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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새로운 시대 앞에 선 그리스도인들에게

1466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0-08-10

[특별기고] 새로운 시대 앞에 선 그리스도인들에게

 

 

오늘날 코로나 바이러스(COVID-19)로 인한 전 지구적 위기 상황을 겪으면서, 인간의 생활 양상은 급작스런 변화를 맞게 되었다. 이 감염병 사태를 기점으로 한 사회문화적 변화가 이제 ‘뉴 노멀(new normal)’이라는 용어로 정착되었고, 이에 따라 인간의 존재성과 미래적 삶의 양식에 관한 질문 및 성찰이 광범위하게 제기된다. 인간의 삶은 미래에 어떠한 모습으로 변화될 것인가? 인간 삶의 어떤 부분이 본질적인 것이고, 무엇이 변화 가능한 것인가? 그리고 근본적으로, 인간은 과연 무엇인가?

 

 

전인적 인간

 

‘전인 교육’이란 말도 있듯이, 인간 존재와 그 삶에 대한 성찰은 통합적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즉, 인간의 어느 한 특정 측면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전체로서의 인간을 보아야 한다. 전체로서의 인간이란, 구분(distinction)은 가능하지만 분리(separation)할 수 없는 다섯 가지 차원을 통합한 것이다. 즉 인간에게는 신체적(physical) 차원, 논리-지성적(logico-intellectual) 차원, 심리-정서적(psycho-emotional) 차원, 사회-경제적(socio-economic) 차원 그리고 영적인(spiritual) 차원이 각기 존재한다.

 

이 다섯 가지 차원은 상호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예를 들어, 몸에 큰 질병이 생겨 신체적 차원의 문제가 발생하면, 이는 대부분 마음, 즉 심리-정서적 차원의 부정적 문제를 동반하게 된다. 병고로 인한 불안감과 우울감에 시달리는 것이 그 대표적 경우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대인관계가 차단되고 금전적 문제가 생기는 등 사회-경제적 차원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하지만 이는 동시에 영적 차원의 긍정적 반응을 일으키기도 한다. 즉, 자신의 고통과 희망 그리고 삶과 죽음의 의미에 대해 보다 근원적 성찰을 하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인간의 영적 차원이 깨어나고, 영적 감수성이 증대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어느 환자의 인격 안에서 이런 역동적 상호관계가 통합적으로 고찰된다.

 

이러한 ‘연쇄성의 원리’는 개인적 차원을 넘어서 집단적 차원에서도 동일하게 드러난다. 현재 COVID-19로 겪는 지구적 현상에서도 이러한 역동적 상호관계가 발견된다. 새로운 바이러스의 출현과 감염이라는 신체적 차원의 의료 문제가 이른바 ‘코로나 블루(corona blue)’와도 같은 집단적인 심리-정서적 차원의 문제를 일으키고, 이는 사회-경제적 차원의 심각한 문제를 연쇄적으로 일으키고 있다. 보건의료 차원의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다 하더라도, 사회-경제적 차원에서는 심각한 후폭풍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경제적 불황이 오래 지속될 수도 있고, 또 경우에 따라 비대면 강의나 화상회의, 원격진료의 일상화처럼 대면 활동이 급격히 감소하면서 아예 인간 삶의 양상을 송두리째 바꾸어버리는 일들이 발생할 수도 있다.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 이 문제를 극복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영적인 차원의 노력과 기도가 전 세계 곳곳에서 감지되기도 한다. 지난 3월 27일, 비 내리는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위기 앞의 인류를 위해 홀로 기도하던 프란치스코 교황의 모습이 종교를 넘어 전 세계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켰던 것도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해석 가능하다. 또 아프고 힘들어하는 이들과 그들을 위해 헌신하는 이들을 위로하고자 영상을 통해 이루어진 콘서트(virtual concert)들 역시 현장의 느낌 그 이상의 감동을 우리에게 선사해주었다.

 

 

전인적 영성

 

인간의 종교적 활동은 우선적으로 인간의 영적인 차원에 초점을 맞추지만, 그러면서도 다른 측면들과의 균형 및 조화가 잘 이루어져야만 한다. 예를 들어, 심리-정서적 차원의 안정과 논리-지성적 차원의 판단력이 전제가 되어야만 올바른 신앙생활의 심화와 성장이 이루어질 수 있다. 정서적으로 불안한 상태에서 건전한 영성이 정립될 수 없고, 이성적 판단이 결여된 신앙은 미신이나 광신으로 빠지게 된다. 또한 건강한 신앙생활에는 건전한 사회생활이 동반되어야만 한다. 그렇지 못할 때, 흔히 일부 신흥종파처럼 일탈 및 이상 현상이 발생한다. 즉, 사이비 종말론에 빠져 집단생활을 하면서 가족관계와 사회생활이 송두리째 파괴되기도 하는 것이다.

 

종교사회학적 관점에서 본다면, 종교의 3대 요소로 믿음의 교리, 예식, 조직을 꼽을 수 있다. 즉, 인간의 종교성은 믿음의 교리적 체계뿐 아니라 그 예식(ritual)적 측면과 사회-제도적 측면까지도 포괄하여 전인적이고도 복합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런데 COVID-19로 인해 일반적 사회 활동은 물론이고 예식적, 조직적 차원의 종교 활동조차도 크게 제약받는 상태가 오면서, 향후 종교 활동에 대한 이해와 실천에 변화가 예상된다. 종교의 3대 요소 중 두 가지 핵심 요소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자칫 종교의 위기 상황까지도 초래할 수 있다.

