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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ㅣ세계 교회사
[한국] 광복절 특별기고: 역사의 짐과 기억의 치유

1050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19-08-11

[광복절 특별기고] ‘역사의 짐’과 ‘기억의 치유’


“참회 없었던 한일의 역사… 진정한 화해 위한 노력 필요하다”

 

 

오는 8월 15일은 74주년 광복절이다. 일제강점기로부터 해방된 광복의 기쁨과 의미를 되새기는 광복절이어야 하지만 올해는 국내외 상황이 사뭇 다르다. 우리 대법원이 일제 징용 피해자에 대한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놓자 일본은 우리나라에 경제 보복을 가하고 급기야 8월 2일에는 수출 우대조치 부여 국가목록인 ‘화이트 리스트’에서 한국을 배제하는 결정까지 내렸다. 

 

현재의 한일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한일관계의 향방을 한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일제강점의 역사와 과거사 청산 문제를 다시금 돌아보면서 우리가 참다운 ‘광복’(光復)을 맞이했는지 살펴보고 교회적 시각에서 한일관계 해법을 찾는 기고를 싣는다.

 

 

해방 후에도 끝나지 않은 일제의 무장

 

1945년 8월 15일,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한다는 일본 천황의 목소리가 방송을 타고 흘렀지만, 우리 민족이 그대로 독립을 얻은 것은 아니었다. 한반도를 분할 점령한다는 얄타회담의 결정대로 미국과 소련이 각각 한반도에 진주한 것이다. 하지(John R. Hodge) 중장의 미 24군단은 9월 8일에야 인천에 상륙할 수 있었는데, 이튿날 서울에 들어온 미군은 조선총독부에 걸려 있던 일장기를 내렸고 대신 성조기를 게양했다.

 

그런데 미군의 한반도 진입이 늦어지면서 남한 지역의 일본군은 상당 기간 무장을 유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항복을 선언한 8월 15일 이후, 그리고 미군이 상륙한 다음에도, 실제로 일본군과 일본 경찰은 한국인들에게 물리력을 행사했다. 이들은 미군 상륙을 환영하기 위한 한국인들의 행진을 향해 발포하기도 했는데, 당시 일본 경찰들은 일본인들의 재산을 지키고 있었고, 일본 군대는 ‘미군정’이라는 완장을 차고 거리를 활보했으며, ‘미군이 재가한 일본군 파견대’라고 쓴 트럭 역시 시내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더군다나 미군 지도부는 군정 초기, 조선총독 아베 노부유키를 유임시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군정을 시작하는 24군단 1만여 명의 병사 가운데는 당연히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인원이 없었는데, 미군은 통치의 편의를 위해서 총독부의 조직과 실무 인원을 유지하려고 한 것이다. 당시 미군 지도부는 한국인의 정서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으며, 따라서 이 시기 하지 사령관 명의로 발표된 포고문들을 보면, “주민들이 경솔하고 무분별한 행동을 한다면 의미 없이 인명을 잃고 아름다운 국토도 황폐돼 재건이 지체될 것입니다”라고 경고하는 등 남한 주민들에 대한 강압적인 표현이 자주 발견된다.

 

일제의 패망으로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대에 부풀었던 한국인들에게 미군정의 조치들은 큰 반감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일본인 고위 관리들까지 유임되는 양상이 전개되자 남한 각지에서는 미군정의 통치를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진다. 결국 한국인들의 강력한 반대에 직면하고 나서야 미군정은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했다. 하지 사령관은 9월 29일자 포고문에서 ‘아베 총독 및 각 국장이 파면됐고 미군정 하에서 서울 중앙정부가 개조(改組)됐다는 것’ 등 일본인 관리에 대한 처리 문제를 우선적으로 언급한다. 또한 ‘경기도는 현재 미군정 하에 있으며 일본인 경찰관이 차차 파면되고 그 대신 조선인 경찰관이 배치되고 있는 중’이라는 것을 치적으로 내세웠다. 미군정의 통치 조직에 대한 초기의 방향을 수정한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남한 주민들에게 “만사를 참고 또 참아라, 현상에 있어서 조선의 장래를 위해 제군이 할 수 있는 최대 공헌은 어디까지든지 만사를 참는 일일 것으로 생각한다”라고 ‘당부’하는 모습을 볼 때, 한국인에 대한 미군정의 시각에 근본적인 변화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6·25전쟁이 한창 진행 중인 1951년 9월 8일, 미국이 주도하는 연합국 측이 일본을 우방국으로 만들기 위해 샌프란치스코에서 강화 조약을 체결하고 있다. 여기서 미국은 일본에게 전쟁의 책임 문제를 철저히 따져 묻지 않았다. 출처 위키미디어커먼스.

