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02-02.....주님을 봉헌한 축일
-
2529 이철희 [gold] 스크랩 2025-02-01
-
주님을 봉헌한 축일 [0202]
말라키 3,1-4 히브리 2,14-18 루카 2,22-40
2025. 2. 2. (주일)
주제 : 하느님께 바치는 봉헌의 의미
오늘은 예수님께서 세상에 태어나신 날로 기억하는 성탄대축일부터 셈하여 40일(7일+31일+2일)로 셈하는 날이고,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님을 부모가 성전에서 봉헌한 일을 기억하는 주님의 봉헌대축일입니다. 또한 아들을 세상에 나은 어머니 마리아가 다른 사람들의 앞에 기쁜 모습을 드러내도 괜찮은 날이라고 구약성경의 레위기가 기록한 말씀에 따라, 놀라운 기쁨을 드러내는 정결례의 축제일로, 교회의 용어로는 축성생활의 날로 기쁨을 나누는 날입니다. (교중미사에 할 일입니다만, 미사를 바치는 제단에서 1년간 사용할 초를 축성하는 예절도 있습니다.)
누구든지 사람이 자기의 모습을 다른 사람들에게 기쁨을 간직한 사람으로, 또한 겸손한 모습으로 드러내는 일은 훌륭한 일입니다. 내 얼굴에서 두려움과 걱정이 사라지고, 하느님께서 나에게 기쁨의 기름을 바르셨다고 내 모습으로 다른 사람에게 기쁨을 드러내고 축하하는 소리를 듣는 일은 큰 기쁨의 하나입니다.
오늘 예수님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율법을 지키는 사람으로서, 세상에 태어난 첫 아들을 성전에 봉헌했다는 축제일에 내가 갖거나 드러내야 할 삶의 모습은 무엇이라고 생각하겠습니까 세상의 삶에서 만나는 모든 것은 하느님의 것이니, 내 것을 주장하지 말고 무조건 하느님의 앞에 내어놓아야 한다는 뜻일까요 신앙을 중심으로 우리의 삶을 해석하면 그러한 모습을 강조할 수는 있지만, 실제로 세상에서 그러한 마음과 생각으로 충실하게 사는 사람은 생각보다 찾기가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삶의 모든 일을 하느님의 뜻을 대하는 고귀한 자세보다는 ‘세상에서 내가 하는 노력과 그 결과로 생긴 것은 모두 내 것이라고 생각하기가 쉬운 일’은 우리가 쉽사리 만나는 일입니다. 내가 삶에서 만나는 모든 것은 내 것이라고 여긴다면, 그 가운데서 어떤 것을 구별하여 하느님의 앞에 겸손하고 올바르게 내놓겠습니까
세상에서 내 삶에 찾아오는 모든 것을 내 것이라고 여기기가 쉬운 사람으로서 하느님의 앞에 무엇을 바치면 나는 세상에서 그로 인한 정당한 값을 돌려받을까요 이러한 질문에 따라 우리가 생각하자면, 우리가 하는 대답은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영원한 생명’을 말할 수도 있고, ‘세상의 삶에 내가 필요하다고 여기는 건강’이나 ‘돈’을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 대가를 상상하면서 내가 무엇인가를 하느님께 바쳤는데, 내가 바라던 것이 나에게 오지 않는다면 사람은 다음 시간에 어떻게 행동하겠습니까
예수님이 세상에 태어난 지, 40일이 지나서 첫아들을 성전에서 봉헌하는 봉헌식을 했을 때, 어머니 마리아는 시메온이라는 예언자에게서 힘에 겨운 소리를 들어야 했습니다. 시메온은 ‘아기가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한 반대를 일으키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으며, 그래서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질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이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시메온은 하느님의 뜻을 실천한 예언자라서 그가 가진 권위도 컸겠지만, 보통의 사람이라면 예언자에게서나 신앙을 우선으로 산다고 하는 사람에게서 그렇게 힘든 소리를 들을 때, 아무런 불만이나 아쉬움도 없이 참을 사람은 얼마나 있겠습니까 그래서 성모님과 우리가 드러내는 삶의 자세와 그 자세에 따른 결과는 완전히 다를 수도 있다고 할 것입니다. 어머니인 마리아가 시메온 예언자에게서 받아들이기가 힘든 소리를 말하던 그 자리에 있던 ‘한나라는 나이가 많았다고 여인’도 사람들에게 예수님에 관한 소식을 전했다고 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삶에 찾아오시고, 우리가 하느님의 앞에 다가설 때 가져야 하는 올바른 태도는 무엇이라고 말하겠습니까
오늘 첫째 독서로 들은 말라키 예언서의 말씀은 우리가 기꺼운 소리로 듣기가 어려운 말씀입니다. 하느님의 사자가 당신의 사명을 간직하고 우리에게 찾아왔는데, 사람의 삶을 무조건 격려하고 사람이 드러내는 삶의 자세가 무조건 옳다고 말하지는 않는다는 말씀을 들을 때 더 안타까울 것입니다. 말라키 예언자가 활동한 때는, 히브리민족에게 희망이라고는 없던 때였습니다. 바빌론 제국에서 멸망하고 400년쯤이 지난 후, 알렉산더 제국이 힘을 떨치던 때이며, 예수님이 세상에 나시기 150년 전쯤의 시간을 배경으로 합니다. 독립을 생각했을 것이고, 하느님의 힘이 자기들의 삶에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원하던 때였지만, 실제로 역사는 그때로부터 더 오랜 시간이 지나야만 자기들이 바라든 일을 체험하게 됩니다.
내 삶에 힘겨운 일이 일어난다는 시간은 하느님의 도움을 간절히 바란다는 의미도 됩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이루신 일을 우리가 똑같이 한다는 보장은 없지만, 그 본보기를 잘 배워서 우리도 실천하도록 해야 할 일입니다. ‘하느님, 저희의 삶으로 하느님의 영광을 높이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추천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