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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교리

교리교육 여정: 복음화 과정 안에서의 교리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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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1-07-12 ㅣ No.2828

[교리교육 여정] 복음화 과정 안에서의 교리교육 (1) 계시, 예수님과의 인격적 만남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스스로 드러내신 계시, 곧 “하느님과 인간 구원에 관한 심오한 진리가 중개자이시며 동시에 모든 계시의 충만이신 그리스도 안에서”(「계시헌장」 2항) 밝혀질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성경 안에서 계시를 설명해주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를 통하여 속량을, 곧 죄의 용서를 받았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그 풍성한 은총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은총을 우리에게 넘치도록 베푸셨습니다. 당신의 지혜와 통찰력을 다하시어, 그리스도 안에서 미리 세우신 당신 선의에 따라 우리에게 당신 뜻의 신비를 알려 주셨습니다.”(에페 1,7-9)

 

“이렇게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에 오시어, 멀리 있던 여러분에게도 평화를 선포하시고 가까이 있던 이들에게도 평화를 선포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을 통하여 우리 양쪽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가게 되었습니다.”(에페 2,17-18)

 

“그분께서는 그 영광과 능력으로 귀중하고 위대한 약속을 우리에게 내려 주시어, 여러분이 그 약속 덕분에, 욕망으로 이 세상에 빚어진 멸망에서 벗어나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게 하셨습니다.”(2베드 1,4)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통해서 당신을 계시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예수님과 인격적인 만남을 가질 때, 그 과정에서 하느님을 만나는 신비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과의 인격적 만남은 당신께서 행하신 행적과 말씀이 바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신비’라는 사실을 믿는 데서 시작됩니다.

 

우리의 삶을 인간의 언어로 모두 설명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아니, 불가능합니다. 인간이 마주하는 노동과 고통, 사랑과 희망, 생명과 죽음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를 찾고자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떤 목표를 잡고서 살아가야 하는가, 하고 물을 수 있습니다. 이 밖에도 무수한 질문에 응답하기 위해 우리는 예수님의 행적과 말씀을 이해하고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과의 인격적 만남을 통해 참된 응답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계시의 신비를 받아들인 신앙인은 그 진리를 선포해야 합니다. 계시의 신비는 거듭되는 선포를 통해 그 의미가 명확해집니다. 따라서 예수님과의 인격적 만남을 통해 하느님을 알게 되는 계시 사건은 교회에서 이뤄지는 모든 ‘말씀 봉사를 위한 직무’ 안에서 뚜렷이 드러나게 됩니다. 결국, 말씀에 봉사하는 교리교육은 그 대상자들을 그리스도와 인격적으로 만나는 친교로 인도하는 사명을 수행합니다.

 

“교리 교육의 핵심에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한 인물, 성부의 외아들, 나자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라는 인물을 만나게 됩니다. […] 그러므로 교리 교육은 그리스도의 행적과 말씀의 의미, 그분을 통해 나타난 표징의 의미를 알아들으려는 노력입니다. […] 따라서 교리 교육의 목표는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친교를 이루게 하는 것입니다. 그분만이 성령 안에서 아버지의 사랑으로 우리를 이끌어 주실 수 있으며, 우리를 거룩하신 성삼위의 생명에 참여토록 하실 수 있습니다.”(「현대의 교리교육」 5항) [2021년 7월 11일 연중 제15주일 의정부주보 11면, 김승훈 가브리엘 신부(문산 주임)]

 

 

[교리교육 여정] 복음화 과정 안에서의 교리교육 (2) 첫 선포인 케리그마(Kerygma) I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복음화의 주체인 우리가 ‘선교하는 제자’의 사명에 응답하기를 요청하셨습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선교 사명은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마태 28,20)는 말씀에 온전히 담겨 있습니다. 이 말씀에는 ‘하느님의 말씀’을 교육하여야 하는 사명과 신앙의 성숙을 촉진하여야 하는 사명이 함께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명에 깔린 근본정신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음 성경 구절을 되새겨봅시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처럼,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5,9-12)

 

우선, 교리교육은 예수님의 첫 선포를 이어갈 우리의 사명을 재점검하고,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려줍니다. 그러면서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기 위한 ‘성숙’의 도구로 역할을 수행합니다. 또한 우리가 ‘신앙을 선포’하도록 부르심을 받았으며, 복음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도록 도와주는 사명을 지니고 있음을 알려줍니다.

 

그러므로 교리교육은 단순한 ‘교육’이 아니라 한 인간을 ‘성숙’시켜 말씀을 전해 듣는 이가 하느님의 말씀을 믿을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길잡이가 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선포(케리그마)는 교리교육의 모든 과정에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근본 핵심입니다.

