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14일 (목)
(녹) 연중 제32주간 목요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강론자료

2024-11-10.....연중 제32주일 나해, 평신도주일

스크랩 인쇄

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24-11-09 ㅣ No.2477

                                          연중 제32주일 (나해)

1열왕기 17,10-16      히브리 9,24-28     마르 12,38-44

2024. 11. 10. 평신도주일.

주제 : 우리가 세상에 사는 자세

오늘은 1968년부터 기억하기 시작한 57차 평신도주일입니다. 평신도주일이라고 해서 우리가 기념할 일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닙니다만, 평신도라는 낱말을 생각하면서 우리가 갖거나 드러내는 삶의 자세를 바르게 갖고, 그 표현의 의미를 생각하는 날입니다.

 

우리는 오늘 평신도주일이라는 대하면서 무엇을 먼저 생각할까요? 권리일까요, 의무일까요? 어느 것을 선택하든, 우리의 마음이 편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사람의 삶은 자기를 위하고, 자기의 편리를 위한다고 먼저 찾는다고 생각한다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무엇을 향한 것인지 누구나 안다고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평신도라는 말을 대하면서 저나 여러분이나 교회공동체에 속한 한 사람으로서 삶을 대하는 올바로 자세를 찾자는 뜻이기도 합니다.

 

사제로 사는 사람인 우리 신자들에게 존경을 요구하거나 권리를 챙기는 사람일까요? 여러분은 사제를 생각하여, 그의 앞에 나설 때는 무엇인가 선물을 가져와야만 합당한 준비를 했다고 할까요? 혹시 그런 불편한 요소가 있다면 달라져야 할 일이고, 사제도 좋은 행동을 하는 사람으로 바뀌어야 할 것입니다.

 

독서와 복음에서 들은 말씀이지만, 삶에서 내 소유라고 생각하는 것을 온전히 내 것이라 주장하지 않고, 다른 사람도 사용하도록 내놓는 일은 아무나 하는 일은 아닙니다.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라는 표현의 의미는, 많은 사람이 하지 않는다는 뜻이고, 많은 사람이 하지 않는 일을 몇몇 사람이 특별하게 한다는 것은 그가 가진 삶의 자세가 일반적인 사람과는 다른 특별한 의미를 지녔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하느님의 뜻을 아합임금에게 선포하다가 위험을 맞이하게 된 엘리야 예언자는 예언자의 삶과 목숨이 위기에 부딪히자, 하느님의 명령에 따라 시돈지방, 사렙타라는 마을에 살던 과부에게 몸을 의탁했고, 거기에서 음식과 물을 얻어먹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으로 사렙타의 과부를 만나던 날, 엘리야 예언자는 빵을 만들게 하여 자기가 먼저 먹을 것이니, 자기에게 먼저 가져오라고 말했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선포하던 예언자의 이러한 행동을 여러분은 어떻게 판단하십니까? 하느님의 사람이라고 말하는 예언자는 신앙인들을 향하여 그렇게 해도 되는 자격과 명분이 있는 사람이라고 볼까요? 아니면 그가 지나친 행동을 해서 세상의 사람에게 부담을 주었으니 옳지 않다고 하겠습니까? 우리가 판단한다고 예언자가 갑작스레 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바르게 생각해야 하는 이유는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들만 알던 율법학자들의 삶이 바뀌고 달라지기를 바라는 의도를 담아서 경고하는 뜻이 담긴 비유로, 과부의 헌금에 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헌금함에 동전 2개를 넣은 과부가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사람들보다 가장 많은 헌금을 했을까요? 우리는 이 말씀에서 무엇을 알아듣겠습니까?

 

성당에 가서는 돈을 절대로 많이 내면 안 된다는 부정적인 말씀을 예수님께서 하신 뜻으로 듣고, 우리가 그렇게 살아도 문제는 없다고 가르치신 것일까요? 우리가 생각하는 내용에 따라 세상의 삶에는 많은 것이 달라집니다. 세상을 좋게 만드는 것도 우리가 하는 일이고, 세상을 나쁘게 만드는 것도 내가 속한 공동체가 하는 행동입니다. 다만 행동하기 전에 어떻게 판단하느냐는 차이뿐입니다. 이렇게 고민하고 걱정하는 사람으로 우리는 살지만, 남들보다 돈을 많이 벌려고 하고, 다른 사람보다 재물을 더 많이 가지려고 합니다. 신앙에서 말하는 내용을 잘못되게 이해하면, 우리는 잘못된 행동을 하게 될 것입니다.

 

세상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기가 하는 말이 항상 옳다고 주장하고 싶어 할 것입니다. 세상의 삶에는 많이 가진 사람이 다른 사람을 도울 힘도 크게 낼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세상의 삶에서 힘겨운 상황을 맞이했지만, 사렙타에 살던 과부가 예언자를 돕게 한 의도도 그러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시어 구원의 복음을 선포하시면서, 우리에게 본보기를 보이신 일을 생각할 때 우리는 세상에서 바르게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내가 실천할 하느님의 뜻은 무엇이라고 이웃에게 설명하겠습니까?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53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