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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신학ㅣ사회윤리
[생명] 낙태죄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의 의미와 과제(사회 · 윤리적 측면)

1675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19-08-12

[알아볼까요] 낙태죄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의 의미와 과제(사회 · 윤리적 측면)

 

 

1. 인간 생명에 대한 비윤리적 행위

 

우리는 낙태가 무엇을 의미하고 있고 그 결과로 태아가 어떻게 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1953년 형법이 생긴 이래로 낙태죄 논쟁에서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문제 중 하나는 ‘낙태’ 행위 자체에 대한 도덕적 성찰입니다. 낙태 행위가 인간의 생명을 빼앗는 의도적 행위임을 알면서도 그 행위에 대한 도덕적 반성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이번 헌법재판소의 결정 이전까지 법적으로 태아의 생명권은 침해될 수 없는 권리로 인정되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법의 테두리 안에서 일 뿐, 우리 사회가 태아의 생명을 보호해왔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1973년 모자보건법으로 인해 낙태가 법적 정당성을 갖게 되었고, 출산 억제를 위한 정부의 가족계획사업(1961~1996)으로 장려되기까지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회적, 경제적 이유로 인한 낙태에 대해서는 암묵적으로 묵인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형법의 낙태죄로 인하여 처벌된 사람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과거에는 연간 200~250만 명, 지금은 약 100만 명 이상의 태아가 매년 목숨을 빼앗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1953년부터 지금까지 낙태로는 엄중하게 처벌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러한 우리의 현실은  도덕 불감증의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낙태죄에 대한 위헌 심판이 진행되고 있을 때, 대부분의 매스컴에서는 낙태죄로 인한 여성의 고통스러운 삶과 사회적 차별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루었습니다. 생물학적 부(父)와 가족의 냉대, 사회로부터 받는 차별, 그리고 극복하기 어려운 경제적 어려움을 임신한 여성 홀로 온전히 짊어지고 가야 하는 모습은 많은 사람에게 안타까움과 측은함을 느끼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여성의 자기결정권 보장에 동의하였습니다.

 

하지만 생명이 사라지는 태아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어떠한 방식으로 낙태 수술이 이루어지고 수술 후에 어떻게 처리되는지, 그리고 원하지 않은 아이를 어떻게 차별하고 대우하는지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너무 잔인하고 도저히 눈 뜨고 볼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태아의 생명이 어떻게 또 얼마나 많이 희생되는지 잘 모르고 있습니다.

 

윤리적 측면에서 교회가 낙태를 엄중하게 금지하는 이유는 “고의적 낙태는 어떤 수단으로 이루어지든지, 수정에서 출생에 이르는 인간 존재의 출발 단계에서 의도적이고 직접적으로 죽이는 행위”(생명의 복음 58항)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어떠한 행위가 생명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라면, 나아가 그 행위에 대해서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침묵하거나 무관심으로 대한다면, 그것은 “절대적이고 심각한 도덕적 불법이라는 의식이 개인의 양심과 사회 안에서 점차 사라져 가는”(생명의 복음 57항)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교회가 우려하는 내용입니다.

 

“누구도 태아의 죽음을 원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낙태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정당한 행위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법과 사회 인식의 개선을 위한 교육, 그리고 태아와 산모를 위한 제도 마련은 너무나 미흡합니다. 태아의 생명에 대해 누구도 책임을 묻지 않고 또 책임지려 하지 않는 현실에서 태아에 대한 인간의 자유와 권리는 방임(放任)과 남용(濫用)이며, 무죄한 생명에 대한 비인격적 폭력(暴力)입니다. 태아에 대한 우리의 행위는 합법적인 방법으로 그 생명을 빼앗는 데에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고, 태아와 태아의 생명을 선택한 여성과 가족을 존중하고 동행하는 데에 있습니다.