 

“우리는 교리교육에서 더욱 ‘탄탄하다’고 내세우는 교육을 위하여 케리그마를 접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케리그마보다 더 탄탄하고 깊이 있고 확실하고 의미 있고 지혜로 넘치는 것은 없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 교육은 무엇보다도 케리그마의 심화입니다.”(「복음의 기쁨」 165항)

 

이처럼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말씀하신 선포(케리그마)에 대한 이해를 토대로 신앙 교육과 성숙의 방법과 내용을 재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복음화에 봉사하는 교리교육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과 부활을 핵심적으로 선포하는 케리그마적 사명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신앙을 선포하는 사람은 이를 듣는 이들에게 ‘도덕적, 종교적 의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인간을 구원해주시는 ‘무한한 사랑’을 전해야 합니다. 또한 선포(케리그마)는 하느님의 말씀을 균형 있게 전하기 위해 그 내용을 “철학적인 몇 가지 교리로 축소 시키지”(「복음의 기쁨」 165항) 않아야 합니다. [2021년 8월 1일 연중 제18주일 의정부주보 11면, 김승훈 가브리엘 신부(문산 주임)]

 

 

[교리교육 여정] 복음화 과정 안에서의 교리교육 (2) 첫 선포인 케리그마(Kerygma) II

 

 

“모든 그리스도인 교육은 무엇보다도 케리그마의 심화입니다”(「복음의 기쁨」 165항). 이를 위해서 케리그마 곧 선포의 중심에는 “말씀”(요한 1,1)이시고 “하느님의 지혜”(1코린 1,24)이시며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모상”(콜로 1,15)으로서, “하느님 본질의 모상”(히브 1,3)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리하셔야 합니다.

 

선포를 중심에 둔 교리교육, 다시 말해 ‘케리그마적 교리교육’은 대상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인격적으로 소통할 수 있도록 준비시켜줍니다. 복음화의 과정 안에서 교리교육은 신앙을 끊임없이 선포하는 사명을 가지며,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드러나는 하느님의 사랑과 신비를 세상이 발견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임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교리교육은 믿어야 할 핵심 진리만을 간결하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아있는 인격(persona)으로서 하느님의 신성과 인간의 인성이 만나는 구세주이심을 알려주고, 더 나아가 교회와 모든 피조물의 중심에 계신 분임을 ‘선포’하는 임무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러한 소명을 가진 케리그마적 교리교육은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을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그들의 내적 성장을 이끄는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그러므로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새롭게 요청하신 케리그마적 교리교육은 모든 순간에 ‘예수님을 선포하는 차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말씀 직무는 계시의 경륜 고유의 이러한 놀라운 특성, 곧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인간의 역사에 들어오시어 인간의 생명과 죽음을 받아들이시고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새롭고 결정적인 계약을 맺으셨다는 사실에 언제나 강조점을 두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떤 분이신지, 그분의 생애와 공생활은 어떠하셨는지를 소개하고, 그리스도교 신앙이란 그분을 따르는 것임을 가르쳐 주는 것이 바로 교리교육의 임무이다. […]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의 완성이시라는 사실은 교리교육이 ‘그리스도 중심’이어야 한다는 근거가 된다. 계시된 메시지에서 그리스도의 신비는 다른 요소들과 병행하는 또다른 요소가 아니라, 다른 모든 요소를 구성하고 조명하는 핵심이다.”(「교리교육 총지침」 41항)

 

교리교육이 케리그마적 성격을 지니기 위해서는 두 가지 사항을 기억해야 합니다. 먼저, 교리교육의 중심 내용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라는 점이고, 둘째, 그분께서 몸소 교리교육 활동의 ‘주체’가 되신다는 점입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의 교황권고 「현대의 교리교육」에서는 케리그마적 교리교육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교리교육에서 ‘그리스도 중심’이라는 것은 사람이 자기의 가르침이나 다른 스승의 가르침을 전할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전해야 한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그분이 건네주시는 진리, 더 정확하게 말해서 그분이 체현(體現)하시는 진리를 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 교리교육에서 가르침의 대상은 어디까지나 혈육을 취하신 말씀이시자 하느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이시며 그 밖의 모든 진리를 그분과 관련시켜 전달됩니다. 그리고 가르치는 이도 그리스도뿐이시며 다른 이는, 그리스도의 대변인으로서 자기 입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게 하는 한에서, 남을 가르치는 것이다.”(「현대의 교리교육」 6항) [2021년 8월 8일 연중 제19주일 의정부주보 11면, 김승훈 가브리엘 신부(문산 주임)]

 

 

[교리교육 여정] 복음화 과정 안에서의 교리교육 (2) 첫 선포인 케리그마(Kerygma) III

 

 

지금까지 교리교육이 ‘케리그마’(선포)와 불가분한 특징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케리그마의 중요한 특징을 삼위일체와 연결하면서 교리교육과 선포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가르치십니다.

 

“케리그마는 삼위일체적입니다. 성령의 불은 혀의 모양으로 우리에게 주어지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도록 이끕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죽음과 부활로 아버지의 무한한 자비를 드러내시고 전해 주십니다.”(「복음의 기쁨」 164항)

 

이렇게 삼위일체적인 케리그마가 선포될 때, 예수님께서 누구신지 진정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또한 그 선포를 들은 청중들의 마음이 움직이며, 비로소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이 누구신지 알려지게 됩니다. 이러한 케리그마는 신약성경의 다양한 곳에서 나타납니다.

