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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신학ㅣ사회윤리
[생명] 가상대담: 여성의 몸은 성의 도구인가

1650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19-05-12

[가상대담] ‘여성의 몸은 성의 도구인가’


“여성을 목적 위한 수단으로 여기는 것은 폭력”

 

 

대담자 : 김아담, 박하와,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성 바오로 6세 교황

 

우리 사회에는 여성을 한 인격으로 보지 않는 풍조가 만연하다. 최근 한국 사회를 뒤흔든 강남 클럽 ‘버닝썬’ 논란을 비롯해 연예인들이 나눈 성폭력적 대화 내용, 고(故) 장자연 사건 등만 봐도 알 수 있다. 

 

여성의 몸을 성적 도구 혹은 사냥감으로 전락시키는 사회. 현대사회에 필요한 성윤리 의식에 대한 가르침을 찾기 위해 젊은 남녀 김아담, 박하와 그리고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가상대담을 진행했다. 김아담은 성에 대한 호기심이 왕성하지만 신앙인으로서 교회 가르침에 어디까지 따라야 하는지 고민하는 남성이다. 박하와는 정결을 강조하는 교회 가르침과 충돌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혼란스러워 하는 여성이다. 대담에는 성 바오로 6세 교황도 함께했다.

 

 

쾌락주의, 여성을 유희 대상으로 

 

가수 최OO: “살아 있는 여자(영상)를 보내 줘.”

김OO: “기절이니까 플래시 켜고 찍은 거지.”

정준영: “강간했네.”

 

- 박하와: 언론에 공개된 가수 정준영의 대화방 내용은 충격적입니다. 이 사건으로 정준영은 불법 촬영한 성관계 영상이나 사진 등을 카카오톡 대화방을 통해 지인들에게 공유한 혐의로 구속됐죠.

 

- 김아담: 같은 남성으로서 이런 사진이나 영상을 주변 사람들과 공유하는 행동은 이해가 안 됩니다. 유아적인 행동이죠. 여성을 두고 일종의 게임을 한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불법으로 촬영한 사진과 동영상이 ‘그래선 안 되는 범죄’가 아니라 ‘자랑스러운 승리의 상징’이 된 것이잖아요. 

 

-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하 요한 바오로 2세): 안타깝게도 쾌락주의 안에서 인간의 성(性)마저도 즐김과 소비의 대상으로 취급되고 있네요. 쉽게 말해 여성을 소중한 존재가 아니라 내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도구’로 대하는 것입니다. 하나의 ‘인격’이 아니라 쾌락을 위한 수단으로 바라보는 것이죠. 쾌락이 그 자체로 목적이 될 때, 성의 윤리성은 유희로 변하고 종종 일종의 게임처럼 여겨지게 됩니다. 하지만 쾌락이 사랑에 종속되기 위해서는 서로를 ‘인격’으로 바라보고 존중하는 자세가 바탕이 돼야 합니다.(카롤 보이티와(훗날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사랑과 책임」 3장 ‘인격과 정결’)

 

- 김아담: 쾌락이 사랑이 되기 위해서는 ‘인격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다는 말씀이시군요.

 

- 요한 바오로 2세: 그럼요. 우리 ‘몸’과 ‘영혼’은 인격을 구성하는 필수 요소예요. 특히 몸은 자신을 인격적으로 표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지요. 하지만 최근 한국 사회에서 벌어진 이슈들을 보면 젊은이들이 하느님께서 원래 인간에게 주신 ‘인격’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어요. 몸과 영혼이 따로 놀면서 결국 자기 파멸의 길로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부분을 조금 어려운 표현인 ‘위격들의 친교’ 행위로 설명할게요.

 

- 박하와: 위격들의 친교 행위요? 

 

- 요한 바오로 2세: 하느님 자녀인 우리 인간들의 위격적 결합(communion of persons)이 신들의 위격적 친교(communion of Persons)와 비슷하다는 의미입니다. 나아가 인간의 친교 행위는 인간의 출산과도 연결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담에게 하와를 만들어 주시며 ‘고독’을 통해 ‘일치’로 나아가게 합니다. 고독과 일치의 경험은 아담과 하와에게 창조의 신비와 ‘선물’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 줍니다. 좀 더 자세한 얘기는 뒤에서 합시다.(제2차 바티칸공의회 사목헌장 「기쁨과 희망」 24항 ‘하느님의 계획 안에 있는 인간 소명의 공동체적 특징’, 요한 바오로 2세 「몸의 신학」 TOB 9:3)

 

 

도덕성이 결여된 강간 문화 

 

- 박하와: 강남 클럽 ‘버닝썬’ 수사과정에서 공개된 대화방에는 “여자는? 잘 주는 애들로”라는 말이 나와요. 여성을 성적 도구로 여기는 단적인 사례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남성들이 성접대 문화를 공유하며 남성 연대를 구축하는 게 아닌가 싶은데요. 

