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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자) 2020년 4월 9일 (목)성주간 목요일 - 성유 축성 미사 [백]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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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수도 전통에 따른 렉시오 디비나31-32: 수도 전통 안에서의 되새김

1400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0-03-23

[수도전통에 따른 렉시오 디비나] (31) 수도 전통 안에서의 되새김 ①


음식 먹듯 성경을 천천히 씹고 음미해야

 

 

수도자들은 성경을 끊임없이 읽고, 듣고, 기억하며, 그것을 반복적으로 되풀이하고, 되씹음으로써 말씀으로부터 영적 자양분을 얻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가장 잘 묘사한 단어가 바로 “ruminatio”(루미나시오, 되새김, 반추)이다. 이것은 마치 소나 낙타가 음식을 저장하였다가 그것을 살과 뼈에 스며들 때까지 천천히 되새김하는 것과 같다. 즉 기도하는 마음으로 성경 본문을 되씹음으로써 그것을 맛보고 또한 그 본문의 깊고 충만한 의미를 깨닫고 자기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다. 특히 이러한 되새김은 수도 전통 안에서 상당히 중요한 수행 중 하나였다.

 

사막의 교부였던 마카리우스 압바는 우리 모두가 되새김하는 양과 같이 음식을 계속 되씹음으로써, 그 음식의 달콤한 맛을 보게 되고 마침내 마음 가장 깊은 곳으로 그 음식을 집어넣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파코미우스 성인은 각자의 소임지에서나 혹은 혼자 있을 때나 언제나 성경의 말씀이 그들의 마음 안에서 계속 반복되기를 바랐다. 파코미우스와 그의 형제들은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모두 거룩한 성경 말씀을 되뇌는 수행을 멈추지 않았다. 파코미우스 성인의 제자였던 호르시에시오스의 규정집에 보면, 수도원 어디에서든지 성경 말씀을 암송하는 수행이 멈추어서는 안 됨을 강조하고 있다.

 

라틴어 성경인 「불가타」를 우리에게 전해준 히에로니무스 성인 역시 끊임없는 독서와 반복적인 묵상을 통해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마음을 그리스도의 서고(書庫)로 만들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요한 가시아누스는 끊임없는 묵상이 우리의 마음을 채우고 우리를 형성할 때까지 스스로 열심히, 보다 더 끊임없이 렉시오 디비나 해야 함을 강조하였다. 또한, 수도자는 일하면서 동시에 성경 본문을 끊임없이 묵상해야 함을 강하게 권고하였다. 여기에서 언급되고 있는 묵상은 말할 것도 없이 되새김 수행을 의미한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은 독서를 하루 동안 연장되는 되새김과 관련하여 언급하였다. 그는 마태오 복음 4장 4절을 주석하면서, 사람이 매일 빵을 먹듯이 낮 동안뿐만 아니라 밤에도 우리는 복음을 먹어야 함을 강조했다. 말씀을 듣거나 읽는 것은 음식을 먹는 것과 같고, 말씀을 곰곰이 생각하는 것은 되새김과 같기 때문이다. 그는 수도자들이 일하는 중에도 시편을 낭송하고 되새김을 계속 해야 한다고 권고하면서, 현명한 사람은 하느님의 말씀을 계속 되씹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그 후 체사리우스는 「수녀들을 위한 규칙서」에서 식당이나 일터에서 공동 독서가 끝나더라도 수도자의 마음에서는 되새김이 멈추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였다.

 

베네딕도 성인 역시 이러한 되새김의 중요성을 인식했지만, 그는 노동 중에 행하는 되새김에 대해서는 규칙서에서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이것은 일하면서 계속 성구를 되뇌던 「베네딕도 규칙서」 이전의 모습과는 큰 차이점 중의 하나이다. 드 보궤 신부는 베네딕도회 수도생활의 핵심적 표현인 “Ora et Labora”(기도하고 일하라)라는 표현이 불충분하기 때문에 더 분명하게 ‘Ora et Labora et Lege et Meditare’(기도하고 일하고, 성경을 읽고 묵상하라)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필자는 이러한 그의 주장에 크게 공감하고 있다. 수도생활이나 영성생활에서 성경은 핵심 중의 하나이다. 그러므로 ‘기도하고 일하고 그리고 성경을 열심히 읽고 묵상하는 것’은 우리의 수도생활이든 영성생활을 안전하게 떠받치는 4개의 중요한 기둥과도 같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가톨릭평화신문, 2020년 3월 22일, 허성준 신부(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수도 전통에 따른 렉시오 디비나] (32) 수도 전통 안에서의 되새김 ②