 

-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요한 3,16).

 

-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고 왔다”(요한 10,10).

 

- “하느님께서 나자렛 출신 예수님께 성령과 힘을 부어 주신 일도 알고 있습니다. 이 예수님께서 두루 다니시며 좋은 일을 하시고 악마에게 짓눌리는 이들을 모두 고쳐주셨습니다”(사도 10,38).

 

- “이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잘못 때문에 죽음에 넘겨지셨지만, 우리를 의롭게 하시려고 되살아나셨습니다”(로마 4,25).

 

- “그리스도께서는 성경 말씀대로 우리의 죄 때문에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성경 말씀대로 사흗날에 되살아나시어, 케파에게, 또 이어서 열두 사도에게 나타나셨습니다”(1코린 15,3-5).

 

- “내가 지금 육신 안에서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갈라 2,20).

 

그러므로 교리교육을 담당하는 사람은 그의 입으로 믿을만한 삼위일체적 선포가 퍼져나가도록 노력하고(로마 10,8-10 참조), 이를 통해 선포를 듣는 이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 자신의 신앙을 고백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합니다. ‘선포된 복음’을 새롭게 깨달으며 메아리처럼 울려 퍼지게 하는 것, 곧 주님의 지속적인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이 복음화에 봉사하는 교리교육의 사명입니다. 다음의 말씀을 통해 케리그마의 핵심을 되새겨봅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여러분을 사랑하시고, 여러분을 구원하시고자 당신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날마다 여러분 곁에 사시면서 여러분을 깨우치시고 힘을 주시고 자유롭게 해 주십니다.”(「복음의 기쁨」 164항) [2021년 8월 15일 성모 승천 대축일 의정부주보 11면, 김승훈 가브리엘 신부(문산 주임)]

 

 

[교리교육 여정] 복음화 과정 안에서의 교리교육 (3) 신앙의 입문과 성장을 향하여 I

 

 

교리교육은 사람들이 하느님 말씀을 받아들여 신앙 안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교회의 활동입니다. 이 복음화 과정에서 하느님 계시 사건의 원천이신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알고, 그분을 알아가면서 ‘신앙’의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중개하는 것이 교리교육의 역할입니다. 그러므로 교리교육은 신앙을 심화하는 데 본질적인 사명이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교리교육 총지침」에서는 교리교육이 지속적인 신앙 성숙을 위해 필수적이고 조직적이며 점진적인 신앙교육(「교리교육 총지침」 69항 참조)임을 설명합니다.

 

“교리교육은 그리스도인 생활의 모든 것을 배우는 기간이며, 그리스도의 위격에 초점을 맞추고 그분을 진정으로 따를 것을 장려하는 ‘완전한 그리스도교 입문’이다. […] 교리교육은 그리스도인의 영적 체계의 토대를 쌓고, 신앙생활의 근본을 가르치며,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일반생활에서 더욱 든든한 양식을 얻을 수 있도록 한다.”(「교리교육 총지침」 67항)

 

그런데 여기서 우리 자신에게 던져볼 근본적인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시작되고, 전달되고, 성장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은 신앙을 전달하려는 노력이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잘 정리된 이념을 전달하고 단지 개종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축소되어 이해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성찰하게 합니다. 성숙한 신앙인이 된다는 의미에 대해 고민하도록 이끄는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는 먼저 ‘신앙이 무엇인지’를 올바르게 알 필요가 있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계시헌장」에서는 신앙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계시하시는 하느님께 ‘신앙의 순종’을(로마 16,26; 로마 1,5; 2코린 10,5-6 참조) 드러내야 한다. 이로써 인간은 ‘계시하시는 하느님께 지성과 의지의 완전한 순종’을 드러내고 하느님께서 주신 계시에 자발적으로 동의함으로써 자기를 온전히 그분께 자유로이 맡기는 것이다. 이와 같은 믿음이 있으려면 하느님의 도움의 은총이 선행되어야 하며, 성령의 내적인 도움이 필요하다. 이로써 성령께서는 마음을 움직이시고 하느님께 회개시키시고 마음의 눈을 여시며 ‘진리에 동의하고 믿는 데에서 오는 즐거움을 모든 이에게 베푸신다.’ 같은 성령께서는 계시에 대한 이해가 더욱 깊어지도록 당신의 은총으로 항구히 신앙을 완성시켜 주신다.”(「계시헌장」 5항)

 

이제 다음 시간에는 「계시헌장」에서 말하는 ‘신앙’의 의미를 더 깊이 알아보고, 신앙과 관련해서 우리에게 던져지는 근본적인 질문의 답을 함께 찾아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2021년 8월 22일 연중 제21주일 의정부주보 11면, 김승훈 가브리엘 신부(문산 주임)]

 


[교리교육 여정] 복음화 과정 안에서의 교리교육 (3) 신앙의 입문과 성장을 향하여 II

 

 

