도 외국에 있는 수녀원이라니 거의 모든 사람이 만류하였다. 본당에서 왈가닥으로 유명한 나였는데 이렇게 무모한 시도를 할 수 있었을까? 그렇지만 하느님께서는 나를 신비로운 방법으로 그곳으로 인도하고 계셨다.

 

대만에 도착하여 한 달 동안 타이베이에 머물며 중국어를 공부할 때는 ‘그냥 한국으로 돌아갈까?’ 하고 생각한 적이 많았다. 그러나 ‘여기까지 온 거, 수녀원까지 가 보자. 내 길이 아니라면 그때 가서 결정해도 늦지 않을 거야.’ 하며 스스로를 위로하였다.

 

7월 6일, 나는 대만 남쪽의 항구 도시 가오슝에 있는 도미니코회 천주의 모친 봉쇄 수녀원에 발을 들여놓았다. 봉쇄의 문이 열리고 수녀님 한 분 한 분과 포옹을 나누었다. 입회할 때 수녀님들이 불러 주신 ‘도미니칸 살베 레지나’는 단순한 아름다움 이상의 것이었다. 그때 그 기억이 내 마음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그리고 믿지 못할 일이 일어났다. 난생처음 보는 봉쇄 수녀님들이었지만, ‘아! 이곳이 내 집이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모든 걱정과 두려움이 봄눈 녹듯 사라졌다. 나는 이곳에서 한마음 한뜻이 되어 사는 재미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이 세상을 떠날 때, 나는 공동체 자매들에게 둘러싸여 성모님의 노래를 들으며 주님을 뵈러 갈 것이다.

 

 

함께 모이면 ‘개미군단’이 되다

 

우리 봉쇄 수녀들은 하루 24시간을 같은 공간에서 같은 사람들과 살아간다. 함께 일하고 기도하며, 한솥밥을 먹고, 크고 작은 일을 모여 의논한다. 우리 수녀원에는 텔레비전이 없다. 세속적인 것이 수녀원에 들어오는 것을 막으려는 것이 첫째 이유이긴 하지만 전혀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레크리에이션 시간에는 모두 동그랗게 모여 앉아 이야기꽃을 피운다. 하느님 말씀 묵상, 성인전, 교회 소식 등 거룩하고 심오한 얘기와 수녀원 회랑에 침입한 다람쥐를 잡아서 산에 풀어 준 일 등 그날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나누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연약한 여자들이 모여 살지만 힘을 모으면 못할 일은 거의 없다. 수년 전 제병 작업실을 보수하여 이전했을 때의 일이다. 제병 기계 무게가 만만치 않기에 일꾼 아저씨들에게 좀 옮겨 달라고 부탁드렸다. 아저씨들이 들어 보더니 너무 무거워 도저히 안 되겠다고 하셔서 수녀들이 도와 드리겠다고 했더니 그건 절대 안 된다고 하신다.

 

그래서 우리는 작전을 짰다. 아저씨들이 잠깐 식사하러 가신 틈을 타서 수녀 여러 명이 달려들어 제병 기계를 옮겨 놓았다. 아저씨들은 이런 우리를 보고 ‘개미군단’이라 하신다. 맞는 말이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개미 같이 작고 힘없는 존재들이지만 함께 모이면 군단이 되어 냉장고까지도 들었다 놓았다 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지치고 힘들 때에 자매들의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면 저절로 힘이 난다. 큰 축일에 방문객들이 와서 설거지 거리가 산더미처럼 쌓인 것을 보면 나같이 둔한 사람은 “와. 이걸 언제 끝내지?” 하며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러나 모두가 기쁘게 힘을 모아 열심히 하다보면 거의 눈 깜짝할 새에 끝난다. 힘을 써야 하는 일이 있으면 결코 빠지지 않는 씩씩하고 재빠른 자매들이 있는가 하면, 작은 일들을 숨어서 챙기는 자매들도 늘 있다.

 

 

한마음 한뜻을 이루고자

 

봉쇄 수녀들은 형제들이 함께 모여 사는 기쁨과 행복, 아름다움과 풍요로움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한다. 동시에 다른 사람들이 한마음 한뜻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인지도 체험한다.

 

봉쇄 수도원을 ‘무시무시한 단식과 희생’의 생활로 생각하는 분이 많다. 오래 전에 우리 수도원을 방문했던 한 성소자가 기억난다. 아마 그 아가씨도 비슷한 생각을 했던지 우리 수녀들이 보통 사람들처럼 웃고 얘기하는 것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사실 봉쇄의 삶은 만만치 않다. 봉쇄라는 울타리 안에서 서로 다른 사람들이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려면 대단한 인내와 희생이 필요하다. 동시에 이렇게 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은총이고 기쁨인지 날이 갈수록 더 깊이 느끼며 감사드리게 된다.

 

수도 생활을 하며 배운 것 하나가 서로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이기에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배우는 중이다. 그리고 평생 배워 나가야 할 것이다. 아무리 핏줄을 나눈 가족이라도 저절로 관계가 형성되는 것은 아닌 것처럼 말이다.

 

가정 공동체든 수도 공동체든, 사회 공동체든 구성원 모두가 끊임없이 노력하며 가꾸어 나가야 한다.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니 우리 인간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우리 가운데 분명히 계신 그분, 그 한 분을 바라볼 때 가능한 일이다. 이렇게 할 때 그분께서 우리 안에서 사랑의 기적을 이루어 내실 것이다.

 

요즘 같이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만연한 사회에서는 공동체적인 증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우리 천주의 모친 수도원의 영적 스승이요 어머니였던 하느님의 종 예수의 데레사 마리아 오르테가 수녀는 일찍부터 공동 성덕에 대해 말했다. 데레사 수녀는 공동체로부터 박해 를 받아 성녀가 탄생하는 것을 원치 않으셨다. 반대로(?) 공동체 한 사람 한 사람이 서로 서로 끌어 주고 밀어주며 모두 힘을 합쳐 성덕의 길로 나아가길 바랐고 이를 위해 평생을 바치셨다.

 

프란치스코 교황님도 말씀하셨듯이 언젠가 한 가족 전체를, 공동체 전체를 성인 대열에 올릴 날이 오지 않을까?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공동체, 그러나 그 안에 하느님께서 계시는 그런 공동체 말이다.

 

[경향잡지, 2019년 7월호, 주인해(교회의 마리아도미니코회 천주의 모친 봉쇄 수도원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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