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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철학ㅣ사상
인간학 칼럼: 아름다움 - 심미적 존재

512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4-09-10

[인간학 칼럼] 아름다움 – 심미적 존재

 

 

우리는 본능적으로 아름다운 것을 좋아합니다. 아름다운 노래, 아름다운 꽃 등, 심지어 사람조차 아름답기를 원합니다. 아름다운 것을 찾는 마음은 인간 본성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런데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진화생물학에서는 생존에 유리한 형질이 아름다움의 토대라고 말합니다. 예술가들은 아름다운 예술의 기준을 만들고, 거기에 미치지 못하면 추하다고 합니다. 고급 예술과 고전 예술 작품이 지닌 탁월함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테지요. 과연 아름다움에 대한 이런 기준은 타당할까요?

 

아름다움을 말하는 것은 사람입니다. 사람은 생리적으로 아름다움을 느끼기도 하지만, 마음을 통해 아름다움을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이 마음은 생리적 차원을 넘어 문화적이며 의미론적입니다. 그러니 아름다움은 문화적으로 결정된다고 말해도 좋습니다. 진화생물학적 인간학은 문화를 잘못 이해하기 때문에 판단에 많은 오류가 있습니다. 물론 문화를 공유하기에 아름다움이나 예술에 대한 보편적 느낌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 모두가 절대적인 것은 아닙니다. 그 모두는 시대와 문화에 따라 변하기도 하고, 그때마다 다르게 형성되기도 합니다. 이는 예술사를 돌아보면 금방 확인할 수 있지요.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은 몸과 마음에서 시작되지만, 우리가 지닌 의미의 터전을 벗어나 결정되지는 않습니다. 사람은 자연적 조건과 문화적 토대의 상호작용을 통해 사람으로 존재하게 됩니다. 아름다움 역시 그러합니다. 인간의 마음과 느낌은 몸이라는 보편성 안에서 형성되지만, 그럼에도 그때마다의 고유한 문화적 토대를 벗어나 있지도 않습니다. 이것이 인간학의 동일성과 차이 원리입니다. 같은 인간이기에 우리는 동일성을 지니지만, 그럼에도 나만의 고유함에서 오는 차이를 지닙니다. 예술은 아름다움의 동일성을 차이로 만들어냅니다. 차이의 아름다움이지요.

 

철학은 언제나 아름다움을 진리 및 선(善, 좋음)과 연관하여 논의합니다. 참됨과 좋음은 그 본성 때문에 자체로 아름답습니다. 그래서 아름다움은 참됨과 좋음에서 나온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은 참되고 좋은 것이지요. 가짜 꽃이 초라하게 보이고, 표절 예술과 진부한 예술이 아름답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사람이 아름다움을 느끼고 아름다움을 만드는 것은 우리 안에 참됨과 좋음에 대한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아름다운 것도 본성적으로 이런 특성을 가꾸고 지켜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름다운 인생은 고난이 없거나 부자였기 때문이 아니라, 그 안에 참됨과 좋음을 간직하기에 그러합니다. 아름다움을 찾는 것이 사람의 본성이라면 사람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존재일 수밖에 없지요. 꽃보다 사람이 아름답다고 말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습니다. 올곧음과 참됨, 정의와 열정, 이웃을 향한 희생은 물론, 자기 절제가 뛰어난 사람을 아름답다고 말하지요.

 

철학에서는 “예술이 구원과 해방을 준다.”고 말합니다. 이 말의 의미는 아름다움을 느끼고 아름다움을 만드는 그 마음이 우리를 온갖 억압과 구속, 무지와 야만의 어두움에서 벗어나게 해준다는 뜻입니다. 야만이 넘치는 곳에서의 예술을 하고, 고통받고 죽어가는 이들을 외면하지 못하고 기꺼이 함께하려는 것은 아름다움에 대한 마음 때문입니다. 인간은 아름다움 자체, 심

미적 존재입니다.

 

[2024년 9월 8일(나해) 연중 제23주일 서울주보 7면, 신승환 스테파노(가톨릭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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