‘신앙의 의미는 무엇인가?’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교회의 가르침을 알아봐야 합니다. 모든 교리교육은 하느님의 말씀과 교회의 가르침이라는 원천에서 흘러나오므로, 그 근본적인 뿌리에서 해답을 찾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교리교육은 ‘과연 우리가 신앙에 대한 올바른 개념을 가지고 있는가?’에 대해 성찰하고 그 열매를 사람들과 나누게끔 합니다. 그러므로 교리교육의 올바른 개념을 위해서는 지난주에 보았던 「계시헌장」 5항에 나오는 ‘신앙’의 의미를 더 깊이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신앙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시는 하느님께 자발적으로 응답하는 행위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단순한 가르침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사람들의 영혼 안으로 침투하여, 새로운 ‘마음’과 ‘영’을 가진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게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응답을 ‘회개’라고 부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삶의 새로운 의미’를 깨달을 수 있도록 항상 질문하시며, 우리는 이에 ‘응답’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 의무는 하느님 말씀의 빛을 통해 우리의 일상 안에서 마주하게 되는 모든 일을 지혜롭게 견디어 내는 ‘자유로운’ 의무입니다. 『가톨릭교회교리서』는 신앙의 응답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신앙이 인간적인 응답이 되려면, ‘인간이 하느님을 자유로이 믿고 응답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그 누구도 억지로 신앙을 받아들이도록 강요당해서는 안 된다. 사실 신앙 행위는 그 본질상 자유로운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이 영과 진리 안에서 당신을 섬기도록 부르시므로 인간은 이에 양심으로 매이지만 강제당하지는 않는다. (…)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사실 그리스도께서는 신앙과 회개로 초대하시지만 결코 이를 강요하지 않으신다. ‘진리를 증언해 주셨지만, 반대자들에게 그 진리를 힘으로 강요하지는 않으셨다. 그분의 나라는 (…) 진리를 증언하고 들음으로써 굳건해지며 사랑으로 넓혀진다. 십자가에 높이 들리신 그리스도께서는 그 사랑으로 인간을 당신께 이끌어 들이신다.’”(『가톨릭교회교리서』 160항)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에 응답하는 것은 “하느님께서 주신 계시에 자발적으로 동의함으로써 자기를 온전히 그분께 맡기는 것”(「계시헌장」 5항)입니다. ‘신앙’은 끊임없이 하느님의 말씀에 응답하며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선물처럼 주어지는 것이며, 이 선물을 가지고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기로 선택하는 우리의 ‘응답’은 구원을 향한 길이 됩니다.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사람의 아들도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마르 8,38) [2021년 8월 29일 연중 제22주일 의정부주보 11면, 김승훈 가브리엘 신부(문산 주임)]

 

 

[교리교육 여정] 복음화 과정 안에서의 교리교육 (3) 신앙의 입문과 성장을 향하여 III

 

 

신앙이 우리 안에서 성장하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하느님의 도움의 은총이 선행되어야 하며, 성령의 내적인 도움이 필요”(「계시헌장」 5항)합니다. 이는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당신이 누구신지 보여주시는 계시 사건을 통해 우리가 하느님을 믿을 수 있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가톨릭교회교리서』는 신앙이 있기 위한 첫 번째 선물이 바로 ‘하느님의 은총’임을 알려줍니다.

 

“베드로 사도가 예수님께서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할 때,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그것을 알려 주신 분은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마태 16,17)라고 밝히신다. 신앙은 하느님의 선물이며, 하느님께서 불어넣어 주시는 초자연적인 덕이다. ‘이와 같은 믿음이 있으려면 하느님의 도움의 은총이 선행되어야 하며, 성령의 내적인 도움이 필요하다.’”(『가톨릭교회교리서』 153항)

 

예수님께서도 사람들이 자신에게 오는 것은 하느님의 도우심(은총)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요한 6,44)라는 말씀을 통해 신앙은 ‘하느님의 은총’(도움)이 먼저 있어야 함을 밝히십니다.

 

이처럼, 신앙은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당신이 누구신지 알게 해주시는 선물입니다. 그리고 이 선물을 더욱 깊이 알려주시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끊임없이 당신의 행적과 말씀을 통해 하느님을 만날 수 있도록 초대하십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한다는 것은, 그분 말씀을 받아들여 마음에 새기고 살아간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은 ‘하느님의 은총’과 ‘성령의 내적인 도움’을 받고 이에 응답하는 ‘인간의 행위’도 포함합니다.

 

이와 같은 자유로운 응답을 위해서는, 그런데 앞서 말씀드린 ‘성령의 내적 도움’이 반드시 선행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성령에 힘입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님은 주님이시다.’ 할 수 없습니다.”(1코린 12,3)는 말씀처럼, 참 진리를 알려주시는 분은 바로 ‘성령’이시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는 마음을 움직이시고 하느님께 회개시키시고 마음의 눈을 여시며 ‘진리에 동의하고 믿는 데에서 오는 즐거움을 모든 이에게 베푸신다.’ 같은 성령께서는 계시에 대한 이해가 더욱 깊어지도록 당신의 은총으로 항구히 신앙을 완성시켜 주신다.”(「계시헌장」 5항)

 

