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철학ㅣ사상
과학과 신앙4: 감실의 빨간색 불빛을 바라보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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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신앙] (4) 감실의 빨간색 불빛을 바라보며
19세기 초에 “모든 물질은 원자라는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작은 입자로 되어 있다”는 근대적 원자론을 처음 제창한 영국의 화학자 존 돌턴은 빨간색을 인지하지 못하는 적록색맹이었다. 그가 어머니를 위해 짙은 회색의 스타킹을 선물했을 때 그의 어머니가 당황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가 선물한 스타킹의 색이 사실은 신고 다니기에 거북한 빨간색이었기 때문이다.
색맹(Color blind)은 그의 이름을 따 돌터니즘(Daltonism)이라고도 부르는데 색맹은 왜 생길까? 사람 눈의 망막에는 두 종류의 빛 수용체 세포가 있는데 하나는 빛이 강한 낮에 색을 구별하는 원뿔 모양의 세포이고, 다른 하나는 빛이 약한 밤에 밝고 어두움을 구분하는 막대기 모양의 세포다. 원뿔 모양의 세포는 세 종류가 있는데 각각 빛의 3원색인 빨간색·녹색·파란색의 빛을 잘 흡수한다.
적록색맹은 빨간색 빛을 흡수하는 세포에 이상이 생겼을 때 나타난다. 원뿔 모양의 세포 중 빨간색 빛을 흡수하는 세포가 가장 많아 낮에 우리 눈에 가장 잘 띄는 색은 빨간색이다. 반면 막대 모양의 세포는 어두울 때 녹색 빛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므로 밤에 가장 잘 보이는 색은 녹색이다. 낮에 유독 빨간색 위험 경고판이 잘 보이고 어두운 곳에서 녹색 비상구가 잘 보이는 이유다. 신생아는 망막이 미성숙해 원뿔 모양 세포가 적어서 색맹인 상태인데, 자라면서 서서히 색을 구별하며 정상이 된다.
성당에 가면 그리스도의 현존을 상징하는 감실의 빨간색 등이 유난히 눈에 띈다. 주님 수난 성지 주일과 성금요일·성령 강림 대축일·십자가 현양 축일·순교자 축일·사도들과 복음사가 축일 같은 성령에 관한 축일과 순교 축일에 사제는 빨간색 제의를 착용한다. 추기경은 교회에 대한 헌신의 의미로 빨간색 수단을 입는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0월 6일 빨간색 수단을 입는 추기경 21명을 새로 임명하며 “눈을 들어 올리고, 손을 모으고, 맨발로 나아가라”는 편지를 보냈다.
전통적으로 빨간색은 피를 연상시킨다. 성당에서 감실의 빨간색 등을 보거나 미사 때 사제의 빨간색 제의를 볼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희생과 순교자들이 흘린 피를 생각해야 한다. 또 생각은 자신에 대한 성찰·이타심·정의로운 행동으로 나타나야 한다. 가톨릭 신자의 참모습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실천함으로써 완성되기 때문이다.
가끔 텅 빈 성당에 홀로 앉아 감실의 빨간 등을 바라본다. 빨간색 빛은 우리에게 색으로 전해지는 무언의 메시지다. 그리스도의 피와 희생을 생각하며 우리는 그 메시지에 응답해야 한다. 감실을 밝히는 빨간색 불빛이 주는 의미를 내면의 눈으로 볼 수 없다면, 그것은 마음의 망막에 이상이 있는 것이며 정신의 원뿔 모양 세포가 기능하지 못하는 또 다른 의미의 장애다. 두 눈은 뜨고 있지만 색맹이면서 앞을 못 보는 장님과 다름없는 것이다. 마르코 복음의 다음 말씀은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어떤 태도를 갖고 살아야 하는지를 일깨워준다.
“예수님께서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 눈먼 이가 ‘스승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주십시오’ 하였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고 이르시니, 그가 곧 다시 보게 되었다.”(마르 10,51-52)
[가톨릭평화신문, 2024년 11월 10일, 전성호 베르나르도(경기 효명고 과학교사)] 0 16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