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성] 성인의 삶에 깃든 말씀: 야훼 신앙을 충실히 지킨 엘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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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5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18-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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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의 삶에 깃든 말씀] 야훼 신앙을 충실히 지킨 엘리야
엘리야는 바알 사제들과 경합하는 사건(1열왕 18장 참조)을 통해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예언자로 자리 잡았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은 종교 혼합주의에 빠져, 자신을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해방시키고 약속의 땅을 선물해 주신 계약의 하느님을 잊은 채 가나안 사람들이 믿던 풍요의 신 바알을 숭배하고 있었습니다. 사렙타에서 과부를 통해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하면서 용기 백배한 엘리야는 아합 임금과 담판을 벌였습니다. 이런 배경을 바탕으로 카르멜 산에서 엘리야가 바알 예언자들과 겨룬 이야기와 가뭄이 끝나는 이야기(1열왕 18,20-46 참조)를 함께 묵상하겠습니다.
엘리야와 바알 예언자들의 경합
엘리야는 450명이나 되는 바알 예언자들과 경합하기에 앞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바알을 섬기지 말고 야훼 하느님을 믿는 본래의 신앙으로 돌아가라고 촉구합니다(1열왕 18,21 참조). 그는 야훼 하느님과 바알을 동시에 섬길 수 없기에 회심해야 한다고 경고합니다.
이제 경합이 시작됩니다. 수많은 바알 사제가 춤을 추고 칼과 창으로 스스로를 찌르며 온종일 바알을 불러 댑니다. 그러나 바알은 그들의 외침을 전혀 듣지 못하고 응답하지도 못합니다. 반면 엘리야는 먼저 이스라엘 백성을 자기 주위로 부르고, 그들 앞에서 열두 지파를 상징하는 열두 개의 돌로 무너진 주님의 제단을 고쳐 쌓습니다. 장작 위에 황소를 토막 내어 올려놓고 물을 세 번이나 흠뻑 부은 다음 야훼 하느님께 제물을 불살라 달라고 청합니다. 그러자 주님의 불길이 내려와 순식간에 제물을 살라버리고 맙니다.
그제야 온 이스라엘 백성은 “주님(야훼)이야말로 하느님”(1열왕 18,39)이시라고 고백하며 야훼 하느님에 대한 신앙을 회복하게 됩니다. 그 후 엘리야는 모든 바알 사제를 붙잡아 키손천에서 죽입니다. 이로써 엘리야는 우상 숭배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이 자기 잘못을 대면하고 계약의 하느님께 돌아와 그분과의 관계를 회복하게 합니다.
1열왕 18,41-46은 이스라엘의 우상 숭배로 시작된 가뭄의 저주가 풀리는 과정을 전해 줍니다. 여기서도 엘리야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는 카르멜 산에서 양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고 부복한 채 주님께 중재 기도를 드립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회심을 보신 주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어 주십니다.
교부들의 묵상
1열왕 18장의 엘리야 이야기에 대해 초대 교회 교부들은 크게 ‘영성적-상징적 묵상’과 ‘성사적-신비 교육적 묵상’을 제시했습니다. 우선 교부들은 가뭄으로 죽어 가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하기 위해 하느님께서 엘리야를 그들 가운데 파견하신 것이 근본적으로는 그분의 자비에서 유래한다고 보았습니다. 크리소스토모는 해산하는 여인이 고통 중에 아기를 기다리듯, 주님께서 죄인들과 화해하기를 서두르셨다고 했습니다. 또 교부들은 죄에 얽매인 인류에게 구원 경륜을 드러내신 하느님께 온전히 순명한 사람, 구원을 중개한 사람 엘리야의 위상을 언급했습니다.
나아가 교부들은 1열왕 18장의 이야기를 다른 성경 구절과 연관하여 폭넓게 묵상하기를 권했습니다. 예를 들어, 바알 숭배를 조장한 아합 임금을 엘리야가 비난하는 부분은 파라오를 비난한 모세와 아론의 이야기(탈출 6,29-11,10 참조)와 함께 묵상하기를 권했고, 카르멜 산에서 불로 제물을 사르던 엘리야의 모습은 아브라함과 야훼 하느님의 계약 체결(창세 15,1-18 참조), 골고타 언덕의 십자가 위에서 인류 구원을 위해 희생 제물이 되신 예수님과 연관 지어 묵상하기를 권했습니다. 또 제물을 사르던 ‘불’을 예수님께서 세상에 가져오기를 바라신 ‘불’(루카 12,49), 오순절 때 임한 ‘성령’(사도 2,3 참조)과 연결 지어 보도록 하였습니다. 엘리야의 중재 기도를 통해 가뭄을 해소하는 ‘비’가 내린 것은 새로운 창조 사건으로 해석했습니다.