‘믿는다는 것’은 하느님의 은총을 통해 성령의 도우심으로 하느님이 누구신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알아가고자 하는 인간의 자유로운 응답 행위입니다. 그리고 신앙이 우리에게 선물이 되는 이유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만나러 오시려는 주도권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분의 말씀을 받아들이려는 우리의 응답 행위가 성령의 움직임 아래에서 움직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2021년 9월 5일 연중 제23주일 의정부주보 11면, 김승훈 가브리엘 신부(문산 주임)]

 

 

[교리교육 여정] 복음화 과정 안에서의 교리교육 (3) 신앙의 입문과 성장을 향하여 IV

 

 

신앙은 살아계신 하느님과 우리 인간이 인격적으로 만나는 과정을 통해 이뤄집니다. 그 과정 안에는 하느님께 굳은 신뢰를 둔 채 그분께 순종하는 ‘포기’가 포함됩니다. 신약성경에서는 이러한 믿음의 순종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하느님은 내가 전하는 복음으로, 곧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선포로, 또 오랜 세월 감추어 두셨던 신비의 계시로 여러분의 힘을 북돋아 주실 능력이 있는 분이십니다. 이제는 모습을 드러낸 이 신비가 모든 민족들을 믿음의 순종으로 이끌도록, 영원하신 하느님의 명령에 따라 예언자들의 글을 통하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로마 16,25-26)

 

“하느님을 아는 지식을 가로막고 일어서는 모든 오만을 무너뜨리며, 모든 생각을 포로로 잡아 그리스도께 순종시킵니다. 또한 여러분이 온전히 순종하게 될 때에는 모든 불순종을 처벌할 준비도 갖추고 있습니다.”(2코린 10,5-6)

 

이 말씀에 비추어 보면, 믿음을 가지고 있는 신앙인은 무엇보다도 하느님께 순종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앙인은 하느님께서 진리 자체이심을 믿고 그분께 모든 것을 맡겨드리는 사람입니다. 「계시헌장」은 신앙인의 이러한 모습을 요약하며 다음과 같이 가르칩니다.

 

“계시하시는 하느님께 ‘신앙의 순종’을(로마 16,26; 로마 1,5; 2코린 10,5-6 참조) 드러내야 한다. 이로써 인간은 ‘계시하시는 하느님께 지성과 의지의 완전한 순종’을 드러내고 하느님께서 주신 계시에 자발적으로 동의함으로써 자기를 온전히 그분께 자유로이 맡기는 것이다.”(「계시헌장」 5항)

 

하느님을 향해 진정한 “믿음의 순종”을 드러내는 기도가 바로 “아멘”(Amen, ‘진실로 그렇습니다’)입니다. 아멘은 히브리어 ‘아만’에서 유래하며, ‘안전한 느낌을 받다’ ‘누구를 믿다’ ‘누구에게 자신의 약함을 지고 가게 하다’ ‘누구에게 기대다’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은 인간에게 항구히 당신 자신을 드러내 주시는 주님께 ‘아멘’이라고 응답하는 것입니다.

 

신앙은 하느님께 항상 충실한 믿음을 고백하는 동시에, 살아계시며 참된 하느님께 한 사람의 신앙인으로서 기대는 행위이며, 그분의 영원함을 끊임없이 체험하기 위해 ‘아멘’하고 응답하는 긴 여정입니다. [2021년 9월 12일 연중 제24주일 의정부주보 11면, 김승훈 가브리엘 신부(문산 주임)]

 

 

[교리교육 여정] 복음화 과정 안에서의 교리교육 (3) 신앙의 입문과 성장을 향하여 V

 

 

신앙의 시작점이자 원동력은 ‘회개’입니다. 그런데 회개는 단순하게 죄를 뉘우치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우리가 가지고 있던 삶의 방향을 전환하는 것입니다. 회개(悔改)라는 말을 한자어로 풀면 ‘잘못을 뉘우치고 고치다.’는 뜻이지만, 단순히 이 한자어로는 ‘회개’라는 말의 의미를 전부 담아내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회개는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시는 하느님 아버지의 품에 안길 때 비로소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루카 복음 15장의 ‘되찾은 아들의 비유’에서 둘째 아들의 모습을 통해 회개의 본래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제야 제정신이 든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내 아버지의 그 많은 품팔이꾼들은 먹을 것이 남아도는데, 나는 여기에서 굶어 죽는구나.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렇게 말씀드려야지.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저를 아버지의 품팔이꾼 가운데 하나로 삼아 주십시오.'’ 그리하여 그는 일어나 아버지에게로 갔다. 그가 아직도 멀리 떨어져 있을 때에 아버지가 그를 보고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달려가 아들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루카 15,17-20)

 

‘죄’는 하느님 아버지의 품에서 멀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루카 복음에 나온 둘째 아들이 아버지께 돌아올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보다 자신이 무슨 죄를 지었는지 ‘알아차렸기’ 때문입니다. 자기 스스로 어떤 죄를 저질렀는지 ‘알아차리고’ 이를 뉘우치는 데서 회개가 시작되었습니다.

