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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자) 2020년 4월 9일 (목)성주간 목요일 - 성유 축성 미사 [백]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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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철학ㅣ사상
과학 시대의 그리스도인: 과학주의의 탄생 배경

391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0-02-18

[과학 시대의 그리스도인] 과학주의의 탄생 배경

 

 

신앙은 초자연적이고 단 한 번 주어지는 계시를 누군가가 받아들이는 예외적인 사건으로부터 흔히 발생된다.

 

모세라는 인물이 불타는 떨기나무를 통해 들려오는 음성을 접하는 초자연적이고 유일무이한 사건으로부터 이집트 탈출이라는 놀라운 구원의 역사가 시작되는 과정을 살펴보자.

 

 

유일무이한 계시와 신앙

 

이때 계시를 받아들인 모세의 주변인들이라 할 수 있는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에게 전달된 계시를 분석하기 시작한다. 계시 내용과 자신들의 경험을 비교한 뒤 받아들일 만하다고 판단되면 그때야 비로소 그 계시 내용을 신앙으로 받아들인다. 이렇듯 구세사에서 볼 수 있는 신앙은 초자연적이고 유일무이한 사건의 주관자로부터 중개자를 통해 주어지는 계시 내용을 나머지 사람들이 받아들임으로써 퍼져 나가게 된다.

 

그 반면 과학은 경험적 사실들을 관찰하거나 특정 조건으로 실험한 뒤 방대한 데이터를 축적하는 과정을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 여긴다. 만일 이 방대한 데이터로부터 유사한 패턴이나 질서가 보이면 엄밀한 분석 과정을 거쳐서 발견되는 패턴이나 질서의 재현성(再現性), 보편성에 의심의 여지가 없을 때 비로소 경험 법칙과 원리로 나아간다. 이렇듯이 과학은 경험적 사실들로부터 법칙, 원리로 나아가는 접근법을 따른다.

 

그러다 보니 과학은 경험으로부터 얻어진 ‘수많은’ 데이터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법칙과 원리의 발견을 목적으로 한다. 따라서 관측 데이터의 양이 일단 많아야 한다. 이렇게 축적된 데이터로부터 장소, 시간에 구애를 받지 않는 보편적 법칙을 찾는 것이 과학의 궁극적인 목적이라 할 수 있다.

 

반대로 신앙은 인간의 역사 안에 주어진 계시를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받아들이는 과정을 통해 탄생되고 퍼져 나간다. 여기서 계시는 이 세상의 역사 안에서 단 한 번 주어지며 절대로 반복되지 않는 특징을 가진다. ‘불타는 떨기나무 사건’ 또한 구세사를 통틀어 오직 모세만이 단 한 번 경험한 것이었다.

 

이렇듯 유일무이한 계시는 그 자체로는 결코 보편적이라고 할 수 없다. 다만 계시를 접한 사람들이 그 계시 내용과 자신들의 삶의 경험을 비교하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 보편성을 획득하게 되고, 그 계시 내용은 점차 권위를 얻어 간다.

 

 

과학적 관점에서 바라본 계시

 

그렇지만 과학에서는 ‘모든 사건’을 특정한 법칙을 통해 설명할 수 있어야 하며, 설명되지 않는 예외적인 사건은 거짓 또는 관찰의 오류로 여긴다. 이렇다 보니 인간 역사 안에서 일어난 유일무이한 사건을 신앙에서처럼 계시라는 차원으로 받아들이고 여기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기란 양적 데이터를 요구하는 과학의 관점에서는 이해하기 힘들다. 과학에서는 이 유일무이한 사건이 측정 오류 내지는 데이터 조작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실례로 오늘날의 많은 과학자가 예수님의 부활 사건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이 한 번뿐인 부활 사건이 그들의 관점에서는 측정 오류(누군가가 헛것을 본 것)나 데이터 조작(누군가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의도적으로 거짓 주장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와 다르게 신앙의 관점에서는 세상의 모든 사건에 특정한 법칙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고유성’이 있다. 더불어 그 고유성 안에서 활동하시는 신적 존재의 계시를 찾을 수 있다고 여긴다. 따라서 구세사에 있었던 유일무이한 주요 사건들의 초자연성과 그 특별함을 과학이 측정 오류나 데이터 조작이라는 이유를 들어 평가 절하한다면 신앙의 권위를 훼손하는 모욕적인 태도로 간주한다.