 

향후 바이러스에 대한 완전한 치료제나 백신 개발이 아직 불투명한 상태에서 그리고 혹시라도 다른 바이러스로 인한 감염병의 지속적 발생 가능성을 염두에 둔다면, 앞으로 예식적이고 조직적 차원의 종교 활동은 계속해서 제약을 받을 수도 있다.

 

 

신앙의 ‘공동체적 현장성’에 대한 도전

 

그리스도교 신앙은 하느님 백성의 모임으로서 교회의 공동체적 신앙을 기본 전제로 한다. ‘교회’를 가리키는 그리스어 ‘에클레시아’라는 말 자체가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해 모인 ‘회중’을 의미한다. 인간은 하느님 앞에서 단독존재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함께 살아가는 공동존재자이다. 우리의 그리스도교 신앙 자체는 교회를 모태로 한 공동체적 신앙이다. 그러므로 세례 때에 동일한 신앙을 고백하면서 가톨릭(보편적인) 신앙인이 된 것이다.

 

‘공동체적 현장성’은 그리스도 신앙의 근본 요소에 속한다. 평소에는 일상생활에서 각자 신앙을 실천하며 살아가지만, 주일에는 함께 모여 같은 신앙을 고백하며 그동안의 삶을 하느님께 봉헌한다. 미사를 통해 복음 말씀을 함께 경청하고 성체성사를 통해 영적 양식을 함께 나눔으로써, 우리는 영적으로 성장하고 양육되는 것이다. COVID-19로 말미암아, 어쩔 수 없이 이런 ‘공동체적 현장성’이 제약받는 신앙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것이 비상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교회는 죽음의 위협 등 위급한 상황에서는 많은 것을 관면하고 허락해준다. 하지만 향후 상시적인 바이러스의 위협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면 그리고 그로 인해 많은 경우 비대면 혹은 온라인으로 이루어지는 생활양식이 정착된다면, 이는 우리의 신앙생활에 도전을 제기할 것이다.

 

이러한 도전과 위기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새로운 조건과 환경 속에서도 신앙의 본질적 요소인 공동체적 현장성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며 다각도로 그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즉, 공동체적 신앙 실천의 새로운 길을 찾아야만 하는 것이다. 현재와 미래의 급격히 변화된 디지털 환경에 적응하면서도 신앙의 전통적인 아날로그적 성격을 보존하며 그 본질적 가치를 실현해나갈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은 매우 어렵고도 힘든, 그러나 반드시 해야 할 과제이다. 마치 초대 로마교회에서, 또 초창기 한국교회에서 혹독한 박해 속에도 함께 모여 신앙 예식을 거행했던 것처럼, 우리 역시 목숨을 거는 용기로 수행해야 할 과제가 될 것이다.

 

 

‘영적인 사람’이 되기 위하여

 

다른 한편으로, 신앙생활이 보다 영적인 차원에서 깊어지게 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사실 그동안 많은 경우, 신앙윤리 의무 준수와 신앙단체 소속이나 활동 등으로 자기 신앙의 정체성을 유지해온 측면이 크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제 예식적 차원에서의 직접적 참여나 대면적인 신앙 활동 측면에서 제약을 받는다면, 신앙 정체성의 위기를 겪게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이제는 영적 차원의 활동, 즉 인격적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초월적 신앙에 대한 체험과 나눔이 매우 중요하게 될 것이다. 이는 보다 넓은 관점에서의 신앙생활을 의미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가두 선교나 방문 선교 등과 같은 대면적, 직접적 선교 활동이 어렵게 된다면, 이제 삶의 현상적 차원을 넘어 이루어지는 초월적 체험에 대해 소통하고 나누는 것, 그리고 인간 고통에 대한 해석과 삶의 궁극적 의미 추구 작업 등을 통해 직접 눈에 보이지 않는 이웃들을 참된 신앙으로 인도하는 길이 필요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미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재위 1978-2005)은 1999년 권고 「아시아 교회」(Ecclesia in Asia) 23항에서 “선교의 미래가 관상(contemplation)에 크게 달려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즉, “모든 그리스도인에게는 기도와 관상으로 이루어진 참된 선교 영성이 필요”하며, “진실로 종교적인 사람은 아시아에서 깊은 존경과 따름을 받게 됨”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활동’(to do)도 매우 중요하지만, 이제는 ‘존재’(to be) 중심의 신앙인으로서 균형을 잡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 스스로 “영적인 사람”(1코린 2,15; 갈라 6,1)으로 다시 태어나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인간의 이러한 영적 체험과 초월적 추구는 앞으로 여러 영역에서 더욱 큰 화두가 될 것이다. 참으로 역설적이게도, 인간은 제약과 고통으로 인해 무력해진 한계 상황의 체험을 통해서, 그 한계를 뛰어넘는 초월적 의미 체험을 하게 된다. COVID-19로 삶의 여러 고통과 신앙 활동의 제약을 체험하고 있는 지금, 어쩌면 내 삶의 다른 한편에서는 영적 깨어남과 초월을 위한 하나의 아름다운 씨앗이 자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스도인의 삶과 신앙은 이처럼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도전에 직면해 성찰과 식별과 쇄신의 전기를 맞이하고 있다.

 

“여러분은 현세에 동화되지 말고 정신을 새롭게 하여 여러분 자신이 변화되게 하십시오. 그리하여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하느님 마음에 들며  완전한 것인지 분별할 수 있게 하십시오.”(로마 12,2)

 

* 박준양 - 서울대교구 소속 사제로 가톨릭대학교 교수이며 교황청 국제신학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그리스도론』, 『삼위일체론』 등 ‘박준양 신부와 함께하는 신학 여행’ 시리즈 6권이 있다.

 

[생활성서, 2020년 8월호, 박준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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