 

“회개는 죄에 대한 자각을 요구한다. 회개는 그 자체로 양심의 내적인 판단을 내포하고 있다. 회개는 진리의 영이 사람의 가장 깊은 마음속에서 활동하시는 증거이며, 동시에 은총과 사랑의 새로운 선물이 시작됨을 뜻한다.”(「가톨릭교회교리서」 1848항)

 

‘회개’는 그리스어로 메타노이아(μετάνοια)라고 합니다. 이는 단순히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고치는 의미를 넘어, 자기가 가지고 있던 ‘의식의 근본적인 변화’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 근본적인 변화는 ‘마음의 방향을 바꾸어’(메타노이아) 하느님께로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 향하게 하는 것입니다.

 

신앙이 ‘회개’에서 시작되는 이유는, 죄가 “어떤 것에 대한 비뚤어진 애착 때문에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참다운 사랑을 저버리는 것”(「가톨릭교회교리서」 1849항)임을 깨닫고 자신의 이러한 점을 하느님께 고백하는 데서 믿음의 성장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내적 참회는 삶 전체의 근본적 방향 전환이며, 온마음으로 하느님께 돌아오고, 회개하는 것이며, 우리가 지은 악행을 혐오하고 악에서 돌아서서 죄를 짓지 않는 것이다. 동시에 내적 회개는 하느님 자비에 대한 희망과 하느님 은총의 도움을 믿고 생활을 바꾸겠다는 의향과 결심을 포함한다.”(「가톨릭교회교리서」 1431항) [2021년 9월 19일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경축이동 의정부주보 11면, 김승훈 가브리엘 신부(문산 주임)]

 

 

[교리교육 여정] 복음화 과정 안에서의 교리교육 (3) 신앙의 입문과 성장을 향하여 VI

 

 

신앙이 처음으로 우리 삶에 뿌리내린 이후, 계속 성장해나가기 위해서는 일련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세례 때 당신의 첫 말씀 선포와 성령의 도우심으로, 말씀의 씨앗을 우리 영혼에 뿌려주셨습니다. 교리교육의 역할은 그 뿌려진 씨앗에서 새순이 움터 나와 ‘하느님 나라’와 ‘그리스도’가 누구이신지 알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은총의 역사하심으로 새 피조물로 변화된 그리스도 신자는 그리스도를 따르기로 작심하며, 교회 안에서 배우고 또 배워서 그리스도처럼 생각하고 그리스도처럼 판단하며 그분의 계명에 따라 행동하고 그분이 초래하시는 대로 희망을 품기에 이릅니다.”(「현대의 교리교육」 20항)

 

그러므로 복음화의 기나긴 과정에서 교리교육은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이들 안에 신앙이 성장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합니다. 신앙이 진실한 마음으로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는 ‘회개’에서 시작되었다면, 그다음의 단계에서는 한 사람의 그리스도 신자가 자기가 믿고 있는 ‘그리스도’께서 누구이신지 더 알게 되는 차원으로 넘어가야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과정을 ‘신앙의 성장’이라고 부릅니다.

 

“그리스도 신자가 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 ‘예!’라고 말씀드리는 것을 뜻함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예!’라는 응답이 두 가지 측면을 띤다는 것도 유의할 것입니다. 첫째는 하느님의 말씀에 귀의하고 신뢰하는 데에 그 응답이 있습니다만 그다음 단계로 이 말씀의 심오한 뜻을 더욱더 잘 알기 위해 노력하는 데에도 그 응답이 있습니다.”(「현대의 교리교육」 20항)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 「현대의 교리교육」에서 강조하신 가르침에 따르면, ‘신앙 행위’ 즉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분께 돌아서는 마음(회개)으로 시작되는 충실한 믿음과 그분이 누구이신지를 알아가는 과정이 함께 일어나는 ‘상호보완적인 행위’입니다.

 

“‘신앙’이란 믿거나 신뢰하는 행위를 뜻하기도 하고 믿거나 고백하는 내용을 가리키기도 하는데, 이들을 각각 ‘행위로서의 신앙’(fides qua)과 ‘내용으로서의 신앙’(fides quae)이라고 일컬어진다. 그 두 측면은 분리할 수 없이 일치되어 작용한다. 신뢰는 이해될 수 있는 내용의 메시지를 따르는 것이고, 신앙 고백은 내용 없는 단순한 말들로 환원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부터 나와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국제신학위원회, 「오늘의 신학: 전망, 원칙, 기준」 13항)

 

우리의 ‘신앙’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우리 안에서 끊임없이 움직입니다. 신앙의 이러한 역동성을 생각해보면, ‘신앙의 입문과 성장’이 왜 필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먼저 하느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믿는 신앙(fides qua)이 필요합니다. 이뿐만 아니라 하느님을 더욱 굳게 믿고 신뢰하기 위해서 하느님이 누구이신지(fides quae) 이해하는 성숙의 단계 역시 필요합니다. 따라서 우리의 신앙은 백배의 열매(마태 13,8 참조)를 맺을 때까지 성장해야 하는 씨앗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것들은 좋은 땅에 떨어져 열매를 맺었는데,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예순 배, 어떤 것은 서른 배가 되었다.”(마태 13,8) [2021년 9월 26일 연중 제26주일(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 의정부주보 11면, 김승훈 가브리엘 신부(문산 주임)]