 

 

참회의 기회 놓친 ‘미완의 해방’

 

1945년 우리 민족에게 주어진 미완의 해방은 일제강점기의 어두운 역사를 청산하지 못한 원죄를 잉태했다. 일제의 지배는 끝났지만 정의의 회복은 요원했으며, 친일 부역 문제에 대해서도 가해자의 참회로 시작하는 진정한 화해의 기회를 놓친 것이다. 사실 해방정국에서 좌익이나 공산주의 세력을 견제하는 데 주력했던 미군정에게 친일문제의 처리는 별다른 관심 사항이 아니었다. 하지 사령관의 참모로서 미군정 초기에 가장 큰 영향력을 가졌던 조지 윌리엄스(George Z. Williams)의 경우를 보더라도, 개신교 선교사 배경을 가졌던 그는 좌익을 철저히 배척했지만, 친일파에 대해서는 관대한 모습을 보인다. 고발당한 부역자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윌리엄스는 ‘겉으로는 일제에 협력했던 것처럼 보였을지 몰라도 비밀리에 저항하기도 했다’는 이들의 변명을 수용했다.

 

가해자가 진정으로 참회하지 못한, 그리고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한 이상한 ‘화해’는 국가적인 차원에서 동아시아의 전후 처리 과정에서도 발생했다. 동서 냉전이 전개되고 6·25전쟁까지 발발하자 미국은 전범국 일본을 처벌하고 철저히 변화시키려 했던 기존의 방침을 완전히 수정해 버린다. 공산주의 세력이 확대되는 극동에서 우방국을 만들기 위해 일본과의 평화협약을 서두르기 시작한 것이다. 마침내 6·25전쟁이 한창 진행 중인 1951년 9월 8일, 미국이 주도하는 연합국 측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일본과 강화조약을 체결한다. 여기서 미국은 일본에게 전쟁의 책임 문제를 철저히 따져 묻지 않았다. ‘자비를 입은’ 일본이 동아시아에서 자유 민주주의를 지키는 보루가 되기를 원했던 것이다.

 

 

진정한 화해의 초석 ‘기억의 치유’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1997년 세계 평화의 날 담화는 화해를 어렵게 만드는 ‘역사의 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역사는 쉽사리 벗어던질 수 없는 폭력과 분쟁의 무거운 짐을 안고 있습니다. 권력의 남용, 핍박, 전쟁은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안겨주었고, 이러한 슬픈 사건들의 원인은 먼 과거 속에 묻혀 버렸어도 그 파괴적인 후유증이 남아 가정, 인종 집단 그리고 모든 사람 사이에 두려움, 의혹, 증오, 분열을 일으키고 있습니다.”(제30차 세계 평화의 날 담화 3항) 이어서 담화는 과거의 죄악들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 하는 ‘기억의 치유’가 필요하다는 점을 역설한다. 역사 안에서 진실과 정의를 찾으려는 노력을 통해서만이 진정한 용서와 화해가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분쟁 당사자들 사이의 새로운 관계 정립을 이야기하는 이 담화는 “용서는 정의가 요구하는 배상의 필요성을 배제하지도 감소시키지도 않는다”는 사실도 적시하고 있다.(제30차 세계 평화의 날 담화 5항)

 

2014년 11월 한국과 일본 주교들이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을 찾아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게 위로의 뜻을 전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1965년 한일협정 이후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고 있는 한일관계 속에서 올해 광복절은 우리 국민들에게 그 의미가 더욱 심장하게 다가올 것이다. 일제강점기가 끝나고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참회가 없었던 ‘화해’, 진정으로 용서하지 못했던 한일의 역사가 새로운 대립의 상황을 가져온 것이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동아시아 역사 안에서의 정의와 반성의 문제는 우리 인류가 진정한 평화로 나아가는 길을 방해하고 있다. 

 

남북으로 갈라진 한반도, 아직 화해하지 못한 동아시아에서 우리 교회가 이 땅의 진정한 화해를 위해 더 간절히 노력했으면 좋겠다. 그리스도의 평화를 믿는 빛의 자녀인 신앙인들이 하느님의 정의와 진리가 드러나는 평화, 참회와 속죄가 이뤄지는 화해를 소망하면서 함께 기도하자. 

 

강주석 신부(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총무·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소장) - 그동안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가 주관하는 국제학술대회를 통해 한반도와 동북아시아 평화에 우리 교회가 기여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해 왔다. 현재 미국과 일본의 가톨릭교회와 긴밀하게 연대하고 있으며, 올해 10월에는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한 종교의 역할을 성찰하는 국제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2019년 8월 11일, 강주석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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