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7월 7일 (월)
(녹) 연중 제14주간 월요일 제 딸이 방금 죽었습니다. 그러나 가셔서 손을 얹으시면 살아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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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순교영성: 담장 사이 비밀 통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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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5-07-05 ㅣ No.2396

[순교영성] 담장 사이 비밀 통로

 

 

- 약방을 운영하던 최필제 베드로가 자신의 집에서 교우들과 모임을 갖던 중, 포졸들이 들이닥치는 모습을 그린 그림. (탁희성 화백, 절두산 순교성지 제공)

 

 

초기 천주교 집회는 이중 삼중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도심 집회는 쉬 발각될 염려가 크고 나쁜 뜻을 먹고 접근하는 사람들도 있어, 조직이 한꺼번에 일망타진 될 가능성이 늘 존재했습니다. 교회는 세상을 향해 열린 채로 새 신자 포섭을 위해 노력해야 했고, 이는 곧바로 무시무시한 탄압의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마을 구석진 집에 많은 사람이 들락거리면 당장 남의 눈에 띄게 됩니다. 그래서 허허실실로 도심 한복판, 왕래가 빈번한 거리의 객줏집이나 약방 같은 곳에 집회 거점을 마련하여, 신자들만 은밀히 뒤채로 빼돌리는 방식으로 모임을 가지곤 했습니다. 서울의 주요 거점들이 모두 약방 중심으로 운영된 것은 이 때문입니다. 최창현, 최필공, 손경윤, 현계흠 등 무려 열 명의 약국 주인들이 포착됩니다. 또 접옥연장(接屋連墻), 문호상통(門戶相通)의 방식으로 불시의 임검에 대비하기도 했습니다. 접옥연장은 신자들이 서너 채를 잇대어 매입해 구역화하는 전략입니다. 문호상통은 집 담장 사이에 비밀 출입구를 만들어, 아랫집으로 들어와 윗집에서 집회를 갖는 방식입니다. 누군가의 신고로 나졸들이 아랫집을 급습하면, 윗집에 모였던 사람들은 그 옆집 담장에 난 문을 통해 달아나는 식입니다. 당시 유흥가였던 벽동(碧洞)과 인구 밀집 지역인 안국동 등에 이같은 형태의 안가(安家)들이 운영되었습니다. 연좌제인 오가작통제(五家作統制)를 파훼하기 위한 전략이었지요.

 

정조의 서제 은언군 이인의 양제궁에는 고부간인 송 마리아와 신 마리아가 살았습니다. 강완숙은 그 옆집에 홍익만 안토니오를 입주케 했지요. 주문모 신부는 홍익만의 집에서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가 한밤중에 감시의 눈길을 피해 비밀 통로를 통해 옆집으로 건너가 신앙을 전했습니다. 행랑채에는 천주교 신자를 세입자로 들여, 둘레를 신자로 에워쌌습니다. 황사영의 아현동 집은 조상의 위패를 모셨던 사당을 헐어 그곳에 신자 남송로를 입주시켰습니다. 그는 필공(筆工)으로 각종 성물 제작을 담당했던 듯합니다. 《사학징의》의 공초 기록을 보면, 황사영 집 인근이나 또 한집에 살면서 이른바 아현동 본당을 지키며 보좌했던 돌이, 육손이, 판례, 고음련이 같은 노비의 이름들이 줄줄이 나옵니다. 사창동 인근 이합규의 교회 공동체도 그랬습니다.

 

한 번 모임을 가질 때마다 그들은 첩보 영화 찍듯이 비밀스레 움직였습니다. 하지만 신유박해로 교회는 한순간에 와해되어 모두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황사영만 기적적으로 탈출해서 배론의 토굴로 숨어들었지요. 교회 재건의 실낱같은 희망조차 없던 그때 중국 주교에게 보낼 백서를 작성하던 그의 심경은 얼마나 막막했을까요? 그는 무슨 마음으로 캄캄한 토굴 안에서 한자 한자 깨알 같은 글씨를 쓸 수 있었을까요?

 

[2025년 7월 6일(다해) 연중 제14주일 서울주보 7면, 정민 베르나르도(한양대학교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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