 

 

[교리교육 여정] 복음화 과정 안에서의 교리교육 (3) 신앙의 입문과 성장을 향하여 VII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적으로 믿고 그분의 길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는 단 한 번의 선택이 아니라 평생 끊임없이 이어지는 회개의 과정을 통해 이뤄집니다. 이 과정은 마치 어린아이가 점차 성장하여 성인이 되는 것처럼 하느님의 은총으로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과 지식에서 일치를 이루고 성숙한 사람”(에페 4,13)이 되어가는 여정입니다.

 

교리교육 활동이 복음화에 이바지하기 위해서는 한 명의 그리스도인이 신앙 여정을 걸어간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신앙이 한 사람의 마음속에서 자라나는 선물이 되는 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 첫 번째, 복음의 첫 선포(케리그마)가 있습니다. 이를 통해 “비신자나 종교에 무관심한 사람, 또는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아직 확고한 결심은 아니지만 복음에 대한 관심”(「교리교육 총지침」 56항)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복음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게 되는 사람을 “동조자” 또는 “초심자”(「어른 입교 예식」 12항)라고 합니다.

 

- 두 번째, 초심자들이 복음에 관심을 가지면서 심사숙고하는 것입니다. 비록 초보적이긴 하지만, 이때 신앙의 선포(케리그마)를 통해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며, 새로운 사고방식과 신자생활을 받아들이겠다는 ‘회개’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신앙생활을 시작하는 모든 이는 바로 이 ‘회개’의 순간부터 신앙 성숙의 길에 들어섭니다.

 

- 세 번째, 신앙을 더욱 풍요롭고 확고하게 해주는 ‘신앙고백’입니다. 「가톨릭교회교리서」에서는 신앙고백 (신경)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는 처음부터 자신의 신앙을, 모든 사람을 위한 간결하고 규범적인 신앙 조문들을 통해서 표현하고 전달해 왔다. 또한 아주 일찍부터 교회는 신앙의 핵심을 유기적인 조문 형태로 결집 요약하고자 했는데, 이는 무엇보다도 세례를 원하는 예비 신자들을 위한 것이었다.”(「가톨릭교회교리서」 186항)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깊이 알고 그분을 닮고자 하는 신앙인의 영적 성숙은 가톨릭교회 안에서 신앙을 종합하고 있는 신앙고백을 통해서 더욱 심화됩니다. 신앙고백은 “성경 전체에서 핵심이 되는 것들을 골라 구성한 것으로서, […] 아주 작은 겨자씨 안에 많은 가지가 들어있듯이, 이러한 신경도 몇 마디의 말속에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에 담겨 있는 참된 신앙심의 모든 지식이 들어”(「가톨릭교회교리서」 186항) 있습니다.

 

- 마지막으로,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태 5,48)라는 예수님의 명을 진실로 따르고자 굳게 결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 명의 그리스도인이 주님의 초대에 응답하여, 계속해서 자신의 신앙을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성령의 격려와 기도, 사랑의 실천,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지는 지속적인 신앙교육”(「교리교육 총지침」 56항)이 필요합니다.

 

“말씀 직무는 이처럼 완전한 회개의 과정을 도와준다. 최초의 복음 선포는 신앙으로 초대하며, 교리교육은 회개의 토대를 마련해 주고 그리스도인의 삶에 기본적인 체계를 제공해 준다.” (「교리교육 총지침」 57항) [2021년 10월 3일 연중 제27주일(군인 주일) 의정부주보 11면, 김승훈 가브리엘 신부(문산 주임)]

 

 

[교리교육 여정] 복음화 과정 안에서의 교리교육 (4) 교리교육의 목적

 

 

교리교육의 목적은 한 사람이 삶의 방향을 하느님께로 돌리는 회개를 시작으로 신앙을 받아들이고 성장시켜나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리교육의 중요한 역할은 “신앙을 숙성시키고 교육하는 일만 배려하는 것이 아니고, 은총의 도움을 입어 신앙을 새로 일으키기도 하고, 아직까지 신앙의 가장자리에서 머뭇거리는 사람들 편에서 마음을 열게 만들며, 회개를 하게 만들며, 예수 그리스도께 전심으로 귀의하게 준비시키는 것”(「현대의 교리교육」 19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기나긴 신앙 여정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모든 교리교육이 예수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만남을 중재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교리교육의 과정에서 그리스도가 누구이시며, 그분의 가르침이 무엇이고, 우리의 유일한 스승은 그분뿐이라는 사실을 대상자들이 분명히 알 수 있도록 해줘야 합니다. 만일 교리교육의 목적에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필리 2,5)을 전달하는 일을 놓친다면, 그 과정은 단지 ‘교육’에 머무르게 될 것입니다.

