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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녹) 2020년 1월 18일 (토)연중 제1주간 토요일 (일치 주간)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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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행복을 찾아서: 지혜

981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19-12-03

[행복을 찾아서 – 지혜] 지혜

 

 

지혜란 세상에 관해 깊이 깨닫고 이에 걸맞게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백과사전처럼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며, 장기나 바둑을 잘 두는 것처럼 꾀가 많다고 지혜로운 것도 아니다. 지혜란 과연 무엇일까?

 

 

지혜를 찾아서

 

서울대학교의 모토는 ‘베리타스 룩스 메아’(VERITAS LUX MEA)다. 우리나라 대학교인데 라틴어로 모토를 삼은 것이 좀 이상한가? 사실 1946년 서울대학교가 개교할 당시에 총장은 미군정청 고문관 해리 엔스테스였다. 그는 ‘진리는 나의 빛’이라는 유명한 표어를 따서 교훈을 만들었다. 대충 외국 것을 따서 만들었다는 풍문도 있는데, 정말일까?

 

예수회에서 설립한 서강대학교의 모토는 ‘오베디레 베리타티’(Obedire Veritati)다. ‘진리에 순종하라.’는 뜻이다. 연세대학교의 교훈은 ‘베리타스 보스 리베라비트’(Veritas vos Liberabit), 곧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다.

 

서울대학교와 같은 해에 개교한 호주 국립대학교의 모토는 ‘나투람 프리뭄 코뇨쉐레 레룸’(Naturam Primum Cognoscere Rerum)이다. ‘먼저 자연의 본질을 깨달으라.’는 뜻이다. 외국 것을 대충 가져다 썼다는 소문은 ‘진리’가 아니다. 인류 보편의 가치에 국내외가 따로 있을 리 없다.

 

공부하고 연구하는 학교니까 지혜를 모토로 내세우는 것이라고? 그러나 진리나 지혜라는 단어는 성경에 자주 등장한다. 사랑보다는 빈도가 약간 적지만 소망이나 믿음, 심지어 구원보다도 자주 등장한다. 동양 문화에서도 마찬가지다. 모름지기 군자는 인의예지(仁義禮智)의 네 가지 덕목을 가져야 하는데, 네 번째 덕목이 비로 지혜다.

 

 

공부하는 행복

 

모든 것을 금전으로 환원하는 세상이라, 공부도 원하는 직업을 얻거나 이익을 얻기 위한 수단처럼 되어 버렸다. 취업이 잘되는 전공이 인기다. 이른바 ‘문사철’은 대학에서도 찬밥 신세다. 심지어 대학교수도 태연하게 자신이 하는 연구의 경제적 가치가 얼마라고 말하는 시대다. 돈으로 노벨상을 사겠다는 듯이 막대한 돈을 들여 이런저런 프로젝트도 만들고 사업도 벌인다. 진리는 과연 세상의 경제적 복리를 얻기 위한 도구에 불과한 것일까.

 

각박한 세상을 살아가는 재치 있는 꾀 정도로 지혜를 폄하하기도 한다. 자칫하면 속기 쉬운 세상이니, 머리를 요리조리 잘 굴려서 손해를 피하고 이익을 불리는 재주로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혜는 그런 것이 아니다. 만일 그렇다면 소크라테스는 정말 지혜롭지 못한 어리석은 사람이었을 것이다. 평생 출세도 못하고 배를 곯다가 모함받아 죽었으니 말이다.

 

진리, 곧 지혜를 추구하는 삶은 어떤 목적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 자체로 가치 있는 일이다. 자연과 사회의 질서를 찾아내고 일반 법칙을 추론하며 새로운 지식을 쌓아 가는 고귀한 행위다. 돈이 되지 않아도, 경제적인 이득이 없어도 상관없다. 그런 것이 정말 중요하다면 명문 대학교의 교훈은 ‘경제적 이득과 세상에서의 성공’이었을 것이다.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의 지혜

 