 

- 김아담: 어느 정도 맞는 말입니다. 소위 ‘풀코스’ 접대를 하고 나면 다음날 그 이야기를 대화방에서 공유하기도 해요. 여성에 대한 외모 평가는 물론, 여성을 다루는 일종의 기술(?)을 자랑처럼 늘어놓기도 하죠. 

 

- 박하와: 주변에서 그런 접대 문화를 거절하기 힘들어서 괴롭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그곳에서 잘 어울리지 못하면 바보취급을 당한다고요.

 

- 요한 바오로 2세: 여성의 몸을 단순히 쾌락을 위한 수단으로 여기는 사례들이네요. 하나의 인격인 여성을 어떤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취급하는 것은 폭력을 가하는 것입니다. 이는 인간뿐 아니라 창조주 하느님도 그래서는 안 되는 행동입니다.(「사랑과 책임」 1장 ‘인격과 성적 충동’)

 

- 박하와: 장자연 사건만 봐도 그래요. 한국 사회에서 드라마나 영화의 주인공 자리 같은 대가를 매개로 여성의 몸이 소비된다는 이야기는 흔합니다.

 

- 요한 바오로 2세: 그래서 정욕과 욕망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정욕은 상대방을 마음대로 소유, 지배하고자 하며 성적 가치에만 관심을 집중합니다. 결국 그 안에 ‘빨려 들어감’으로써 온 심리적 에너지를 성적 가치에만 쏟게 하지요. 동물의 세계에서는 이러한 정욕이 별 문제 없지만, 인격의 세계에서는 도덕적 본성이 심각하게 훼손될 위험이 있습니다.(「사랑과 책임」 3장 ‘인격과 정결’)

 

- 박하와: 한국 영화를 보면 남성이 자신의 권력을 드러낼 때 룸살롱 장면이나 여성을 향한 성폭력적 장면이 어김없이 등장합니다. 리베카 솔릿은 자신의 저서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에서 강간 문화를 “강간이 만연한 환경, 미디어와 대중문화가 성폭력을 규범화하고 용인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으로 설명했습니다. 

 

- 성 바오로 6세 교황(이하 바오로 6세): 그래서 ‘정결’에 우호적인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대중매체와 SNS, 유튜브 등에서 우리의 감각을 흥분시키고 미풍약속을 해치는 모든 것과 온갖 종류의 포르노나 방탕한 공연물에 대해 정직하고 일치된 반응이 마땅히 일어나야 합니다. 학문적·예술적 필요성을 구실로 이러한 타락을 정당화하려는 것은 스스로의 자기 파괴적인 헛된 일이지요.(바오로 6세 회칙 「인간 생명」 22항 ‘정결에 우호적인 환경 조성’)

 

 

성적 자유 vs 인격적 만남 

 

- 김아담: 젊은이들이 점점 성에 대해 개방적으로 변해가고 있어요. 19금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가슴골이 깊게 파인 옷과 일명 꿀벅지가 드러나는 핫팬츠를 입고 흡사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행동을 합니다. 주로 섹슈얼한 여성의 몸이 소재가 됩니다. 웃음으로 선정적인 분위기를 포장하는 건데, 이런 것이 유머 코드로 통하는 사회입니다.

 

- 박하와: 남녀 모두 성적 자유를 주장하는 분위기죠. 사회 분위기가 그러니, 교회 내 청년들도 이를 하나의 자연스러운 현상처럼 받아들여요. 요즘 “정결을 지킨다”고 말하면 “답답하다”는 반응이 돌아올걸요? 아니면 “조선시대에서 왔냐”는 말을 들을 수도 있고요. 