보는 게 아니라 씹어 먹어야 하는 책

 

 

수도 전통 안에서 있었던 묵상으로서의 되새김 수행은 베네딕도 성인 이후에도 계속 강조되었다. 그래서 12세기의 안셀모 성인은 “독서자는 자기의 구원자이신 분의 선(善)을 맛보아야 하고, 그분의 말씀을 되씹어야 한다”고 말하였다. 그는 또한 되새김의 과정을 다음과 같이 아주 자세히 묘사하였다. “당신은 그분 말씀의 벌집을 씹고, 그 맛을 빨아들여라. 그것은 그 어떤 수액보다도 더 달콤하다.… 생각으로 씹고 이해로써 빨아들이고 사랑과 환희로써 들이켜라!” 그 어떤 수액보다도 더 달콤한 말씀의 벌집을 씹고 빨아들이라는 권고이다. 베르나르도 성인 역시 수도자들이 순결한 반추 동물과 같이 말씀을 끊임없이 되뇌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우리가 성경을 달콤하게 반추함으로써 우리의 내장은 채워지게 된다.”

 

이렇게 중세까지 수도 전통 안에 묵상의 과정으로서의 되새김 수행이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다가,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오는 큰 분기점인 르네상스를 거치면서 합리적이고 체계적인 묵상 방법들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 사실 어휘에서 볼 수 있듯이 고대나 중세까지만 해도 ‘묵상’(meditatio)과 ‘되새김’(ruminatio)은 별 구분 없이 사용되었다.

 

그러나 중세 말 스콜라 학문의 영향으로 인해 묵상에 이성적이고 추리적인 요소들이 많이 첨가되면서 점점 더 묵상과 되새김 수행 사이에 균열이 생기게 되었다. 이제 묵상은 단순히 성경 말씀을 되새김하는 것이 아니라 더 지성적인 의미들을 내포하게 되었다. 그래서 본래의 묵상의 개념이었던 되새김은 이제 ‘생각하는 것’(cogitatio), ‘고려하는 것’(consideratio), ‘연구하는 것’(studium)과 같은 의미들로 대체되었다.

 

더욱이 근세로 넘어오는 큰 분기점인 르네상스를 거치면서 더 합리적이고 체계적인 묵상 방법들이 널리 퍼지게 되면서 점점 더 묵상과 되새김이 분리되어 버렸고, 그 이후에 되새김 수행은 거의 잊히게 되었다.

 

이로써 오랫동안 수도 전통 안에서 단순하게 그리고 독특하게 행해져 오던 성경 묵상에 대한 구체적인 수단인 되새김 수행이 잊히게 되었는데, 이점은 수도승 영성의 크나큰 불행 중의 하나임을 필자는 매우 안타까워하고 있다. 그래서 오늘날 수도 전통을 따르고 있는 수도자들마저도 그러한 방법이 무엇인지, 심지어 수도승 전통 안에서 그러한 방법이 있었는지조차도 모르는 기(奇)현상을 종종 목격하게 된다.

 

수도자들은 끊임없이 성경 본문을 암송하고 반복하고 되씹으면서 헛된 세상의 가치에 휩쓸리지 말고 온갖 유혹으로부터 자신을 지키어, 하느님의 말씀 안에 온전히 머물러 있어야 한다. 이 점에서 장 르끄레르 신부는 이러한 끊임없는 반복과 되새김 수행이 수도자들의 내적 생활을 훨씬 더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고 강조하였다.

 

베네딕도 16세 교황은 수도자들의 이러한 독특한 묵상 방법인 되새김 수행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도 사막의 수도교부들처럼 말씀을 끊임없이 되뇌어야 함”을 강조하면서 ‘ruminating’(반추) 용어를 직접 사용하시기도 하였다.

 

장익 주교는 언제가 주교회의 성서위원회 위원장으로 있을 때, 다음과 같이 의미 있는 말을 하였다. “성경은 안경을 쓰고 들여다보는 책이 아니라 씹어 먹어야 하는 책입니다. 그리고 여유 있는 사람이 하는 게 아닙니다. 유식해서 시간이 있어서 하는 게 아닙니다. 고대 채록자들 역시 생활이 바빴고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지만, 그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알아듣고 구원을 찾았던 이들입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0년 3월 29일, 허성준 신부(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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