진리를 찾는 지혜 따위는 그냥 학자에게 맡겨 놓으면 어떨까? 솔직히 말해서 머리도 나쁘고 공부도 체질이 아니다. 책은 읽기만 해도 졸음이 온다. 그러니 진리는 머리 좋은 사람에게 맡기고 응원만 하겠다는 심산이다. 좀 미안하지만 말이다. 게다가 이성보다는 감성이 중요한 것 아닌가? 뜨거운 가슴이 있으니 부족한 지혜를 벌충할 수 있을 것이다. 가슴도 없이 펜대만 굴려서 뭘 하겠냐는 항변이다.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은 평생 영원한 진리를 추구하던 학자였다. 그의 별명은 천사적 박사(Doctor Angelicus)였다. 물론 천사만 연구한 것도 아니고, 천사 자신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는 그리스 학문부터 다양한 연구를 통해 스콜라 철학의 문을 열었고, 세상 만물의 질서를 세운 대학자였다. 그래서 학자, 교수, 학생의 수호성인으로 꼽힌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공부만을 잘해서 유명한 성인이 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진리를 추구하는 일이 신에게 다가서는 거룩한 행위임을 분명히 밝혔다. 그에게 이성은 곧 하느님이었다. 신앙을 위해서 이성을 포기하는 것은 그에게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느님 자체가 살아 있는 진리였기 때문이다. 진리에 눈감는 일 자체가 신에게 등을 돌리는 일이었다.

 

레오 13세 교황은 그를 가리켜 ‘고대의 위대한 박사에 대한 지극한 존경심을 품고 모든 이의 지혜를 얻을 수 있었던 성인. 이성과 신앙을 분명하게 구분하며, 동시에 둘을 조화시켜 각각의 권위와 품위를 지킬 수 있도록 한 인물’이라고 평하기도 하였다.

 

사실 수천 년 전부터 자연의 질서를 찾는 일은 창조주의 위대함을 드러내는 성스러운 일이었다. 옛 지식은 끊임없이 새로운 지식으로 옷을 갈아입었지만, 지혜를 추구하는 태도에 담긴 가치는 전혀 변함이 없었다. 토마스에게 가장 중요한 진리는 오랜 지혜를 담은 책에서 얻을 수 있는 것, 자연의 세계에서 직접 관찰하여 취할 수 있는 것이었다. 어떤 의미에서 그의 삶 자체가 바로 대학이었다.

 

 

진리를 향한 행복한 본능

 

공부가 타고난 천성이라고 자부하는 사람은 별로 없겠지만, 사실 모든 인간은 공부하고 연구하는 본성을 가지고 태어난다. 복잡하게 얽힌 현상 속에서 규칙성을 찾고, 겉으로 드러난 모습 뒤의 숨은 원리를 추정하며, 처음 보는 세상의 일에 깊은 호기심을 가지는 것은 인류의 본성에 해당한다. 재미없이 암기만 반복하는 학교 공부를 연상한다면 따분한 일이겠지만, 진리를 탐구하는 행위를 시험공부와 비교할 수는 없다. 흥미로운 세상의 현상을 보고, 오랜 지혜를 담은 책을 보며 연구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아주 행복한 일이다.

 

어려운 신학적 진리만 공부하라는 것이 아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신학부를 졸업한 찰스 다윈은 따개비 연구를 무척 좋아했다. 신학자 아이작 뉴턴은 미적분과 만유인력을 발견했다. 자연의 질서에 대한 그들의 연구는 도덕적 진리나 신학적 발견만큼이나 위대하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신에 대한 경외심은 그 근원이 다르지 않다.

 

물론 진리를 추구하는 일은 돈이 되지 않는다. 명예를 얻기도 어렵다. 어쩌다 명예와 돈을 얻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결과일 뿐 목적이 될 수 없다. 낚시의 즐거움이 큰 물고기에 있는 것이 아니듯이, 진리 추구의 기쁨도 그 과정 중에 찾을 수 있다. 지혜를 얻는 행복이야말로 영원한 ‘진리’다.

 

* 박한선 - 정신과 전문의. 신경 인류학자. 서울대학교 인류학과 강사로 지내며, 서울대학교 비교문화연구소에서 인간의 정신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이화여자대학교 목동병원, 서울대학교 병원, 성안드레아병원에서 일했다. 「마음으로부터 일곱 발자국」, 「토닥토닥 정신과 사용설명서」, 「내가 우울한 건 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때문이야」를 펴냈다. 

 

[경향잡지, 2019년 11월호, 글 박한선, 그림 이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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