 

- 요한 바오로 2세: 남녀가 서로에게 육체적인 매력을 느끼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과정입니다. 이러한 성욕, 즉 성적 충동은 인간이 타고난 자연스러운 욕구이자 열망의 방향이지요. 또 ‘성적 매력’을 느끼는 현상에서 서로가 ‘상호보완적’이며 서로를 완성시켜 준다는 사실을 더욱 분명하게 알게 되고요.(「사랑과 책임」 1장 ‘인격과 성적 충동’)

 

- 김아담: 그럼 사랑하는 연인이 서로에게 성적 매력을 느끼고 육체적 관계를 맺는 것도 자연스러운 과정 아닌가요? 사랑하면 더 가까워지고 싶잖아요. 

 

- 박하와: 맞아요. 그리고 요즘에는 연애하면 육체적인 관계가 당연히 동반돼야 한다는 시각이 지배적이에요. 일명 야동(야한 동영상)을 인터넷으로 쉽게 접하며 자란 청소년들도 육체적 관계의 문턱을 쉽게 넘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죠.

 

- 요한 바오로 2세: 성욕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그것은 단순한 욕망이에요. 사랑이 아니죠. 성욕은 ‘책임 있는 쾌락’이 될 때 사랑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사랑은 남성이 여성에게, 여성이 남성에게 깊이 헌신하고 전적으로 책임을 지는 태도를 기반으로 발전하지요.(「사랑과 책임」 3장 ‘인격과 정결’)

 

- 박하와: 진정한 사랑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말씀이신가요?

 

- 요한 바오로 2세: 그렇죠. 사랑이란 동물 세계와 달리 인간 세계의 특유한 현상입니다. 동물 세계에는 성적 본능이 작용할 뿐이죠. 하지만 우리의 ‘사랑’은 단순히 성적 충동의 심리적, 생리적 결정체에 불과한 것이 아닙니다. 앞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사랑을 결정적으로 형성하는 것은 결국 ‘인격 수준’에서 작용하는 ‘의지 활동’이지요.(「몸의 신학」 TOB 48:4)

 

 

피임(反姙), 그 무책임함에 대하여 

 

- 박하와: 피임은 임신만 하지 않으면 자유로운 육체적 관계를 맺어도 된다는 의미잖아요. 그렇다면 피임이 보편화되면서 여성의 몸, 나아가 인간의 성이 쾌락의 도구가 됐다고 볼 수 있을까요? 교황님께서는 사랑에는 책임이 따른다고 말씀하셨는데, 피임은 이와 반대되는 행동으로 보입니다. 

 

- 바오로 6세: 잘 지적했습니다. 인공 피임은 겉으로 보면 여성을 낙태의 위험에서 해방시키는 것 같지만, 사실은 여성을 단순히 ‘유희의 도구’로 여기게 합니다. 피임 행위가 습관이 된 남성을 떠올려 보세요. 그가 의도치 않게 점점 여성에 대한 존중을 잃어버리고, 더 이상 여성의 신체적·심리적 균형을 돌보지 않게 될까 걱정됩니다.(바오로 6세 회칙 「인간 생명」 17항) 

 

- 요한 바오로 2세: 우선 피임에 대해 본격적인 논의를 하기에 앞서 우리가 말하는 ‘인공적 피임’은 ‘반임’(反姙)을 말한다는 것을 전제로 합시다. 피임은 육체적 관계를 피하는 소극적 행위를 뜻하지만, 반임(反姙)은 인공기구나 약품을 써서 임신을 피하는 적극적 행위를 뜻합니다.

 

- 김아담: 많은 남성들이 임신을 피하기 위해 콘돔을 사용합니다. 그게 서로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피임은 아직 우리가 한 생명을 책임질 수 없다는 뜻이니까요. 그렇다고 피임을 하지 않고 육체적 관계를 맺는 것은 더욱 무책임한 행동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 박하와: 최근에는 여성들을 위한 피임약도 보편화됐어요. “나를 위한다면 물론 OOO”, “사랑도 완벽해야 하니까”라는 유명 피임약 광고를 보면 피임을 하는 것이 책임감 있는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죠. 산부인과 의사들은 “나중에 낙태하는 것보다 미리 피임약을 먹는 게 현명한 행동”이라면서 피임약을 권유하기도 한대요. 낙태하면 결국 여자의 몸에만 상처를 입으니까요. 

