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성] 영성의 샘: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1) 두려움의 길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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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39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5-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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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의 샘]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1) ‘두려움’의 길을 가다
새로운 한 해의 시작입니다. ‘새로움’이라는 시작은 언제나 우리에게 기대와 설렘으로 다가옵니다. 실패하고 포기한 과거의 모습에서 변화되어 가는 나를 기대합니다. 힘들고 어려웠던 삶이 조금은 나아지길 바랍니다. 복잡하고 미묘했던 감정들 속에서 갈등하고, 오해했던 미움이 사라지길 기도합니다. 매일 똑같은 삶의 지루함에서 특별하고 행복한 만남과 사랑을 찾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희망’을 품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그 희망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두려움과 떨림으로 상쇄되어 갑니다. 아무도 가지 않았던 길, 아무것도 보이지 않은 것 같은 어둠 속으로 나 혼자 나서야 하고, 한 걸음 내디뎌야 한다는 사실은 기대와 설렘보다는 두려움과 떨림이 더욱 커집니다. ‘어차피’라는 한마디로 표현되는 나에 대한 불신은 시도조차 하지 않고 미리 포기해 버리는 비겁함으로 나를 빠져들게 합니다. 자신에 대한 기대는 걱정과 우려로, 할 수 있다는 확신은 주저함과 의심으로 바뀝니다. 희망을 꿈꾸지만 내 앞에 놓인 현실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만큼 비참하고, 엉망입니다. 무엇을 희망하며,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 나는 어떻게 살아갈까요?
희망을 되살리는 희년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2025년 올해 정기 희년을 선포하시며 ‘희망’에 대해서 이야기하십니다.
Spes non cofundit.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로마 5,5). 바오로 사도는 희망의 영 안에서 이 격려의 말씀을 로마 그리스도인 공동체에 전하였습니다. 오랜 전통에 따라 교황이 25년마다 선포하는 희년 가운데 하나인 다가오는 희년의 핵심 메시지는 희망입니다. 저는 이 성년(聖年)을 체험하기 위하여 로마를 방문할 모든 희망의 순례자, 그리고 베드로 사도와 바오로 사도의 도시를 찾아올 수 없지만 저마다 지역 교회에서 희년을 경축할 그 밖의 모든 사람을 떠올려 봅니다. 모든 이에게 이 희년이 우리 구원의 “문”(요한 10,7.9 참조)이신 주 예수님과 참되고 인격적인 만남을 가지는 때가 되기를 빕니다. 교회의 사명은 “우리의 희망”(1티모 1,1)이신 주 예수님을 언제 어디서나 모든 이에게 선포하는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2025년 정기 희년 선포 칙서 1항>
교황님께서는 이 칙서에서 희망이 보이지 않는 현실에 대해서 이야기하십니다. 세계 곳곳에서 끊이지 않는 전쟁으로 많은 민족이 잔혹한 폭력의 희생양이 되어갑니다. 그들의 절박한 호소는 세계 지도자들에게 어떠한 동기도 부여하지 못하고 자국의 이익에만 골몰합니다. 또한 생명을 전달하려는 원의가 상실되어 많은 나라에서 출산율은 갈수록 떨어집니다. 가정과 병원에 있는 많은 병자들, 보장되지 않는 미래에 직면하면서 꿈을 잃어가는 젊은이들, 더 나은 삶을 위해서 고향을 뒤로하고 떠난 이주민들은 망명자로, 실향민으로, 난민으로 전락하여 버립니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이 세상에 교황님께서는 이 희년이 우리 모두에게 희망을 되살릴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희망하기 위해 우리는 어떤 삶의 자세로 살아가야 할까요? 희년을 살아가야만 하는 우리는 무엇을 고민하며, 어디를 바라보며 살아가야 할까요? 희망을 품기조차 두려운 우리의 삶들을 어찌 바라보아야 할까요?
걱정과 두려움 앞에서
우리는 희망의 가장 탁월한 증언을 하느님의 어머니 마리아에게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복되신 동정녀 안에서 희망이 순진한 낙관주의가 아니라 삶의 현실 한가운데에 있는 은총의 선물임을 보게 됩니다(‘희년 선포 칙서’, 24항). 그중에서도 우리는 걱정과 두려움 앞에서도 희망의 순례를 떠나셨던 성모님의 삶을 바라봅니다. 성모님께서는 가브리엘 천사를 통하여 예수님의 잉태 소식을 접한 후(루카 1,26-38), 길을 떠나십니다(루카 1,39). 자신이 원하지도, 생각하지도 않았던 일이 자신에게 일어났고, 그 무겁고 힘든 십자가를 짊어지고 성모님은 어쩌면 두려움과 떨림으로 그 길에 첫발을 내딛으셨는지도 모릅니다. 그 길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나약하고 어린 여인의 몸으로, 뱃속에서는 태아를 품고, 홀로 어떠한 위험이 있을지도 모르는 머나먼 길 위로, 가슴 한쪽에는 큰 돌덩어리를 품은 채 성모님은 길을 나섭니다.
하지만 그 두려움과 떨림 앞에서도 가질 수 있었던 용기의 근원은 하느님이셨습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라는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의탁이 한 걸음 나아가게 하는 힘이었을 것입니다. 힐라리오 성인은 두려움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두려움이란 인간의 나약성이 자기가 겪고 싶지 않은 것을 겪게 될 것을 무서워할 때 갖는 공포심이다. 이 두려움은 학습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나약성에서 온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두려워해야 하는지 배우지 않는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사물 그 자체가 우리 마음속에 공포심을 일으킨다.”
두려움을 이겨내는 방법은 어쩌면 자신의 나약성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하는지 모릅니다. 나의 약함과 나의 죄스러움을 인정하면서 하느님의 위대함과 하느님의 강함을 믿고 의지하고 신뢰하는 것이 길을 나서는 우리의 마음가짐이 되어야 합니다. 성모님의 마음도 그런 의지와 신뢰의 마음이었습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어디에든 계시며, 그 하느님께서 언제나 자신을 보호하고 지켜주실 것이라는 확신이 없다면 내딛기 어려운 발걸음입니다.
또한 그 발걸음의 마지막에는 엘리사벳이 있었습니다(루카 1,40). 같은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여인, 또한 같은 확신과 믿음으로 먼저 살아왔고 함께 걸어갈 수 있는 이를 두려움의 여정 안에서 만납니다. 그리고 그 만남 속에서 위로받고 용기를 냅니다(루카 1,46-56 참조). 그 확신과 믿음, 위로와 용기를 통해서 하느님의 희망을 품습니다.
지금 우리는 새로움을 시작하려 합니다. 새로운 한 해를 시작했고 새로운 만남과 새로운 관계를, 그리고 새로운 환경과 새로운 인연을 시작합니다. 그 새로움 속에 찾아오는 두려움과 떨림을 성모마리아의 희망으로 살아가길 기도합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더 힘들어지고 더 많은 고민으로 삶을 살아가더라도 주님이신 예수님께서 그 길을 함께 걸어가고 계심을 잊지 않으려 합니다. 나의 능력이 아닌 하느님의 강함으로 그 어둠을 이겨냅니다. 또한 그 길을 나 혼자 걷고 있는 것이 아님을, 아니 그 길을 혼자 걷지 않도록 누군가를 내버려두지 않았으면 합니다. 기도로, 그리고 삶으로, 두렵지 않게 외롭지 않게 그 길을 그들과 함께 걸어가길 기도합니다.
[성모님의 군단, 2025년 1월호, 최종훈 토마스 신부(가톨릭목포성지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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