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철학 상담56: 철학상담의 해석학적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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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2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6-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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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준 신부의 철학 상담] (56) 철학상담의 해석학적 방법
자신 은폐하는 가면 벗고 참된 자기 이해 모색
철학상담은 자주 고단한 인생에 대한 ‘소크라테스적 해석학’에 비교된다. ‘산파술’로 명명되는 소크라테스적 대화법은 상대방이 스스로 자신의 무지를 깨닫고 진리를 발견하도록 돕는 철학적 대화를 말한다. 철학상담이 기본적으로 고단한 삶에 활력을 불어넣고, 삶을 도약시키는 소크라테스적 산파술에 기반한 철학적 대화를 모색한다면, 이때 문제가 되는 내담자의 삶은 부분이 아닌 전체의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할 해석학적 과제를 안고 있다. 내담자의 삶은 전체 맥락에서 이해하고 해석해야 할 텍스트와 같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프랑스의 철학자리쾨르(Paul Ricœur, 1913~2005)는 이미 인간을 이야기된 시간 속의 존재로 규정하고, 인간의 삶을 텍스트 이해로 환원시킨 바 있다. 여기서 텍스트란 글로 고정된 모든 담화를 의미한다. 이런 이유로 라베(Peter B. Raabe, 1949~)는 철학상담에서 해석학의 역할을 ‘내담자가 살아왔으며 또 현재 살고 있는 삶의 텍스트를 해석하거나 이해하기 위한 공감적 시도’라고 규정한다.
그렇다면 철학상담에서 해석학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문헌 해석을 위한 제반 규칙을 다루는 ‘해석의 기술’에서 출발한 해석학은 오늘날 인간 존재 방식으로서의 이해와 해석의 본질 및 구조를 탐구하는 철학의 한 분과 학문으로서의 ‘철학적 해석학’으로 발전했다. 철학적 해석학의 이해는 단순한 인식 차원의 개념이 아니라 인간 현존재를 규정하는 기본 개념으로서 실존 범주이자 진리가 현현되는 장이다.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는 인간의 이해가 필연적으로 이미 이해되고 규정된 ‘해석되어 있음’이라는 ‘해석학적 상황’과 맞물려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우리의 이해가 항상 규정된 앞선 이해, 즉 ‘선이해’ -가다머(Hans-Georg Gadamer, 1900~2002)에 의하면 ‘선입견’-에 기반하고 있음을 의미하는데, 하이데거에 의하면 이런 해석학적 상황이 공공적이며 평균적인 해석을 이끌면서 우리 자신의 고유하고 본래적인 존재 가능성을 차단한다. 문제는 사람들이 이런 공공성과 평균성에 매몰되어 자기 자신이 존재 가능과 관련하여 근본적으로 ‘무의 불안’ 앞에 놓여 있음을 제대로 자각하지 못하는 데 있다. 사실 자기 존재 가능에 대한 불안이야말로 자기 실존의 중요한 계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이미 앞서 이해되고 해석된 것에 익숙할 뿐 아니라 오히려 거기서 안정을 느끼며 불안을 회피한다. 그러나 이런 이해와 해석의 경계에 갇혀 있는 한 치유를 위한 자기 초월은 불가능하다.
이렇게 ‘해석되어 있음’의 해석학적 상황이 항상 규정된 앞선 이해로서 일상에서의 인간 현 존재의 자기규정을 이끄는 만큼, 철학상담의 과정에서 상담자와 내담자는 이에 주목하여 무엇보다 자신을 은폐하는 자기 은닉과 자기 위장의 가면을 벗고 참된 자기 이해와 존재 진리로 자유롭게 나갈 수 있는 길을 함께 모색해야 한다.
물론 고유하고 본래적인 존재 가능성을 향하여 그때마다 자기를 기투하는 일은 평균적인 해석에 길들여진 우리에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그 자체가 우리를 불안하게 만든다. 우리는 무한한 자유의 가능성 앞에 놓인 존재이지만, 결단의 순간은 사실 다른 모든 가능성이 ‘무’가 되는 순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가톨릭평화신문, 2026년 2월 8일, 박병준 신부(예수회, 서강대 신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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