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6일 (화)
(백) 부활 제3주간 화요일 하늘에서 너희에게 참된 빵을 내려 주시는 분은 모세가 아니라 내 아버지시다.

강론자료

2020-12-13.....대림 제3주일 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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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20-12-13 ㅣ No.2370

                                                 대림 제3주일 (나해)

이사야 61,1-2.10-11       1테살로니카 5,16-24       요한 1,6-8.19-28

2020. 12. 13.

주제 : 하느님의 뜻을 찾는 가난

제 개인의 경험으로는 제 생애의 처음으로, 신자들과 만나는 주일미사를 봉헌하지 말라(12/8~28)는 정치권력의 명령이 있는 상황을 맞이했습니다. 신자와 함께하지 못하는 미사이지만, 하느님의 뜻을 새기는 강론은 준비합니다.

 

오늘은 대림 3주일입니다. 오늘은 우리의 삶에서 가난한 이를 먼저 생각하자는 날로, 자선주일로 지내는 날입니다. 가난이라는 상황은 사람의 삶을 힘겹게 합니다. 힘을 모아서 극복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말과 생각으로만 가능할 일은 아니지만, 바람과 뜻대로 실현되어야 하는 일인 것은 분명합니다.

 

오늘을 가난한 사람들을 먼저 생각하자는 날로 지냅니다만, 신앙에서 말하는 '가난'이라는 표현의 의미는 무엇이겠습니까? 신앙에서 사용하는 낱말이라고 해서 세상에서 사용하는 낱말의 의미와 완벽하게 다른 것은 아닙니다. 다만, 세상의 일을 생각하고 그 상황을 바꾸기 위해서 신앙에서는 세상과 같은 글자로 사용하는 낱말을 어떤 의미로 사용하는지를 생각하자는 뜻입니다. 신앙에서 말하는 가난은 세상에서 우리가 피하고 싶어서 애쓰는 가난을 가리키는 의미와는 다르게 생각해야 합니다. 글자는 같습니다만, 의미는 우리가 다르게 생각해야 합니다. 세상살이에서 피하고 극복해야 하는 대상인 '가난'을 교회가 예찬하고, 우리 신앙인도 그렇게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고 말할 리는 없기 때문입니다.

 

가난은 사람이 극복해야 할 악입니다. 악이라고 표현할 때는 그 대상을 사탄이나 악마를 말하는 것으로 알기가 쉬울 수도 있습니다만, 악은 사람의 삶을 힘들게 하는 것이니 이겨야 할 대상인 것은 분명합니다. 물론 가난이라는 표현이 말하는 대상은 형태는 없지만 극복하고 물리쳐야 할 대상이지만, 사람의 삶에 눈에 보이는 위력을 드러내지는 않습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가난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는 않겠습니다. 가난의 의미는 모두 안다고 할 아주 간단한 일이기에 그렇습니다. 신앙에서 말하는 가난을 의미를 우리가 생각할 시간입니다.

 

오늘 들은 요한복음의 말씀은 세례자 요한의 등장과 그의 선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내용만을 들으면, 가난에 관한 표현은 찾을 수 없습니다만 세례자 요한이 움직이는 모습에서 우리는 그 상황을 읽을 수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을 향하여 가난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덤비는 모습에는 세상의 일은 자기들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어있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도움을 예상하지 않고 산다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누구에게라도 권장할 만한 일입니다. 그러나 신앙인으로 사는 우리가 하느님의 도우심과 사랑을 멀리한다면 어떤 현상이 생기겠습니까? 사람의 처지에서는 부자라고 표현할 수 있어도, 그는 하느님의 앞에 결과가 없는 헛된 것을 만들려는 사람일 것입니다. 그 삶의 자세를 돌이키려고 세례자 요한은 선포합니다. 하느님의 도우심과 자비가 사람의 삶에 필요하다고 말입니다. 그렇지만 누가 인정하겠습니까?

 

이사야 예언자는 자신이 받은 사명이 하느님의 뜻을 찾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뜻을 선포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역사의 상황을 돌이킨다면 이사야 예언자가 선포한 것이 좋은 결론으로 연결되지 않았음을 우리는 압니다. 사람의 생각이 강해서 그런 것일까요. 하느님의 힘이 약해서 그런 것이겠습니까?

 

바오로 사도는 테살로니카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성령의 뜻을 충실하게 이해하고 따를 사람이 될 것을 요청하셨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이기에 우리가 멀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생기는 삶의 모습이 하느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면 우리에게도 좋은 결과가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대림시기의 세 번째 주일을 지내면서 우리를 찾아오시는 예수님께 우리의 삶이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도 살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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