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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ㅣ세계 교회사
[한국] 하느님의 종 브뤼기에르 주교16: 파리외방전교회에서 제명되다

1686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4-05-16

[‘하느님의 종’ 브뤼기에르 주교] (16) 파리외방전교회에서 제명되다


“회칙 무시한 브뤼기에르 주교는 파리외방전교회 소속이 아닙니다”

 

 

파리외방전교회 신학교 지도 신부들은 브뤼기에르 주교를가 교황청 포교성성 소속 선교사로 단정하고 조선대목구 문제에 관여하지 않기로 했다. 파리외방전교회 본부 전경.

 

 

조선대목구는 포교성성 관할 선교지

 

1832년 10월 18일 마카오에 도착한 저는 파리외방전교회 대표부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다른 곳으로 이사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포교성성 대표부로 갔습니다. 포교성성 대표부 책임자 움피에레스 신부의 연락으로 바루델 신부에 이어 파리외방전교회 마카오 대표부장으로 부임한 르그레즈와(Pierre-Louis Legregeois, 1801~1866) 신부가 저를 데리러 왔습니다. 그는 제게 교황청에서 보낸 칙서들을 전해줬습니다. 그리고 파리외방전교회 신학교 지도자 신부들이 모든 선교지에 보낸 1832년 2월 공동 서한도 보여줬습니다.

 

이 편지에는 조선대목구 신설과 저의 조선 파견에 관한 파리외방전교회 본부의 입장이 정리돼 있었습니다. 먼저, 파리외방전교회 본부는 제가 초대 조선대목구장으로 임명됐지만, 조선대목구가 파리외방전교회에 위임된 것은 아니므로 포교성성 관할 선교지라고 분명히 했습니다. 둘째, 제가 샴대목구장 플로랑 주교님의 허락을 얻었다지만 조선 선교지를 맡는 것은 샴대목구만의 문제가 아니라 파리외방전교회 전체와 관련된 것이기에 관례에 따라 각 지역 대목구장 주교들뿐 아니라 모든 회원의 의견을 듣고 결정해야 하는데 제가 이를 무시하고 섣부르게 행동했다는 것입니다. 셋째, 파리외방전교회가 조선 선교지를 맡을 것이냐에 관해 샴과 퐁디세리는 찬성, 코친차이나에서는 레제로(Regereau) 신부 한 사람만 찬성, 통칭 서부는 반대, 사천은 유보 뜻을 표명했습니다. 넷째, 일단 포교성성이 결정을 내렸으니 따를 수밖에 없지만, 조선 선교 문제에 관한 회원들의 입장을 파악했으니 나중에 다시 포교성성이 제안해 온다면 조선대목구를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공동 서한에서도 언급되고 있지만 파리외방전교회 본부는 제가 관례를 어기고 교황청과 독단적으로 연락해 조선으로 가겠다고 한 것을 넘겨버릴 수 없는 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파리외방전교회 신학교 지도자들은 샴대목구장 플로랑 주교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의 항의 편지를 보냈습니다.

 

“브뤼기에르 주교님은 그것을 원하셨고, 주교님께서는 이를 승낙하셨습니다. 그래서 조선대목구장이 되신 것입니다. 포교성성은 언제나 그런 제안들을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 분명합니다. ⋯적어도 우리가 포교성성에 어떤 불만도 제기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우리가 결정을 수정해서는 안 된다면, 그것은 갑사 명의 주교님이 우리 회칙을 완전히 따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에 관해서는 우리 선교지들 전체에 보낸 공동 서한에서 상세하게 밝혔습니다. 만약, 유사한 사례가 잇따른다면, 그리고 우리 선교사들 각자가 더 큰 선익이라는 구실 아래에 스스로 그렇게 식별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되겠습니까?”(파리외방전교회 신학교 지도자 신부들이 1832년 3월 9일 자 샴대목구장 플로랑 주교에게 보낸 서한 중에서)

 

- 랑글루아 신부를 비롯한 파리외방전교회 신학교 지도자들은 브뤼기에르 주교의 조선 선교 자원을 회의 규칙과 관례를 어긴 독단 행동으로 단정하고 제명했다. 랑글루아 신부.

 

 

조선 선교지 독단 자원 동의할 수 없어

 

파리외방전교회 신학교 지도자 신부들은 제게도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얼마 전에 우리는 주교님에게 포교성성에서 보내온 꾸러미를 보냈습니다. 추기경 각하의 편지에 따르면 이 꾸러미에는 사도좌의 교서들이 들어있습니다. 이 교서들로 주교님은 조선대목구장에 임명되셨습니다. 그리고 대목구장 주교들에게 부여되는 권한들도 받으셨습니다. 포교성성에서는 주교님에게 산서 지방 출신의 중국인 사제 2명을 붙여주셨습니다.

