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GOOD NEWS 자료실

검색
메뉴

검색

검색 닫기

검색

오늘의미사 (자) 2025년 4월 14일 (월)성주간 월요일이 여자를 그냥 놔두어라. 그리하여 내 장례 날을 위하여 이 기름을 간직하게 하여라.

영성ㅣ교육

sub_menu

강론자료
2025-04-13.....주님의 수난성지주일 다해

2542 이철희 [gold] 스크랩 2025-04-12

                                사순 제6주일 (주님의 수난성지주일) - 다해

이사야 50,4-7      필리피 2,6-11      루카 22,14-23,56

 2025. 4. 13.

 

주제 : 내 삶에 기쁨이 오게 하기

사람의 마음이 변하면 죽을 때가 가까웠다든가, 죽을 때가 가까우면 사람이 개과천선(改過遷善)한다는 소리가 있습니다. 두 가지 중에 어느 표현도 우리의 삶을 완벽하게 담았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사람은 극적인 순간을 맞이해야 삶의 태도가 변한다는 의미로 생각할 수는 있습니다. 산 사람에게는 죽거나 삶을 결정할 순간이 된다면 변하겠다는 얘기를 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준비하는 자세를 갖지 않고 산 사람에게 그 일은 언제 일어나는 일이겠습니까

 

오늘은 예수님의 수난(受難) 성지주일입니다. 삶의 바탕에는 예수님의 고통과 죽음을 의미하는 수난이 있으면서도, 겉으로는 사람들의 분위기에 따라 올리브 나뭇가지를 흔들며 우리에게 생명을 주실 하느님의 힘이 오셨다고, 사람들이 호산나를 외치면서 예수님을 구원자요, 구원을 가져오는 분으로 모신 날로 기억하는 오늘은 성지주일입니다. 물론 예수님을 구원자로 인정하고 소리친 사람들과 예수님을 죽이겠다고 결심하고 그 일을 행동으로 옮긴 사람들의 무리를 우리는 서로 다른 사람으로 대해야 하겠지만, 같은 히브리민족의 사람들이었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고, 그 두 가지 일은 짧은 시간의 차이를 두고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영원한 생명이 머무시는 방법이라고 알리신 목요일 밤, 주님의 만찬의 날에 성체성사를 세우기 전, 주일에 올리브산의 위에서 다윗성을 향하여 한 번도 사람을 태우지 않은 나귀에 앉아, 예수님은 예루살렘성에 들어가셨습니다. 그때 사람들은 하느님의 구원자가 자기들에게 다가온다고 최대한의 예우를 생각하며 환송을 올리고 환호의 소리를 질렀습니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라고 외치면서 말입니다.

 

오늘은 그 내용을 담은 복음으로 2개를 읽었습니다. 처음에 읽은 것은 예루살렘 입성에 관련된 루카복음에 나오는 환호와 기쁨의 내용이었고, 좀 더 길게 수난기로 읽은 루카복음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을 통하여 성체성사를 건립하시는 내용부터 시작하여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목요일과 금요일에 있었던 일을 전한 내용이었습니다.

 

예루살렘 입성에 관한 복음은 기쁨과 즐거움을 바탕으로 하는 내용이었지만, 두번째로 들은 예수님의 수난기를 전하는 루카복음의 내용은, 예수님께서 세우신 성체성사의 건립부터 제자가 배반한다는 예고, 그리고 예수님이 십자가형이 선언되는 내용, 그리고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이 죽음에 이르는 과정은 기쁜 일이 아닌, 비장함과 슬픔이 바탕에 깔린 내용이었습니다. <비장함... 슬프면서도 그 감정을 억눌러 씩씩하고 장함.>

 

하느님의 아들로서 세상에 오신 예수님은, 하느님께서 준비하신 축복을 사람들에게 전달하겠다고 애쓰셨는데, 사람은 마음이 드러내야 할 모습과 몸이 드러내는 행동을 다르게 한 것입니다. 당장은 하느님의 뜻을 실현하지 못한 예수님에게 손해가 있고, 피해는 온전히 예수님이 잘못한 것처럼 해석하는 모습이지만, 실제로 그 일은 예수님에게가 아니라 그 축복을 얻어서 하느님과 좋은 관계를 맺었어야 할 사람에게 손해가 된 일이라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안타깝지만, 사람은 한 가지 일이 시작되면 그 결과가 삶에 모습을 드러내기 전이라면 그 전체의 상황을 온전하게 깨닫지 못합니다. 그래서 반성하기도 하고, 후회도 하고, 마음을 돌리는 과정을 드러내기도 합니다만, 한번 일이 시작되면 처음으로 돌아가서 아무런 일도 시작되지 않았던 것과 같은 모습으로 돌아가지는 못하는 것이 사람이 드러내는 행동의 결과입니다. 계엄을 일으켰던, 대통령이었다는 사람이 자기가 한 행동으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우기는 억지춘향<억지스러운 행동을 비유적으로 이른 말/춘향이 억지로 무엇인가를 한다는 비상식적인 설정>의 품격은 어울리지 않는 일입니다.

 

오늘은 예수님을 세상의 구원자로 받아들인 히브리 백성의 환호를 기억하는 날입니다. 성체성사를 세우시고, 십자가의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 관한 말씀도 수난기에서 듣기는 했지만, 수난기의 일은 목요일과 금요일에 반복해서 말할 내용이기에, 예수님이 사셨던 때보다 후대에 사는 우리는 그 여러 가지 일들이 모두 일어났고 그 일들의 의미도 아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그 일을 이 시간에 생각해야 하는 일은 아닙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결과를 생각한다면, 현실의 우리 삶에서부터 올바르게 행동하고 진리를 실천할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삶에 의미가 있는 좋은 일은 남이 만들어서 나에게 주지 않습니다. 나의 삶에 좋은 의미가 담긴 것으로 다가오는 좋은 일과 그 결과는 실제로 내가 만들어야 하는 일입니다.

 

개인의 행동에 따라서 달라질 일이 되겠지만,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려는 구원의 결실이 내 삶에 좋은 열매로 다가오게 하는 방법을 우리는 실천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나의 삶을 기쁘게 만들 좋은 일은 내가 해야 하는 법입니다. 좋은 일이 쉬운 방법으로 나에게 오지 않는다고 해도, 포기하는 마음이나 생각이 없이 성실하게 살아야 할 일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0 32 0

추천  0

TAG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로그인후 등록 가능합니다.

0 / 500

이미지첨부 등록

더보기
리스트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