반면 1열왕 18장을 성사적-신비 교육적 차원에서 해석하고자 한 암브로시오는, 1열왕 18장에 나오는 엘리야의 희생 제사를 세례성사의 예형으로 보았습니다. 그는 제물과 장작에 항아리로 물을 세 번 부은 행위를 세례와 연관지었으며, 시로의 테오도로는 그것이 삼위일체를 상징한다고 보았습니다.
가르멜 영성의 전통에 따른 묵상
가르멜 수도회는 오랫동안 1열왕 18장 가운데 41-44절에 집중하여 신비적 · 마리아적 차원과 카르멜 산이 상징하는 가치를 묵상하고 전승했습니다. 《초기 가르멜 수도승들의 규범》 4권 1-4장에서 제시된 1열왕 18,41-44에 대한 해석에 따르면, 하느님께서는 카르멜 산에서 엘리야에게 동정 마리아의 태중에 잉태되신 성자의 강생의 신비를 계시하십니다. 또 엘리야의 중재 기도 후에 나타난 ‘구름’은 동정 마리아를 상징합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전합니다. “작은 구름이 바다에서 일었는데, 그것은 동정 성모께서 죄의 무게로 인해 무겁고 왜곡된 인류로부터 탄생하신 것을 뜻한다. 그 구름을 ‘작은 구름’이라 한 것은 동정 마리아의 겸손을 상기시켜 준다. 또한 그 구름은 ‘감미로운’ 구름인데, 이는 동정 성모께서 하느님의 현존, 하느님의 은총으로 가득하셨기 때문이다.”
엘리야는 바닷가에 나가 비구름이 몰려오는지 확인하도록 제자를 일곱 번 파견합니다. 이 규범서에 따르면, ‘일곱 번’은 구원 역사의 일곱 단계, ‘바다’는 죄로 물든 인류를 상징합니다. 그가 비구름이 오는지 살펴보라고 한 것은 인류 역사에서 성자가 강생하시는 표징을 찾는 모습에 비견됩니다. 이 모든 일은 ‘기도’라고 하는 전체 맥락에서 일어납니다. 이러한 해석에 힘입어 우리는 엘리야가 수행한 예언자의 소명을 이해할 수 있고 그를 ‘신비가’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는 끊임없이 주님께 기도하며 그분의 말씀에 귀 기울였습니다. 하느님 말씀의 씨앗 속에서 그분의 현존에 대한 징표를 발견할 줄 알았습니다.
중세 가르멜 수도자들에게 ‘카르멜 산’은 엘리야 예언자의 삶과 연관된 다양한 기억을 상기시키는 곳이었습니다. 그들은 엘리야가 우상 숭배를 척결한 일, 야훼 하느님을 향한 신앙을 쇄신한 일, ‘비’로 상징되는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이 천상에서 내리도록 줄곧 기도한 일에 주목했습니다. 그래서 중세 가르멜 회원 바콘토르페(J. Baconthorpe)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카르멜 산은 하느님의 풍부한 자비를 체험하는 곳이다. 엘리야가 ‘비’를 몰고 온 작은 구름 한 점을 보았을 때 하느님의 자비가 다시 내렸기 때문이다. 또한 카르멜 산은 살아 계신 하느님을 체험하는 곳이다. 그 체험은 엘리야의 중재 기도에 힘입어 불, 다시 말해 하느님 사랑의 불을 통해 계시됐기 때문이다.”
* 윤주현 신부는 로마 테레시아눔에서 신학적 인간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스페인의 아빌라 신비신학 대학원 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대구 가르멜 수도원 원장, 대전가톨릭대학교 교의신학 교수로 활동하며 다양한 저서와 역서를 펴내고 있다.
[성서와 함께, 2014년 4월호(통권 457호), 윤주현 베네딕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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