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8일 (목)
(백) 부활 제3주간 목요일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강론자료

2020-09-13.....연중 제24주일 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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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20-09-12 ㅣ No.2355

                                                        연중 제24주일 (가해)

집회서 27,30-28,9      로마 14,7-9      마태 18,21-35

2020. 9. 13.

주제 : 멋있는 세상을 위한 실천

오늘은 순교자성월의 두 번째 주일이고, 연중시기로 24주일입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주는 시대에 살면서 어떻게 사는 것이 신앙인의 올바른 자세인지 우리가 반복해서 묻습니다만, 대답한다면서 현실에 부딪히는 우리의 삶을 먼저 생각하면, 신앙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삶의 자세와 다른 대답을 하기가 매우 쉽습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표현을 우리 신앙인의 삶에 적용하면, 신앙을 지키고 잘 실천하며 사는 일도 현실이 안정을 찾은 다음에 할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신앙의 삶은 뒤로 밀리겠지만,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고, 그런 과정을 내 삶에 적용해도 문제는 없는 것인지 질문하고 대답해야 할 일입니다.

 

세상에서 자기의 의지로 산다고 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올바르게 사는 방법이 무엇인지는 알고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할 수도 있습니다. 내게 적용되는 삶의 자세를 말하는 것이니 다른 사람에게 똑같이 말해도 문제는 없다고 말하기가 쉽습니다. 조금 다른 차원에서 말하면, 내 삶에는 적용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에게 좋은 소리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여길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내가 속한 세상의 삶이 좋아지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서 오는 좋은 소리를 많이 듣는 것으로 충분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 내 귀에 들리거나 내가 말하는 내용을 내가 실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반복하는 소리로 하면, 내가 실천하지 않으면, 좋은 세상에서 내가 누릴 몫은 아무것도 없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는 얘기입니다. 누가 그것을 모르겠습니까? 하지만 안다는 사람중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 일을 자기의 삶에 적용하여 실천하겠습니까?

 

오늘 복음은 으뜸 제자인 베드로가 예수님께 용서의 분량에 관한 질문을 하는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용서란 무엇일까요? 어떤 일을 하면 용서했다는 표현을 내 삶에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다른 사람이 나에게 잘못한 것이 분명한데,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는 것처럼 대해야 한다는 것일까요? 그렇게 해석하면, 베드로사도처럼 용서의 분량에 관한 질문을 하게 됩니다. 그때, 용서는 몇 번이나 가능하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베드로 사도에게 말씀하신 대답은 일흔일곱(77)번입니다. 우리가 하나둘씩 세다가 일흔일곱(77)까지 센 다음, 일흔여덟 번째부터는 용서하지 않아야 한다는 뜻일까요?

 

예수님께서 본보기로 말씀하신 비유에 나오는, 많은 빚이 탕감된 사람이 졌던 금액 1만달란트는 그 종이 다른 동료에게 권리로 가졌던 100데나리온의 60만배가 되는 금액입니다. 임금에게 빚을 졌던 사람은 자기가 권리를 주장한 돈의 60만배가 되는 돈을 삭쳤느데도, 자기가 갚아야 할 빚이었던 분량의 60만분의 1만큼도 좋은 일로 실천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많았던 빚은 이미 나에게서 없어졌으므로, 내가 내 권리를 희생하여 내 몫으로 가질 권리에서 조금도 손해를 입을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었을 것입니다.

 

세상에 사는 사람중에서, 나만 유일하게 똑똑하고, 나만 현명하게 사는 사람일까요?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 마음은 하늘에 닿을 만큼 높을 수 있어도,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 현실인데, 그 현실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 사람이 드러내는 어리석음입니다.

 

첫째 독서인 집회서의 말씀도 용서에 관한 것입니다. 우리가 좋은 소리를 많이 듣는다고 해서 내가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닌데, 실제로 삶에서 그 간단한 일을 삶으로 드러내는 사람은 얼마나 되겠습니까?

 

용서를 말하면, 우리는 나에게 이익으로 남는 결과로서, 남에게서 내가 얻을 것을 먼저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누구나 그렇게 살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독서에서 우리가 들은 말씀은 나에게 그 좋은 것이 오게 하려면, 나에게서 먼저 좋은 것이 다른 사람을 향해서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주고받는다는 표현처럼, 내가 먼저 줄 수 있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신앙인으로 사는 우리는 예수님을 통하여 하느님의 은총과 구원을 얻을 사람으로 삽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서 무엇을 얻었기에, 우리에게 구원의 선물을 주셨는지 그 순서도 생각해야 합니다. 하느님에게서 먼저 받았기에 우리도 올바른 것을 실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바오로사도의 말씀도 순서에 따라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생각하는 내용이 사람에 따라 다를 수는 있습니다만,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먼저 주신 선물인 용서를 바르게 실천하는 것은 내가 사는 세상을 멋있고 아름답게 만드는 방법이 될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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