 

- 요한 바오로 2세: 많은 이들이 육체적 관계와 임신을 분리해서 생각하고 있군요. 하지만 그렇게 되면 피임은 결국 ‘죽음의 문화’가 되고 맙니다. 쉽게 생각해 봅시다. 피임에 실패할 경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온전히 가정을 이룰 수 없는 두 남녀 사이에서 탄생한 생명은 그들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없애야 하는 ‘적’이 되겠죠. 그들은 생명을 원한 적이 없으니까요. 그리고 낙태만이 결정적 해답이 되죠.(요한 바오로 2세 회칙 「생명의 복음」 13항)

 

 

우리의 몸, 서로를 위해 내어주는 ‘선물’

 

- 박하와: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는 인간의 몸이 창조 때부터 하느님의 축복을 받았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럼 하느님께서 주신 이 몸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까요? 

 

- 요한 바오로 2세: 우리의 몸은 상대를 위해 온전히 내어주는 ‘선물용’입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우선 ‘닮음’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남성과 여성이 서로 같지 않고 다르게 창조된 이유는 상대방에게 자신의 성(性)을 선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창세기에도 하느님께서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에게 닮은(알맞은) 협력자를 만들어 주겠다”고 말씀하시죠.

(「기쁨과 희망」 24항)

 

- 김아담: 그럼 ‘선사’의 대상이 꼭 한 명이어야 되는 건 아니겠네요? 

 

- 요한 바오로 2세: 그렇다고 할 수는 없어요. 가장 완전한 결합은 부부관계에서 이뤄집니다. 자기를 ‘온전히’ 내어주는 것은 생식력까지 전부를 내어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기 자신을 성실하게, 아낌없이 선사해 주지 않으면 자신을 완전히 발견할 수 없지요. 이 맥락에서 인공 피임은 ‘선사’하려는 자연 본성에 반하는 행위가 됩니다.

 

- 박하와: 이제야 교황님께서 “정결이란 바로 내면의 ‘투명함’”이라고 말씀하신 게 조금 이해가 됩니다.

 

- 김아담: 교황님 책을 보면서 “욕망과 감정은 ‘정결’을 통해 완성돼야 하는 사랑의 원석”이라는 설명이 흥미로웠습니다. 하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정결’을 강조하는 교회가 보수적이고 답답하다고 생각하기도 해요.

 

- 요한 바오로 2세: 어찌 보면 ‘정결’이 요즘 문화와 동떨어진 개념처럼 들릴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정결은 단순히 참으라는 말은 아니에요. 정결은 육체적인 특성에 집중하는 ‘흥분’과 상대방의 전체성에 집중하는 ‘감정’을 사랑으로 통합할 수 있도록 중재하지요. 너무 어렵죠? 쉽게 말해 부부가 절제를 통해 자신을 가장 자유롭게(임신에 대한 걱정이나 불안감 없이) 내어줄 때, 그 안에서 가장 큰 쾌락을 느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영적으로도 보다 열정적으로 만들고 부요하게 해 주죠!(「몸의 신학」 TOB 128-129)

 

- 김아담: 현대사회를 사는 젊은이들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 요한 바오로 2세: “여성의 몸은 성적 도구인가?”라는 물음에 “우리의 몸은 서로를 위한 선물”이라고 답하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몸의 언어’, 쉽게 말해 남녀의 모든 ‘육체적 애정표현’은 오직 출산의 잠재성을 보호함으로써만 표현될 수 있습니다. “영은 생명을 준다. 그러나 육은 아무 쓸모가 없다”(요한 6,63)는 성경 구절은 혼인을 향한 인간 몸의 소명을 보여 줍니다. 출산의 가능성을 열어 둬야 ‘몸의 언어’로 진리가 드러나게 되는 것이죠. 교회의 가르침과 세상의 가르침이 충돌할 때 이 점을 꼭 기억해 주길 바랍니다.

 

◆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특히 생전에 수요알현 시간을 활용해 전 세계 대중들에게 인간의 인격, 몸과 성(性), 혼인, 부부관계, 독신의 의미 등에 관해 가르치며, 우리 몸을 통해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계획을 새롭게 이해하고 바라보도록 힘썼다. 130여 주간 이어진 교황의 가르침은 이후 「몸의 신학」이라 불리고 있다.

 

◆ 성 바오로 6세 교황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마무리하고 가톨릭교회의 현대화를 이루며 많은 교황 문헌을 통해 세상 속 교회의 역할을 가르쳤다. 특히 50년 전 이미 회칙 「인간 생명」을 통해 인공 피임으로 여성들이 임신과 출산에서 자유로워지면 여러 윤리적인 문제가 발생한다고 예측했다.

 

[가톨릭신문, 2019년 5월 12일, 성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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