 

그들은 나폴리 신학교에서 교육받았습니다. 그리고 마카오의 포교성성 대표부에서 이번 계획에 비용을 대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우리는 주교님의 새로운 선교지가 행복한 성공을 거두기를 마음속 깊이 기원합니다. ⋯우리는 주교님께서 이토록 위대하며 또한 이토록 위험한 계획에 선발되기를 원하시도록 이끈 그 열성을 칭송합니다. 그러나 정직하게 한 말씀 드리고자 하오니 허락해 주십시오. 우리는 이 새로운 선교지를 받아들이는 문제에 관해 우리 선교지 전체의 의향, 혹은 적어도 다수의 입장이 어떤지를 알아보기도 전에 주교님께서 포교성성에 편지를 보내 이 파견을 자원하고 나섰던 그 행동 방식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이 점에서는 주교님의 행동이 우리 전교회의 규칙과 관례들에 부합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다 끝난 일이 되었습니다. 포교성성이 결정을 내렸습니다. 우리는 그것에 순응할 따름이며, 주교님이 그 선교지를 받으신 결과로, 그리고 포교성성이 취한 조치들로 인해 주교님께서 우리 전교회의 회원이 아니게 되어 버린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애덕과 우애로 맺어진 관계의 끈들은 이러 일로 끊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다섯 선교지 그리고 파리 신학교로 이루어진 연합체와 주교님을 연결하였던 끈들은 더는 존속하지 않을 것입니다.”(파리외방전교회 신학교 지도자 신부들이 1832년 3월 12일 브뤼기에르 주교에게 보낸 편지에서)

 

파리외방전교회 본부가 저를 제명한 것입니다. 문제는 제가 파리외방전교회를 떠날 의사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제가 제명되면 신생 조선대목구의 앞날도 불투명해지고 맙니다. 조선대목구가 파리외방전교회의 관할 선교지로 위임된 것이 아니라 제 개인에게만 맡겨졌으며, 포교성성 직할 선교지로 남아 있게 된다면, 앞으로 후임 주교나 선교사는 누가 어디서 선발해 조선으로 보낼 것인지 아무런 대책이 없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샤스탕 신부가 저와 함께 조선으로 가게 된다면 파리외방전교회 내부에서 일종의 분파 행위로 오해할 소지마저 생기게 됐습니다.

 

그래서 저는 신생 조선대목구가 파리외방전교회의 관할 선교지로 받아들여지기를 원한다는 것을 알리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교황청 포교성성에 편지를 보냈습니다. “교황 성하께서 당신의 종을 조선으로 파견하시면서 이 선교지를 앞으로도 계속 우리 회에 맡겨주실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교황님께서 이 일에 관해 아무 결정도 하시지 않았다는 것을 제가 마카오에서 알게 됐을 때 참으로 비통한 심정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추기경님께서 당신 종의 간곡한 청원을 교황님께 올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신학교의 담당자들이 어느 프랑스인 사제들이라도 적합하다고 판단하면 그들을 이 선교지의 영적 선익에 이바지하도록 조선에 파견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되기를 진정으로 갈망합니다.”(브뤼기에르 주교가 1832년 11월 9일 교황청 포교성성 장관에게 보낸 편지에서)

 

- 신임 파리외방전교회 마카오 대표부장 르그레즈와 부는 마카오에 도착한 브뤼기에르 주교에게 1832년 2월 파리외방전교회 공동 서한과 신학교 지도 신부들의 편지를 전해주며 더는 브뤼기에르 주교가 파리외방전교회 소속이 아님을 통보했다. 르그레즈와 신부.

 

 

전교회 본부, 조선대목구 문제 관여 않기로

 

또 저를 해명하기 위해 파리외방전교회 본부에도 편지를 보냈습니다. “제가 로마에 편지를 쓴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저는 선교지의 주교들과 장상들에게도 편지를 보냈습니다. 아울러 그들에게 여러 선교지에서 일하고 있는 우리 동료들 모두에게 제 편지를 전해줄 것을 간청했고, 고르틴 명의 주교를 제외한 모두로부터 긍정적인 답변을 받았습니다. 시니트 주교는 아직 답장을 주지 않았으나 그가 조선 선교에 우호적이라는 것은 제가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제 생각을 (파리외방전교회 신학교) 랑글루아 신부에게 알렸고 우리 회 지도자들에게도 편지를 썼습니다.

 

그들 한 사람은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답장을 주었습니다. 어쨌든 저는 샴대목구장인 플로랑 주교님의 충고를 듣고 나서야 비로소 포교성성 장관 추기경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저는 플로랑 주교님에게 제 편지를 읽어주면서 뜻대로 적절하다고 판단되는 것을 덧붙이거나 삭제해 달라고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제가 포교성성에 편지를 썼다는 사실을 여러분에게 알리는 데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읽어달라고 간청도 했습니다. ⋯정말 유감입니다.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저는 무례했거나 도를 넘은 모든 말을 진심으로 취소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의도적이지 않았다는 것은 확실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래도 조선 사람들에게 목자로 파견된 이 사람의 실수 때문에 조선 교우들이 손해 보는 일이 없도록 해주십시오. 그들은 이미 더없이 불행한 상황인 만큼, 그들의 불행이 더욱 깊어지게 해서는 안 됩니다.”(브뤼기에르 주교가 1832년 11월 10일 마카오에서 파리외방전교회 본부 지도 신부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파리외방전교회 본부는 1832년 2월 공동 서한을 보낸 후 저의 편지를 받을 때까지 1년여 동안 같은 태도를 유지했습니다. 본부는 마카오 대표부장 르그레즈와 신부에게 보낸 1833년 1월 28일 공문을 통해 포르투갈 라지로회 출신인 남경 주교와 저 사이에서 중립적 태도를 보이라는 방침을 내렸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지금 포교성성에 속해 있으므로 움피에레스 신부와 함께 어려움을 제거하려고 노력할 것이라며 조선대목구 문제는 파리외방전교회와 상관없으니 나서지 말라고 지시했습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4년 5월 12일, 리길재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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