 

 

2. 삶의 질과 인간에 대한 존중

 

많은 사람이 낙태 문제에 있어서 ‘삶의 질’을 이야기합니다. 태아가 우생학적으로 문제가 있거나, 성폭력으로 인해 임신한 경우라면, 또 경제적으로 도저히 아이를 키울 수 없는 상황에서 갖게 된 태아라면, 태어난 이후 태아와 그 부모의 삶은 ‘불행할 것’이라고 단정합니다. 하지만 ‘2014년 생명과 가정에 관한 설문 조사 결과 보고서’에 의하면, 실제로 낙태를 한 주 된 이유의 대부분은 경제적 사정(신자 17.5%/비신자 26.4%)이나 우생학적 문제(신자 9.6%/비신자 9.2%), 또는 성폭력으로 인한 낙태가 아니라, ‘더 이상 자녀를 갖지 않기 위해서’(31.6%/비신자 28.2%)였습니다.

 

겉으로는 삶의 질을 이야기하지만, 실제로 사회, 경제적 이유가 낙태의 주된 원인이 아닌 것입니다. 실제로 낙태와 경제적 이유, 또는 삶의 질과의 연관 관계를 찾기는 어렵습니다. 인간 생명은 그 자체로 가치를 가지는 것이지, 결코 어떤 조건과 상황에 따라 그 가치가 평가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삶의 질은 경제적 상태를 묻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인간에 대한 인격적 태도를 말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낙태를 좋은 것으로 생각하고 기꺼이 하는 여성은 없습니다. 특히 장애아를 임신했을 경우 여성이 낙태를 원하지 않더라도 주변의 압력에 의해 낙태를 선택할 때가 많습니다. 그 압력은 태아와 여성에 대한 인격적 존중이 아니라 ‘차별’과 ‘무관심’ 그리고 ‘선입견’입니다. 모성은 언제나 무죄한 아이의 생명을 품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을 인격적으로 대하지 못하고 ‘적절한 인격 성숙과 진정한 인간관계’(사목헌장 6항)를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장애가 있는 아이들이 공동체 안에서 어울리지 못하고 공동체 밖으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아이들이 머물 곳은 우리 가까이에 있지 않습니다. 장애에 대한 우리의 차가운 시선과 선입견이 오히려 태아와 태아의 생명을 선택한 이들의 삶을 불행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태아를 포함하여 인간은 수많은 병이나 사고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알 수 없는 다양한 병이나 어떤 사고로 인해서 선천적으로, 그리고 후천적으로 장애를 갖게 되는 것이 인간입니다. 누구도 자신은 평생 장애를 갖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때 누군가 ‘삶의 질’을 이유로 그 사람의 건강과 생명을 판단한다면, 또 경제적 이유로 그 사람의 삶을 편견과 무관심으로 대한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는 “정의감이 상실되며, 모든 참된 인간 상호 간의 관계의 뿌리인 신뢰심이 흔들리게 됩니다.”(생명의 복음 66항)

 

어떠한 이유로도 태아의 생명과 태어난 후의 삶을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누구도 사회 경제적인 조건과 상황에 따라 한 사람의 본질적 가치를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인간 생명 존중은 모든 이들의 의무입니다. 인간의 이성도 인간 본성에 따라 그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인공유산 반대선언문 8항) 우리는 의무는 “이웃을 어떠한 예외도 없이 또 하나의 자신으로 여겨야 하고 무엇보다도 이웃의 생활을 고려하여 그 생활을 품위 있게 영위하는 데에 필요한 수단들을 보살펴주는 것”(사목헌장 27항)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삶의 질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라고 쉽게 판단하여 그 생명의 시작에서부터 살 가치가 없는 것으로 간주하고, 의도적으로 생명을 희생시키는 비윤리적 행위에 맞서야 합니다. 태아와 그의 부모를 존중하고 “그들의 상처를 치유하여 중재 역할을 하고 관계를 강화하여 ‘서로 남의 짐을 져주려고’(갈라 6,2) 하는 지향”(복음의 기쁨 67항)을 확고히 해야 합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9년 8월호, 유성현 베드로 신부(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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