 

“교리교육은 그리스도의 행적과 말씀의 의미, 그분이 행하신 기적의 의미를 알아들으려고 노력하는 일입니다. 그 언행과 기적은 그분의 신비를 동시에 가리기도 하고 드러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교리교육의 궁극 목적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만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분과 친교와 친밀을 갖도록 인도하는 데에 있습니다. 그분만이 성령 안에서 아버지의 사랑으로 우리를 이끌어주실 수 있으며, 우리가 거룩하신 성삼위의 생명에 참여토록 하실 수 있습니다.”(「현대의 교리교육」 5항)

 

그러므로 교리교육 활동에선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알아가는 ‘친교의 과정’이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만나며 친교를 나눈다는 것은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마음과 생각 그리고 감각적인 부분을 함께 공유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교리교육은 한 사람이 교회 안에서 전례와 성사를 체험하면서, 교회공동체 생활과 교회의 다른 구성원과 함께 교회공동체를 만들어 가고, “하느님의 모습에 따라 창조된 새 인간”(에페 4,24)과 “하느님 마음에 드는 거룩한 산 제물”(로마 12,1)로 변화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여야 합니다.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가 인격적으로 만나 친교를 이루는 데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신 한 분 하느님을 온전히 믿는 것이 필수적임을 알려주어야 합니다.

 

“교회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마태 28,19) 세례를 베풀며, 그리스도인들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 자기 삶을 맡겨 드린다. [...] 교리교육이 ‘예수님께서는 주님이시다.’라고 하는 그리스도론적 신앙고백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을 믿나이다.’라고 하는 삼위일체적 고백을 하나로 결합시켜, 그리스도교 신앙을 표현하는 양식이 둘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최초의 복음 선포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께 귀의하여 그분을 주님으로 인정한 사람은, 교리교육의 도움을 받아, 삼위일체에 대한 명시적인 고백으로 이끄는 과정을 시작한다.”(「교리교육 총지침」 82항) [2021년 10월 10일 연중 제28주일 의정부주보 11면, 김승훈 가브리엘 신부(문산 주임)]

 


[교리교육 여정] 복음화 과정 안에서의 교리교육 (5) 교리교육의 과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양성하시며 그들에게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알려주셨습니다. 또한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어떠한 태도로 복음을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시고, 당신과 맺은 인격적 친교를 통해 선교하는 제자로 변화되도록 이끄셨습니다. 이처럼 주님께서는 제자가 된 이들이 당신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서로 친교를 누리며 기도하는 일에 전념할 수 있기를 바라셨습니다(사도 2,42 참조).

 

그러므로 예수님의 일을 이어가는 교리교육은 신자들이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갖고 전례에 참여하며, 믿는 바를 삶에서 실천하고 기도로써 그분과 하나 되게 하는 사명을 지닙니다. 그리고 여기서 핵심이 되는 교리교육의 중요 과제는 예수님께서 선포하시는 복음의 메시지를 듣는 이들이 이해하고 인식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입니다. 신앙을 교육하는 데 있어서 이를 구성하는 내용(fides quae)을 더 깊은 차원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 교리교육의 참된 과제입니다.

 

“그리스도와 만난 사람은 누구나 그분과 그분께서 계시하신 하느님 아버지의 계획을 알고자 한다. 신앙을 전적으로 받아들일(fides qua) 때 당연히 그 신앙의 내용(fides quae)을 알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교리교육 총지침」 85항)

 

그런데 교리교육에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이 있습니다. 바로 교리교육이 종교적 지식을 전달하는 차원에만 그치는 게 아니라 반드시 ‘신앙 교육’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한 사람이 그리스도를 만나서 변화되는 과정에서 올바른 목표는 종교적 ‘지식’ 자체가 아니라 이를 통해 신앙이 성숙 되는 것입니다. 교리교육의 또 다른 중요 과제는 바로 그리스도인의 삶과 태도를 양성하는 것입니다. 이 양성은 교회공동체 안에서의 드러나는 복음화의 네 가지 표징, 곧 ‘봉사, 친교, 증거, 전례’의 차원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 봉사의 표징: 교리교육은 애덕과 봉사의 실천으로 인도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안에서 사랑을 실천하는 일과 정의와 평화를 위해서 투신하는 일을 시작할 수 있게 합니다.

 

- 친교의 표징: 교리교육은 친교와 공동체 생활로 나아가게 합니다. 한 사람이 그리스도인이 되고 그리스도교 공동체로 들어온다는 것은 함께 살아가는 형제자매들과 소통하고 대화하며 교회의 활동에 참여하게 되는 것을 뜻합니다.

 

- 증거의 표징: 교리교육은 하느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선포하도록 이끕니다. 교회공동체의 일원이 된다는 것은 하느님 말씀을 듣고 교회와 세상 안에서 이를 선포하는 교회의 예언자적인 사명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 전례의 표징: 교리교육은 그리스도의 신비가 거행되는 예식에 입문하도록 안내합니다. 무엇보다 성체성사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교육하며 스스로 기도할 수 있는 역량을 길러줍니다. [2021년 10월 17일 연중 제29주일 의정부주보 11면, 김승훈 가브리엘 신부(문산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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