 

정리하면, 과학은 법칙이라는 보편성의 관점으로 모든 사건의 개별성을 설명하려고 하고, 반대로 신앙은 특정한계시 사건이라는 개별성의 관점에서 모든 사건의 보편성을 설명하려고 시도한다. 이렇듯이 과학과 신앙은 서로 정반대의 접근법을 취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과학이 발전함에 따라 과학과 종교 간에 긴장과 갈등이 생겨나고 충돌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자명한 결과이다.

 

오늘날 과학과 신앙이 충돌할 경우 어느 쪽이 더 대중에게 설득력 있게 들리는지 알아보면, 과학 편에 서는 이가 압도적으로 많을 듯싶다. 과학은 누구나 확인 가능한 보편성을 지니고 이성적으로 접근하는 반면 신앙은 주요 계시 내용을 극소수만 경험하며 과학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비이성적으로 접근하기 때문이다.

 

 

창조 과학과 과학주의

 

과학과 신앙 간의 충돌에 대한 구체적인 예로 우주의 나이가 6천 년인지 아니면 138억 년인지, 또 인류의 발생이 아담과 하와의 창조 결과인지 아니면 생명이 출현한 뒤 점진적인 진화를 거쳐 이루어졌는지 등의 논쟁을 들 수 있다. 이 논쟁은 사실 신앙의 중요한 텍스트인 창세기의 내용이 자연 과학, 특히 우주론, 진화론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심각한 문제에 해당한다.

 

그렇지만 오늘날 성경을 글자 그대로 믿는 소수 근본주의 개신교 신자들을 제외한 대다수 신앙인은 이 문제를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듯한데, 이는 그들이 과학의 내용을 신앙의 내용보다 더욱 신뢰하는 오늘날의 사회 분위기 안에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하물며 성경을 글자 그대로 믿는 일부 근본주의 개신교 신자들조차도 이른바 ‘창조 과학’이라는 그들 나름의 과학적 접근법을 통해 자신들의 신앙 내용을 옹호해야만 하는 절박한 상황에 놓여 있다. ‘창조 과학’을 말하는 그들도 결국 ‘과학’이라고 부르는 방패를 이용해야만 자신들의 주장을 이어갈 수 있을 정도로 과학적 방법론이 오늘날 신앙의 내용에 근본적인 공격을 가하는 상황을 보여 주는 단적인 예이다.

 

인류 역사에서 점차 과학이 발전해감에 따라 신앙의 입지는 점차 약해져가는 양상을 보인다. 이러한 경향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한 사건이 나폴레옹 황제가 전 유럽을 정복하던 시기에 발생했다. 그 당시 프랑스 최고의 이론물리학자였던 라플라스가 저서 「천체역학」을 나폴레옹에게 헌정했을 때, 나폴레옹은 라플라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라플라스 경, 사람들이 말하길, 당신이 우주에 관해 방대한 책을 썼으면서도 창조주에 관한 이야기를 한마디도 쓰지 않았다고 하오.”

 

라플라스는 이렇게 답한다. 

 

“폐하, 저에게는 그러한 가설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바로 이 시점부터 ‘신 가설’(God hypothesis)이라는 개념이 무신론적 과학자 집단 안에서 크게 퍼지기 시작했다. 과학자 집단의 이러한 분위기에서 탄생한 하나의 사조가 ‘과학이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설명해 줄 수 있다.’는 신념, 바로 ‘과학주의’이다.

 

* 김도현 바오로 - 예수회 한국관구 소속 신부로 현재 서강대학교에서 통계물리학과 ‘과학과 종교’를 연구, 강의하고 있다.

 

[경향잡지, 2020년 2월호, 김도현 바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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