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7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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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ㅣ성모신심

교본 다시 읽기: 레지오 마리애 선서문에 나타난 신학적 문제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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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5-11-05 ㅣ No.992

[교본 다시 읽기] 레지오 마리애 선서문에 나타난 신학적 문제점 (2)

 

 

지난 호에서 이미 언급한, 레지오 선서문의 내용에 대한 신학적 성찰은 한국 가톨릭교회의 평신도 사도직 단체로서 레지오 마리애의 올바른 방향 정립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한국 교회 신자들의 전반적인 올바른 신심 운동 정립을 위해서도 매우 필요한 일이다. 한국 교회에서는 성모 신심이 신자들 사이에 아주 광범위하고 강하게 퍼져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레지오 활동을 기반으로 해서 열심히 가톨릭 신앙생활을 해 나가고 있기에, 한국에서는 레지오 마리애가 단순히 하나의 신심 운동에 그치지 않는다. 한국 교회에 대한 레지오의 공헌이 지대한 그만큼, 레지오 마리애 신심이 올바른 신학적 기반 위에 있어야 함은 매우 당연한 일이다.

 

“당신은 이 세상을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하려고 오셨으나 성모 마리아를 통하지 않고서는 역사하지 않으시고 저희 또한 성모 마리아 없이는 당신을 알아 뵈올 수 없고 사랑할 수도 없음을 아옵니다. 당신은 저희에게 모든 재능과 성덕과 은총을 내려 주시오나 성모 마리아를 통하여, 성모 마리아가 원하시는 사람들에게, 성모 마리아가 원하시는 때에, 성모 마리아가 원하시는 만큼, 성모 마리아가 원하시는 방법으로, 베풀고 계심을 제가 아옵니다.”

 

선서문의 이 두 번째 단락은 레지오 마리애의 수호성인 몽포르의 루도비코의 저서 「성모님께 대한 참된 신심」에서 가져온 것인데, 여기에 나타난 신학적 문제점에 대하여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재위 1978~2005)은 교도권적 가르침으로 명확한 답변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몽포르의 수도 가족들에게 보낸 1997년의 서한과 2003년의 서한을 통해서 루도비코 성인의 저서에 대하여 언급하고 평가한다. 교황은 몽포르의 성 루도비코의 “시적인 언어와 청중들에게 가깝고 친숙한 언어를 섞어서 사용한 그의 문체는 우리 시대의 사람들에게는 당황스러울 수 있다”는 점을 1997년 서한(2항)을 통해 지적한다. 따라서 성 루도비코의 글에 나타난 “언어적 표현에서 변화가 꼭 필요하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4항) 하고 강조한다. 그러므로 몽포르의 성 루도비코의 글에 기초한 레지오 마리애 선서문의 일부 표현에서도 반드시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이 여기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나아가,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2003년 서한(1항)을 통하여, 성 루도비코의 저서에 대한 신학적 재해석이 필요하며, 그 기준점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 성인의 가르침은 많은 신자들의 마리아 신심과 저 자신의 삶에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것은 뛰어난 수덕적, 신비적 깊이를 지닌 체험된 가르침이며, 자주 표상과 상징들을 사용하는 생생하고 격정적인 문체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몽포르의 루도비코 성인 시대 이후로 이루어진 마리아 신학에서의 현저한 발전은 주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결정적 공헌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몽포르의 루도비코 성인의 가르침은 본질적으로는 타당성을 갖고 있는 것이면서도 오늘날에는 공의회에 비추어 재독되고 재해석되어야 합니다.”

 

여기에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강조한, 마리아 신학을 위한 기준점이 되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이란 곧 성모 마리아에 관하여 말하는 「교회 헌장」(Lumen Gentium) 제8장을 가리킨다. 따라서 <그리스도와 교회의 신비 안에 계시는 천주의 성모 복되신 동정 마리아>라는 제목의 「교회 헌장」 제8장은 모든 마리아 신심과 신학이 그 빛에 비추어져 재해석되어야 하는 현대 교도권의 가르침의 첫 번째 기준이 된다.

 

이처럼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명확하게 제시한 신학적 지침에서 볼 때, 몽포르의 성 루도비코의 글을 기본 바탕으로 하는 「레지오 마리애 공인 교본」의 내용과 선서문에서, 루도비코의 글을 재해석하는 기준점인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 헌장」 제8장의 가르침이 간과되어 있어 그에 입각한 성찰과 내용이 매우 부족하다는 것은 안타깝고도 의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2003년 서한(3항)을 통해, 「교회 헌장」 제8장의 가르침에 따라 성령과 마리아의 관계에 대한 올바른 신학적 전망을 제시한다. 교황은 “복되신 동정녀께 대한 신심은 예수 그리스도를 찾아내고, 그분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또 그분을 충실하게 섬기기 위한 특전적 수단”임을 강조한다. 또한 마리아의 이러한 임무를 가리켜, “그리스도에 대한 전적인 종속성, 또한 그리스도를 통하여 복되신 삼위일체에 대한 마리아의 전적인 종속성”이라고 분명히 정의한다. 여기서 “복되신 삼위일체에 대한 마리아의 전적인 종속성”이란 표현은 곧 성령과 마리아의 관계가 어떠한 것인지를 우리에게 명확히 제시한다. 성자께 그러하듯이, 마리아는 성령께 대해서도 온전히 종속적인 관계를 지니게 된다.

 

그러므로 레지오 선서문의 일부 내용이 시적이고 상징적인 표현임을 고려하더라도, 그 두 번째 단락의 표현은 신학적으로 정당한 것이 아니기에 반드시 수정되어야 함을 알 수가 있다. 한국의 수많은 선의의 신자들에게, 선서문의 이러한 표현은 과대한 의미로 잘못 해석되어 “복되신 삼위일체에 대한 마리아의 전적인 종속성”을 왜곡시킬 수 있는 표현으로 여겨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성모 마리아에게 기도하지만, 그것은 우리를 위하여 삼위일체 하느님께 빌어달라는 전구(轉求) 형태이다. 성모 마리아는 우리에게 독립적인 구원 중개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한 중개를 통한 삼위일체 하느님의 구원 역사 안에서, 성모 마리아는 하느님의 아름다운 메아리로서 오직 하느님만을, 곧 자비로우신 하느님의 심오한 뜻과 구원 의지를 우리에게 계속 전하고 있다.

 

그러므로 멕시코의 과달루페(1531년)나 프랑스의 루르드(1858년), 그리고 포르투갈의 파티마(1917년) 등지에서 이루어진 사적 계시, 즉 교회로부터 인정받은 성모 마리아의 여러 발현의 메시지는 그리스도의 충만한 공적 계시를 보완하거나, 혹은 거기에 무엇을 더하거나 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나약한 우리를 거듭 일깨우며 그리스도를 통한 계시를 깊이 받아들이게끔 촉구하는 어머니의 자비로운 손길인 것이다.

 

성모 마리아는 우리에게 이미 전해진 그리스도의 충만한 계시와 구원 역사를 거듭거듭 강조하고 계속 설명해 주고자 하기에, 이 어두운 세상 안에서 널리 울려 퍼지는 하느님의 아름다운 메아리이다. 우리 역시 성모 마리아의 이러한 모범을 따라, 모든 이에게 하느님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메아리, 즉 복음의 ‘메시지’를 전하는 아름다운 ‘메신저’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내용이 레지오 선서문에 잘 반영되어 들어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필자 혼자 생각하며 참 아쉬워한다.

 

[성모님의 군단, 2025년 10월호, 박준양 세례자 요한 신부(서울 무염시태 Se. 전담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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